제26화, 괴물이 왜곡한 시대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그럼 이제 송병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그런데, 송병준이라는 이름을 들어는 봤는지 궁금하네?"


"주변에 다들 병준이라는 친구 한 명씩은 있지 않아? 너무 많아서 BJ라고 부르는 친구도 있지."

데이비드뿐만 아니라 필립도 송병준이라는 인물, 특히 친일파라고 하니 생소하다.


"유명한 친일파는 아닌가 본데... 웬만큼 유명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소위 듣보잡 친일파도 많으니까."


"친일파가 그렇게 많았나?"


"독립 후의 대한민국은 어떤 면에서는 신생 국가라서 국가 체계를 구축하고 정부와 사회 각 부분에서 당장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일본 정부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단 말이지. 식민지 경영에 일본인들을 100% 투입할 수는 없는 일이니 조선인들을 등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지. 그러니까 당시의 검사나 경찰, 군인, 정부 관리들 중에 조선인들이 꽤 있을 수밖에.. 그들이 한 일이 일본의 이익을 위한 것들이었으니 당연히 친일이 아니라 할 수 없고."


"하긴, 대략 30년 이상을 일본 치하에 있었으니 20대 후반이나 30대 초 중반에 검사나 경찰이 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일본이었던 것도 간과할 수는 없을 거야. 일본 학교에 일본 선생님들이 일본어로 일본 동요를 가르쳤을 테니까. 그렇다고 모든 조선인 부모가 어린 자녀들을 붙잡고 매일 민족교육을 시킨다는 것도 현실적이지는 않고. 그래서 간혹 나이 많은 분들이 술 한 잔 하시면 일본 노래를 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봐. 어릴 때 동네나 학교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니까..."


필립과 이안의 생각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데이비드는 그 시대에도 그들과 같이 살지 않았거나 못한 한국인들이 대다수였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 일본이 정해놓은 체제와 제도에 맞춰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봐서 당시로서는 아마 가장 좋은 직업인 공무원이 된 것 아닌가? 소위 식민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은데.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시대에 학교를 다니고 어쩌면 일본 유학도 할 수 있을만한 사람들은 절대적 소수였을 것 같은데..."


"데이비드의 생각도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식민지 국민으로서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모든 사람들이 친일파였다고 일반화해서도 안되지. 대대로 명망이 있거나 부유한 집안의 자손들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사회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니까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야. 그보다 문제는 별 볼 일 없던 집안의 자손들이 갑자기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고 부를 축적하는 경우가 아닐까 싶어. 일제 강점기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과는 다른 의미라는 것은 이해하지?"


"알만해. 개천에서 용이 되었건 금수저로서 용이 되었건 나름대로 정해진 규칙과 제도 안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이니까 그들이 일본 정부를 위해 일을 했다고 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을 거야. 그리고 일본 정부를 위해 일을 했다고 하더라고 그것이 결국은 조선인들에게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일이지. 그런데 그 노력이 조금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조선인들에게 결과적으로 해를 입히고 자신에게는 부와 권력을 가져다주었다면 어떨까?"


"그런 경우라면 당연히 친일 반민족행위자라고 해야겠지. 송병준이 그런 인물이었구먼..."


"송병준의 가계는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전통적인 거대 명문가는 아니고 중하급 일반 양반 계층이었다고 해. 그러니까 선대의 압도적인 토지와 권력 기반에서 선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이지. 송병준 본인 대인 대한제국 말기에 친일 노선을 선택하면서 소의 식민 협력 엘리트 가문으로의 변화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이야."


"그런데? 그런 사람이 뭐 한 둘이 아니었을 텐데 송병준을 꼭 집어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그런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송병준은 나중에 일본으로부터 자작이리고 하는 귀족 작위도 받았다면 조금은 더 느낌이 오지 않아? 하여간, 일본의 귀족까지 되었으니 그의 수완이 대단했다는 증거겠지. 여기서 다시 조선농업회사를 소환해 보면 많은 것들이 분명해질 거야."


1909년. 가운데 순종, 왼쪽에 이토 히로부미, 이완용, 임선준, 고영희, 송병준, 박제순이고 오른쪽으로 이재각, 민병석, 이재구, 조중응, 김윤식, 이지용, 조민희, 고희성


"조선농업회사는 고종의 개혁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관리주체가 애매해졌다고 했지.."


"그렇지. 그 조선농업회사가 송병준이 개입하면서 본래의 취지인 개혁을 통한 농업 근대화에서 그 성격이 친일 지주 자본 축적 장치라는 것으로 그 성격이 급격히 변하게 돼."


