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홍어찜, 청계천, 브람스가 거부하는 꼰대문화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데이비드는 식당에 들어올 때부터 느꼈던 냄새의 정체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친절한 느낌의 냄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불쾌한 냄새도 아닌 어딘가 정직하고 숨김없는 냄새가 은근히 식당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흰색 쟁반 접시에 담긴 홍어찜이 나오자 그 냄새는 확실히 정직해졌다. 홍어 삼합의 위력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 그 악명(?)을 전해 들었기에 어디서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훅 들어온 홍어찜에서도 이렇게 숨김없는 냄새가 날 줄은 몰랐다. 어쩌면 따듯한 음식이어서 그 냄새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게 제대로 나온 음식은 맞는 거지? 이 냄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술부터 한 잔 혀. 처음에 냄새재, 쫌 지나믄 향 나부러."


필립은 주저하는 데이비드에게 일부러 남도 사투리를 써가며 소주부터 한 잔 하라고 한다. 소주가 냄새를 없애지는 못하지만 견딜 수는 있게 도와줄 거란 말이다.


소주 한 잔에 길게 잘린 잘 익은 홍어찜 한 점을 입에 넣은 데이비드는 말이 없다. 다만 눈물이 찔끔거릴 따름인데, 그 모습이 우스운지 이안과 필립은 보란 듯이 더 크게 자른 홍어찜을 입에 넣고 가능한 한 입을 크게 벌려 씹으며 향을 뿜어낸다.


"한국말도 잘 못하지만 표현이 안 되는 맛인데... 사실 이것을 맛이라고 해야 하는지 냄새라고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네. 미국말로는 더더욱 불가능한 자극이야."


"미국말로 하면 뭐 Impossible is nothing! 아니겠나?"


"아녀. 임파시블 이즈 그냥 임파시블이구먼." 데이비드가 한국어로 답을 하는 것을 보니 꽤 충격이 큰 모양이다. 소주잔이 한 두어 잔 더 돌자 데이비드도 이제는 어느 정도 맛과 향에 적응을 한 듯, 한두 점씩 홍어찜을 베어 먹기 시작했다.


"이게 이상하네. 사실 아직도 쉽지 않고 또 익숙해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아주 먹지 못할 맛과 향도 아닌 것 같아. 나름대로 특이한 매력도 가진 것 같고 말이지."


사실 필립과 이안도 삭힌 홍어 코를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내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나마 서울에서는 그 삭힘의 정도가 아주 심하지 않기 때문에 데이비드 앞에서 약간의 멋을 부릴 정도인데,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 처음 경험한 이후 어쩐지 가끔씩은 생각이 나는 음식이 되었다.


"고급 음식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왜 이런 냄새가 나는 거야? 분명히 상한 건 아니지?"


"한 끝 차이일 수도 있지만 이건 발효의 결과이지. 다시 말해서 삭힌 것인데, 정약용_丁若鏞(1762~1836)의 형인 정약전_丁若銓(1758~1816)이 흑산도에 유배 가서 쓴 자산어보라는 우리나라의 해양생물백과사전에도 나온다고. 어쩌면 우리가 지금 이 홍어찜을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건 정약전 덕분이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 덕분일 수도 있다고 해야 하나?"


"할렐루야~ 정조 사후에 노론 벽파가 정국을 장악하고 천주교에 연루된 남인 계열이 축출당할 때 정약전도 유배를 가게 된 것이고, 그 덕에 자산어보를 집필할 수 있었으니 예수님도 조금 힘을 보탰다고 볼 수 있겠지."


"당신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홍어찜 맛이 또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구먼. 단단하게 변하지 않는 맛과 냄새가 깔려 있지만 또 소주가 들어가고 몸의 온도가 오르고, 김이 오르며 시간이 흐를 때 이야기도 한 점 올리니 계속 다른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단 말이지."


"브람스의 4번 교향곡 4악장이구만."


"이안이가 뭐래니? 취했나?"


"안 취한 것 같어 아직은. 음악은 전문가가 아니라서 감상을 제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설명은 들은 적이 있지. 어쩌면 홍어찜 냄새는 파사칼리아(passacaglia)처럼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해. 바닥에 깔린 암모니아 향은 콘트라베이스와 첼로, 바순 같은 저음이 반복되는 것과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김이 오르고 술이 돌고 사람이 익숙해질수록 그 위에 다른 냄새들이 변주처럼 얹히는 맛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야."


"당최 뭔 소린지 모르겠다만, 좋은 음식이라는 뜻이라는 건 알겠네."


