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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순혁 Nov 30. 2024

타는 중

에세이

우리의 집에 불을 지피고
우리가 그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손 맞잡고 뛰쳐나올 때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우리를 두 손에 쥔 방망이로
내리치고 다시 내리쳤어
아직 화염 속에 있는 우리로서는
아무런 대비 방법이 없었지
우리는 살아야 했고, 살아야 했으니까
정장을 입은 히피의 존재 자체가 모순인 것처럼
우리는 평화와 공존을 외치는 그들의 모습에
이질적인 모순을 심하게 느꼈지
평화를 말하려면 총을 내리던가
총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면 평화를 말하지 말던가
그들의 한쪽 눈을 가린 안대에 새겨진 문양은
자유와 평화의 심볼이야
그들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그들은 대표하는 거야
그것들에 대해 조금도 깨닫지 못하는 채로 말이야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가면을 쓸 수밖에 없었지
그들이 자유라는 가면을 벗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우리도 빨갛게 웃는 가면으로 맞상대를 했어
자유를 상징하는 가면과 빨갛게 물들은 가면
이 글을 읽는 그대는 무엇을 택하겠어?
다수의 사람들에 속하고는
배불리 끼니를 채우고 편히 잠을 자지만
메마른 눈을 가진 삶을?
총알도 물자도 부족해서
근근이 끼니를 버티는 중이지만
찬란히 영혼이 빛나는 삶을?
뭐 그대가 무엇을 고르건 간에
나와는 상관이 없지
나는 아직 화염 속에 있으니
나는 우리로서 손 맞잡고 버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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