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나는 누구인가
눈을 떠도 감은 것과 같은 어둠 속에서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도 구별할 수 없다
내가 사람이 맞는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더듬는다 눈 한 쌍과 코 입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사람이라는 말이 되지 않는다
손을 아래로 향한다
한 쌍의 다리와 발 한 쌍 발가락 5개 한 쌍
나는 팔과 다리가 한 쌍씩 있으며 눈 코 입이 달려있다
이것 또한 내가 사람인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이 어둠 속 유일한 나는 내가 팔과 다리가 한 쌍씩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팔과 다리가 한 쌍씩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생각을 한다
가본 적도 없는 뜨거운 햇볕이 강렬한 모래사막과 끝없이 얼음이 덮인 극지방을 상상할 수 있고
신 과일들을 떠올림으로써 입안에 침이 고인다
상상을 한다는 것
이것 역시 내가 사람임을 말해주지 않는다
가을 낙엽을 떨어뜨리는 나무의 쓸쓸함을 수없이 봐왔다
그렇다면 이 어둠 속에서 나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