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어제저녁에 청계천을 따라 걸어서 집에 가는데 운동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좋더라고. 그런데, 조선 시대에도 사람들이 운동이라는 것을 했을까 싶은 거야. 무관들은 무과 시험을 봐야 하니 운동을 했을 것 같고 군사들도 했을 거 같은데, 일반인들도 운동이라는 것을 따로 했을까?"
필립은 조선인들이 체력을 키우거나 건강관리를 하기 위해 별도로 운동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양반들은 뛰지 않는다는 말은 들어보았으니, 운동을 별도로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일반인들이나 천민들은 늘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면서 먹고살았을 텐데 무슨 운동을 따로 할 시간이나 있었겠나? 운동 마니아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일반적으로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을 것 같지는 않구먼." 데이비드 또한 옛날 조선인들이 운동을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이라는 게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살고 싶었을 것 아닌가? 그럼 뭐라도 했을 것 같긴 한데..."
"세시풍속을 보면 옛날 사람들도 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보이긴 하지. 생각해 보라고.." 이안이 말을 이어갔다.
"세시 풍속은 뚜렷한 4계절에 따라 계절별로 특별한 것들이 있는 것인데, 청계천에서도 즐기는 풍속들이 꽤 많았지. 지금은 아무도 그런 놀이를 하지는 않으니까 거의 잊혔지만... 일단 겨울인 정월 대보름에는 보름달을 쳐다보고 소원을 빌지. 오곡밥을 해 먹고 귀밝이술을 마시고 부럼을 깨무는 것이야. 그리고 밤에는 지금 여기 광통교나 수표교 등 청계천의 다리를 밤새 밟고 다니던 답교(踏橋) 놀이라는 것을 했다고 하더군.”
“다른 것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충 들어 본 것 같은데 귀밝이술은 어떤 술이냐?”
“대보름 아침 식사 전에 귀가 밝아지라는 의미에서 마시던 술을 말하는 것인데 한자로는 이명주(耳明酒) 또는 명이주(明耳酒)라고 하는 것이지. 식사 전에 청주 한 잔을 마시면 귀가 잘 들려서 일 년 동안 좋은 소식만 듣는다고 하여 누구나 다 한잔씩 마시던 풍습이 있었어. 나도 아주 어릴 때 명절이 되면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나는 그런 기억이 없었던 것인지 잊은 것인지 모르지만 생소하네. 그런데 정월 대보름에 하는 일을 보면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 같기도 하고만. 아침에 술 마시고 기분이 느긋 해지면 듣기 싫던 이야기에도 웃을 수 있을 것이고 오곡밥을 해 먹으면 배도 부르고 부럼을 깨면서 밥 먹는 데 가장 중요한 상한 이는 없는지 알아보고 밤에는 소화도 시키고 다리 힘도 길러서 오래 살려고 청계천 다리를 오가며 달도 보고 임도 보고 뭐 그런 것이구먼.”
“데이비드가 제법 풍월을 읊기도 하네. 여하간, 다음은 봄. 제비가 강남 갔다가 돌아오면 봄인데, 그것이 3월 3일 삼짇날인 것이지. 그러면 사람들이 동쪽으로 흐르는 물가에 가서 겨우내 묵었던 때를 씻는 것이야. 즉, 서울에서는 이 청계천 같은 곳에서 때를 씻는 것이지.”
“그건 나도 알지. 필립이랑 처음에 청계천에 왔을 때 들었는데, 동류천두목욕이라고 하는 것 아니냐?"
"제법 그걸 다 기억하네. 청계천을 명당수로 관리할 것인지 생활 하천으로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 세종 때 이야기를 하면서 알려주었었는데 한자까지 기억을 할 줄은 몰랐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음력 6월 보름이 유두라고 하는데, 동류두목욕 (東流頭沐浴)이란 말의 약어로 민속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가서 머리를 감는데, 그 까닭은 동방이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를 감는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세례(洗禮)나 불교의 관정(灌頂)과 유사한 의식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고.” 데이비드가 으쓱대며 아는 체를 한다.
세 친구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결론은 조선인들도 건강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은 인정을 해야 했다. 다만, 아직도 그들은 우리가 스포츠라고 부르는 단순 오락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을 하기 어려웠다. 양반층은 예(禮)와 교양을 중시한 활쏘기와 투호 정도를 했고, 무인들은 격구와 말타기, 서민들은 아마도 줄다리기, 석전, 닭싸움 정도를 스포츠로 여겼을 듯하다.
"그럼 지금의 프로 야구경기 같은 스포츠는 별로 없었을 것 같네. 한국인들은 야구에 아주 미쳐있는데 말이야."
"한 20년 전쯤에 YMCA 야구단이라는 코미디 영화가 있었지. 사실 1904년에 [황성 YMCA 야구단]이라는 야구단이 실제로 있었어. 흔히 조선 최초의 야구단으로 인정되는데,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_Philip L. Gillette가 서울의 YMCA 회관에서 야구를 가르쳤다고 하네."
"그것이 그럼 근대체육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구먼. 그런데 누구랑 시합을 했으려나?"
