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
"명월관은 사라지고 어디로 방향을 잡는 것이 좋으려나?"
"명월관이 사라진 것은 아닌데, 예전의 명월관은 또 아니지. 전에 광화문 사거리에서 명월관 이야기를 했던 것은 기억하지? "
"민족대표 33인 중 29명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태화관이 명월관의 별관이었다는 건 기억하지. 그리고, 몇 년 전에 유명 한국사 강사가 태화관에서 술 마시다가 독립선언문 읽었다는 말을 해서 논란이 되었지만, 당시의 환경을 생각하면 그랬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는 말도 했었지."
"데이비드가 기억력은 좋아.. 그 명월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데, 주인이었던 안순환 씨가 명월관의 브랜드를 이종구 씨에게 팔았고, 안순환 씨는 규모를 조금 줄여서 남대문 1 정목에 식도원이라는 식당을 차렸단 말이지. 남대문 1 정목은 대략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본점 주변이 아닌가 싶어. 명월관은 이종구 씨 이후에 친일파의 손으로 넘어갔는데, 한국 전쟁 이후에는 광장동에 있는 워커힐호텔로 이전을 했다고 하더라. 그리고 당시 선경그룹, 그러니까 지금의 SK그룹이 호텔을 인수했고, 명월관은 그곳에서 숯불갈비집으로 영업을 하고 있지 아마? 그러니 명월관이라는 브랜드는 남아있는 것이지."
데이비드는 명월관이라고 하는 브랜드조차도 살아있는 나라의 궁(宮)을 훼손시켜 그 자리에 골프장과 야구장을 만들었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이야기 같이 느껴졌다.
"비약적 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은 독립선언을 한 장소였어도 경제 활동에 도움이 되거나 민간 유흥 문화와 같이 통치에 큰 저항이 되지 않는 것들은 굳이 없앨 이유가 없었나 보네. 반면에 경복궁이나 창경궁과 같이 조선의 정치적 상징성을 가진 것들은 의도적으로 훼손한 모양이야."
"비약은 비약인데 전혀 엉뚱한 것 같지만도 않네. 일본이건 조선이건 정치적으로 어떤 상징성을 가진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권력자들 또는 이해집단들은 종종 그런 일드를 저지르곤 했으니까. 물론 권력으로부터 심한 압력을 받아도 스스로 판단해서 옳은 것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지." 필립은 한 두 가지의 사건을 두고 역사적 보편성을 이야기하는 데이비드의 생각이 꽤 비약적이긴 하지만, 언제나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할 필요는 없다 싶었다. 겨우 세 명의 친구들이 하는 잡담과 같은 것인데, 이런 잡담을 수많은 사람들이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야?"
"회암사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기억하나?"
"전에 덕수궁에서 잠깐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회암사 터에서 오페라 아이다 공연 같은 것을 하면 멋질 것 같다고 했던 그 사찰을 말하는 거지? 그런데 그 절은 조선의 왕이 파괴한 것은 아니잖아?"
"왕들이 직접 손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던 사찰은 아무래도 수 십 년에 걸쳐 여러 가지 권모술수와 관련이 될 수밖에 없었고 비리에 얼룩지면서 유생들이 반발하면서 서서히 파괴된 것 같아.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인들에 의해 더 훼손되면서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지만, 역사가 긴 왕실 사찰로서 수많은 이야깃거리와 출토된 귀한 유물들로 회암사지가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올라와 있기도 해."
"필립이 말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이 되어서 조수미 씨가 그곳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 음악으로 갈등과 분란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어? 지금은 절 터만 남아있지만 스토리도 많은 곳이지. 고려 귀족들과 불교의 부패에 대한 반동으로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회암사뿐 만 아니라 많은 사찰들에 탄압을 당했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고... 하지만, 조선의 왕들도 이미 천 년 동안 이어져온 불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고, 비록 유교를 건국의 이념으로 삼기는 했지만 종교 자체를 배척한 것은 아니어서 오히려 왕실에서는 불교를 숭상했지. 태조 이성계는 궁궐에 비할만한 사찰인 양주의 회암사를 각별히 아껴서 왕좌에 있을 때는 4차례에 걸쳐 회암사에 행차했고, 상왕으로 물러난 후에는 무학대사와 함께 회암사에서 기거하기도 했다고 하잖아. 왕이 기거를 하고 있으니 의정부의 삼정승이 자주 찾게 되면서, 의정부라는 동네 이름이 생기게 된 이유도 있다고 들었어."
"어째 사람들이란 어디나 다 비슷하네. 정치와 그 정치를 하는 권력자들은 늘 바뀌기 마련인데 찰나의 순간에 불과한 자기들 시간의 입맛에 따라 유산을 파괴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너무 기분 상할 필요는 없어."
"예를 들면?"
"차일혁이라는 이름 들어 본 적 있나?"
"그 이름을 기억해야 하나?"
"지금 우리가 하는 이야기라면 기억해야 할 이름이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지리산으로 숨어 들은 무장공비 소탕 작전이 있었어. 그리고 한국 정부에서는 공비들이 숨어 있을 수 있는 화엄사를 초토화하라는 명령을 내렸지. 그 당시 빨치산 토벌 대장이 차일혁(車一赫;1920~1958) 총경이었는데, 차 총경은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았어. 그는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 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년의 세월로도 부족하다’ 는 말로 명령을 거부한 것이야. 그래서 화엄사는 물론이고 지리산에 남아있는 쌍계사 등 화엄사의 말사(末寺)들까지 모두 잘 보전이 되어 온 거지. 그래서 화엄사 입구에 차일혁 경무관 공덕비가 세워져 있는 데 아마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사후 승진을 한 모양이야."
"그러고 보니,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네. 역시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공비 토벌과 관련해서 해인사에도 공중 폭격 명령이 있었다고 하더군. 그때 공군 대령이던 김영환(金英煥;1921~1954) 장군이 팔만대장경 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 폭격 명령을 거부해서 해인사와 장경판 모두가 살아남게 되었다는 것이야. 지금 애국가 영상에 나오는 팔만대장경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어있고 게다가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 자체도 건축학적으로 아주 대단한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김영환 장군 덕에 아직 잘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이지.”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 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년의 세월로도 부족하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네. 머리만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말인데?"
"데이비드의 말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 같은 게... Korea’s Place in the Sun이라는 한국의 근대 역사에 대한 책에서 저자인 Bruce Cumings는 한국인들의 생각은 양 귀 사이에 있지 않고 가슴뼈 아래에 있다고 했지. 그리고 성공회 주교이자 한국학의 대가로 알려진 Richard Rutt 신부는 한국인은 중국인과 유태인과 같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생각을 하며,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하면서 가슴에 손을 댄다고 표현을 했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지?"
"그런 의미에서 마음으로 한 잔 하러 빨리 가자고. 남자들이 어째 말이 이렇게들 많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