"그럼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떨까? 우리가 지금 청계천 옆에 있는 노포에 앉아서 술을 마시잖아? 이 또한 비슷한 건데, 청계천 물소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똑 같이 반복되고 여기 노포도 벌써 수십 년째 변하지 않았지. 술병이 이렇게 쌓여 갈 때도 냄새는 같은 자리에 머물지만 그 냄새를 받아들이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변했고, 그 사람들의 상태도 시간이 가면서 변주가 일어 사는 재미를 조금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


"그렇네. 필립이가 나를 처음 청계천에 데려왔을 때에는 몰랐는데 청계천을 따라 걷고 먹고 이야기를 하면서 취한 나의 발걸음에도 청계천의 물소리는 늘 같은 속도와 소리를 내며 배경이 되어 주었던 것 같네. 이제는 없으면 허전할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예전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고, 우리 자녀들 세대에도 그럴 거야. 꼰대 문화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청계천이 생각난 이유가 이것이 아닌가 싶네. 청계천의 물은 늘 같은 소리를 내며 같은 방향으로 흐르면서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춰 걸으라 강요하지도 않지. 오히려 걷는 사람들에게 배경 음악이 되어 스스로 걷고 마시고 이야기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에 머물지만, 그 역할이 절대 작다 할 수 없을 것 같아. 꼰대는 청계천의 물처럼 늘 같은 말을 하지만 '라테' 타령을 반복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을 자랑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하고 깨달을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지 않거든. 아무런 감흥이 없는 배경음악을 강제로 듣게 하니 짜증이 날 수밖에."


"꼰대인지 아닌지 뭘로 아는 줄 아는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듣는 사람이 딴청을 피우거나 심드렁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짜증이 난다면 아주 심한 꼰대인 거야. 내가 우리 집 아이들하고 이야기할 때 가끔 그랬거든. 지금은 다 커서 그것도 안되긴 하지만... 알면서도 잘 안된단 말이지. 데이비드를 그래서 청계천에 데려간 건 아닌데 돌아갈 날이 오니까 이렇게 또 정리가 되긴 하네. 우리 또 결과를 떠나서 뭔가 정리가 안되면 찜찜한 성격들 아닌가?"


"당신들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상한 게, 늘 이야기의 끝이 어딘가로 달려가고 또 달리는 방향이 서로 맞지도 않는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든 다시 합쳐진단 말이야. 오늘만 해도 갑자기 홍어찜을 시켜놓고 브람스를 말하다가 청계천을 돌아서 꼰대로 이어지는데 묘하게 설득당하는 기분이 들지만 그렇게 나쁜 느낌은 또 아니고 말이지... "


"그게 다 데이비드 자네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않아? 한국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를 모르고 한국말 단어도 잘 모르니 이렇게 저렇게 돌려가면서 쉽게 설명하느라고 그런 거잖어?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내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우리끼리는 거의 그런 이야기를 할 경우가 없어서 알던 것도 잊어버리는데, 데이비드가 뭔가 물으면 그게 또 신선하게 느껴지더란 말이야. 서로 대화를 하다 보니 생각도 다시 정리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더라고."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은 모양이지?" 이안이 조금 취했다..


"불취무귀(不醉無歸)라 했는데, 잘 먹고 잘 취한 듯 하니 그만 가자구. 플라톤은 나가도 너무 나갔구만. 데이비드가 건강검진받으러 와서 몸이 술에 절여졌겠어."


수원 화성 앞에 정조대왕 불취무귀. 백성 모두가 풍요롭게 숭을 마시며 즐길 수 있는 태평성대를 만들겠다는 정치적 포부와 소통 의지를 나타낸다.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아녀, 이젠 어엿한 주권자가 되어서 걷고 마시고 대화하다 보니 몸이 더 좋아진 듯하네. 조만간 다시 한 번 와서 못다 한 이야기를 좀 해야 하겠어."


"주권자는 또 뭔 소리여?"


"당신들 둘 중에 한 명이 후래자삼배 어쩌고 하면서 치상찬이라는 작자가 일제 강점기에 주국헌법(酒國憲法)을 반포했다고 해서 호텔 방에서 언젠가 그 주국헌법을 찾아봤는데 영 한자가 많더구먼. 그래서 AI의 도움을 받아서 읽어봤더니 내가 주권자더라고. 제6조, 三盃以上을 먹을 資格이 잇는 자로 酒國에 稅金(酒代)을 納入한 자는 누구나 酒權者가 됨. 제13조, 사람이 술을 먹되 술이 사람을 먹지 안케 할 事, 제19조, 酒會에 遲參한 자는 後來者三盃란 慣習法에 依하야 處罰함 (술자리에 늦은 자는 관습법에 따라 처벌함) 但, 特殊 地方에 施行하는 所謂 谷山 사돈복이 法은 너무 苛酷함으로 本法 發布日로부터 廢止함 (谷山에서는 後來者에게 座客마다 三盃식을 주는 일이 잇다)- 단, 특수지방에 유행하는 소위 곡산 사돈복이법은 너무 가혹함으로 본법 발효일로부터 폐지함. 땅땅!"


"데이비드 이제 하산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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