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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Jul 22. 2022

1800년대생 남편이 온다

명화를 빌려 우리를 말하다


 냉장고가 텅 비었다. 내일 아침은 갓 끓인 채소 수프를 먹고 싶은데 속도 모르는 아내는 사흘째 누워만 있다. 역류성 식도염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요 며칠 내 무심한 행동 때문에 실은 화가 난 것이다.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았다. 이번 프로젝트의 성과가 좋으면 향후 몇 년간은 계속 사업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다는 걸 알기에 기대와 동시에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젊은 남편: 첫 장보기 (릴리 마틴 스펜서作, 1854)


  분명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프로젝트의 성과에 따라 승진을 노려볼 수 있으니 더없이 금상첨화였다. 그 무렵부터였을까 나는 가정과 차츰 더 멀어지고 있었다. 회사가 곧 집이다 생각하며 몇 날 며칠을 지냈다. 퇴근 후에도 머릿속은 온통 두고 온 업무와 결재를 기다리는 메일함 생각뿐이었다.     

  평소보다 비교적 이른 귀가를 한 어느 날, 다급한 전화벨이 울렸다. 이윽고 부장님의 음성이 들렸다. 갑작스러운 개인 일정이 생기는 바람에 내일 예정된 출장을 갈 수 없게 됐다며 본인 대신 대리 출장을 가줄 수 있겠냐고 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내일이라면 아내와의 10번째 결혼기념일이다. 아내는 반짝이고 화려한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차라리 진심을 담은 편지 한 통이 승부수에 유리하다. 그것도 모르고 처음엔 적당히 눈부신 것들을 아내의 동의 없이 사서 건넸지만, 한 번도 이를 착용한 걸 보지 못했다. 본인만의 취향이 확고한 여자다. 같이 산 세월이 10년인데 난 아직도 이 여자의 취향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모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부장의 개인 일정 속내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부장의 것과 내 것이 나란히 견주어야 하는 사회적 합의를 암묵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건 본능으로 알 수 있다. 결국 나는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당분간 가정에서의 굴욕을 택한 시시한 가장이었다. 수직적 서열 중심의 이 사회는 종종 나를 시험에 빠트리지만, 내 타협점은 세속에 승복한 셈이다.

  그렇게 부장의 뜻에 굴복하여 기념일 대신 출장을 택한 그날, 캄캄한 밤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비열한 나의 행보는 예상대로 아내의 입을 더 굳게 다물게 했다. 아내와의 결혼기념일은 결국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은 채로 끝났다.


  다음 날 오후 차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집안 곳곳에 서린 불편한 공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차를 돌려 일부러 도시 외곽의 마트로 향했다.

  도심에서 벗어난 곳이라 그런지 채소들이 유독 싱싱하다. 큼지막한 닭 한 마리를 집었다.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식탁을 차려 아내에게 은근슬쩍 화해의 제스처를 건네 볼 참이다. 변변한 말 한마디 붙이는 게 훨씬 효과적인 것을 알면서도 역시나 선뜻 헤아려지지 않는다. 아내가 원하는 화해는 아무래도 내 방식과는 다르다. 치졸한 사과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다. 이런 생각을 들키기라도 한 걸까. 바구니 한가득 장을 보고 나오는 나를 서늘한 눈으로 힐끔거리는 시선이 직감적으로 스친다.


  그 시선에 한껏 더 움츠러들긴 했지만, 구겨진 마음같은 건 어떻게든 들키고 싶지 않다. 유유히 차를 몰고 집으로 가서 내일 아침 먹을 채소를 다듬어 냉장고에 보관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만 생각하기에도 머릿속은 벅차다. 아슬아슬한 주말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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