"알만하구먼. 송병준에게 농업회사라는 형식이 매우 유리했던 거네. 합법적으로 토지를 대규모로 집적할 수 있었고, 겉으로는 회사라는 모양을 가지고 개발과 개량을 통한 근대화라는 명분도 살릴 수 있었겠네."


"뿐만 아니라 농업은 조선 경제의 핵심 생산기반이었고, 일본으로서는 식량과 원료 공급의 거점으로서 조선의 중요성도 있었지. 그러니까 대한제국에서는 조선농업회사의 주체가 국가와 공공이었다면 송병준이 개입하면서 친일 개인과 일본이 주체가 되면서 사적 재산 축재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야."


"그랬다면 농민들은 진짜 소작농이 되었을 테고, 근대화를 위한 대한제국의 실험이 수탈을 위한 합법적 장치가 된 것이구만. 결국 식민지 지주제로의 전환점이 되었겠어."


"정확히 그래. 송병준은 조선농업회사에 근대화의 껍데기를 싸워서 식민지 지주제를 준비한 인물이라고 해야 할 거야. 결국 이 회사 다음으로 본격적인 식민지의 경제 수탈을 목적으로 설립된 동양척식회사로 가는 길을 놓은 사람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봐야지."


"그래서 이안이 남대문 시장에 가면 친일파를 논할 수 있다고 한 것이구만. 성격이 급변한 조선농업회사가 결국 남대문 시장 관리권도 가져갔을 테니까. 그건 어쩌면 일본으로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어. 조선인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장소를 친일 조선인의 영향권에 두어야 효과적이었겠지. 사람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데, 한국말은 정말 끝까지 들어봐야 하니 일본인들이 이해하기 어렵지. 다카하시 도루가 조선인을 알 수 없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네."


"데이비드는 역시 기억력이 좋아. 생소한 일본인 이름인 다카하시 도루까지 기억을 하네.. 그 외에 또 생각나는 것이 있나?"


"생각나는 것이라기보다는 송병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일본의 지배가 단순한 당시 세계정세와 관련된 외압과 같은 거창한 이유보다는 오히려 그런 외세와 협력한 내부자의 공모가 더 큰 원인이 아니었나 싶어. 결국 그런 일들은 겉으로는 멋진 포장, 그러니까 예를 들면 근대화 담론과 같은 것으로 포장되어 정작 그 내부 협력자의 역할을 가리고 그로 하여금 더 큰 재물의 축적이 가능토록 하는 계속된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냈을 것 같구먼."


"그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당시 지식인들의 현실적 타협과는 또 좀 그 결을 달리하는 것 같지 않아? 이제 조금 인촌 김성수 씨의 선택이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을 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지?"


"그런 것 같네. 그런데 그런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어쩌면 더 자주 더 많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르지. 송병준의 사대에는 근대화와 회사제, 그리고 그것을 위한 토지 사유화라고 하는 소위 개혁의 과정에서 늘 완전할 수 없는 제도와 체제의 틈을 파고들어 개인적 치부의 수단으로 삼았는데, 한국도 국가 주도의 공업화와 개발의 과정에서 인권 문제를 비롯해서 사회의 허점을 파고들어 권력을 독식하고 치부하는 작자들이 생겨났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런 차원이라면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대라고 봐야 하지 않나? 하루가 다르게 변화와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데 정치는 그다지 윤리적이지도 않고 그 변화를 선도하기는커녕 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있으니 말이야. 특히 디지털과 AI로 대표되는 전에 없던 전환의 시대에 고종이 느꼈던 근대화의 필요성과 유사하게 혁신과 디지털 전환을 해야 한다는 어떤 명분 또는 압박감, 그리고 그것을 완성하기 위한 데이터와 플랫폼이라고 하는 수단은 마치 조선농업회사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문제는 송병준이 그랬던 것과 같이 데이터와 관련된 기술의 통제가 대다수의 국민이 아닌 어느 한 곳으로 집중되었을 때는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새삼 궁금해지기도 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전통 사회와 달리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래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판단을 한 두 사람이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잖아. 반대로 이야기하면 사회 전체가 비윤리적이어야 모두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결과가 어떻든 상관도 하지 않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리고 데이비드가 우려한 디지털이니 AI니 하는 것들이 오히려 건전한 상식을 바탕으로 윤리적이고 양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크게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먼. 윤동주가 그래도 옳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고민을 했지만 디지털 대 전환의 시대에서는 그 고민이 모두에게 퍼져나갈 수 있는 길을 열 수도 있다는 말도 되는 것이니.."


"그렇지, 그리고 그 반대도 가능한 것이라는 것도 생각해야 할 것이니,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 시인을 위해 건배하자고!"


만두국이 다 식었다. 아무래도 전골과 빈대떡을 추가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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