"선교사들과 경기를 하기도 했고, 1907년에는 지금의 휘문고등학교인 휘문의숙에 야구단이 처음으로 생겨서 YMCA 야구단과 경기를 해서 이겼다는 기록도 있지. 1920년 11월 4일부터 3일간은 조선체육회가 주최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열렸는데, 이 대회에는 10개 팀이 참가했다고 하네. 경신학교, 배재, 보성, 중앙, 휘문 등 5개 팀은 중등부로 참가했고, 청년부는 삼한구락부 전경신, 전배재, 천도교, 청년회관 팀이 있었다고 하는데, 배재고보가 우승을 했다고 하니, 아마 그때부터 이미 한국인들은 야구를 좋아했던 것 같어."
"그런 일이 있었구먼. 그런데 1920년이면 일제강점기인데 그런 대회 개최가 가능했었나?"
데이비드는 일본이 조선인들이 한 곳에 모이는 행사를 어떻게 허가했는지 궁금했다. 필립은 그전 해인 1919년에 삼일운동이 있었고, 삼일운동이 전 세계에 알려지자 일본은 소위 문화통치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대한 무단 통치의 한계를 인정하고, 조선인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일부허용한 대신 문화적 수탈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피던 시기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조선야구대회는 지금의 전국체전의 전신이 되었다는 것도 설명해 주었다.
"아... 그래서 가능했을 수 있겠구먼. 그런 문화통치 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은 1930년대 이후로는 민족말살 통치를 전환해서 한국 민족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 했다는 것이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실은 미국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서울에 와서 경기를 한 적도 있어." 이안이 갑자기 메이저리그를 들먹이자 미국인 데이비드는 그 내용이 사뭇 궁금해졌다. 메이저리그가 그 당시에도 야구를 알리러 조선까지 왔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869년에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_Cincinnati Red Stockings가 처음으로 창단되었는데, 그 이후에 몇 개 팀이 더 생기면서 현재의 내셔널리그의 기원이 되었고, 1882년에는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_American Association이라는 리그가 창설되어 내셔널리그와 경쟁을 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아메리칸 리그로 발전했지. 1903년에는 월드시리즈가 처음으로 벌어지면서 미국인들은 프로야구에 열광하기 시작했단 말이야. 그런데, 그 당시에 미국의 메이저리그 팀이 조선을 방문했단 말이야? 미국에서도 아직 초기 시장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 미국의 메이저리그 팀들이 야구를 세계에 보급하려던 시기와 조선의 환경이 잘 맞았던 듯 해. 1922년에 미국의 메이저리그 선수 2~3명과 마이너리그 트리플 A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의 올스타 팀이 일본에서 시범 시합을 하러 왔다가, 조선의 야구선수였던 이원용과 박석윤이 일본에 찾아가서 미국 야구팀을 조선에 까지 오게 만들면서, 그해 12월 8일에 용산에서 시합을 할 수 있었단 말이야."
"그것 참 흥미로운 일이네. 그래서 물론 미국이 이겼겠지?"
"23대 3으로 일방적으로 미국이 이겼고, 당시에 조선의 투수가 바로 미국팀을 데려온 박석윤이었는데 완투를 했다고 하네."
" 그 경기가 꽤 인기가 있었나?"
"엄청나게 큰 성공을 했다고 하더라. 당시에 쌀 한 가마니기 28원이었는데 경기 티켓이 5원 정도 했다고 하니 꽤 비싼 편이었는데 총 입장 수입이 1,700원이었다니 성공적인 경기였다고 해야지."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다 어디서 들은 거냐?" 데이비드는 야구 선수들도 잘 모를 법 한 이야기를 하는 이안의 취미가 꽤 다양하다 싶다.
"책을 한 권 보았는데, 이 내용이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기억이 나네. 그때 미국직업야구단을 명월관에 초대해서 기생들의 공연도 보게 하고 대접을 잘해 주었던 모양이더라. 나중에 관심이 있으면 한 번 읽어보면 흥미로울 거야.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 -일제 강점기 연예인이 된 기생 이야기- ]라는 책이다."
"아, 얼마 전에 이야기했던 그 명월관에서? 하긴 당시에 명월관 이외에는 마땅히 외국 손님들을 초대할 만한 위생적이고 괜찮은 식당이 별로 없었다고 했었지.. 그런데, 그 이후에도 야구는 계속했나 보지? 야구 경기장도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지금과 같이 그런 전용 구장은 없었을 것 같고, 야구 용품도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야구는 계속되었다고 봐야겠지. 와중에 일본이 참 어이없는 만행도 저지르기는 했어."
"야구와 일본의 만행은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거냐?"
"일본이 1915년에 소위 한일합방 5주년을 기념하면서 경복궁의 전각들을 많이 없애고 그 자리에서 조선물산공진회라는 박람회를 개최했지. 목적은 조선이 일본 덕분에 근대화되고 있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박람회가 끝나고 그 자리에 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일본인들이 사용할 야구장과 골프장을 만들었단 말이야."
"창경궁을 동물원으로도 만든 일본이니 야구장 정도야 언제든 만들었겠지... 그래도 남의 나라 궁궐을 부수고 그렇게 했다니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불교 유적을 모두 파괴했던 일과 다름이 없구먼... 그래도 경복궁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 중이라니 다행이다. 오래 걸려도 제대로 복원이 되면 좋겠네."
"필립, 경복궁의 복원을 위해 한 잔 하러 가자고. 저녁 시간도 다 되었고, 이제 며칠 후면 데이비드도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시간이 없구나.. 명월관이 없어서 조금 아쉽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