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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Aug 10. 2022

매일 갈 곳이 있다는 건

책으로 도피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도피였다.

육아는 매일 해도 어쩐지 자신이 없고, 눈뜨면 덧없이 새 날이 밝았다. 전날 밤, 깊은 심호흡과 구간 반복을 통해 나름 공들여 다져놓은 습관도 걸핏하면 리셋되기 일쑤였으니, 아침이면 '오늘의 상태 메시지'를 새로이 체크하고 아이들에게 결국 하기 싫은 말들을 꺼내보여야 했다.


그럴때마다 도망치듯 책으로 도피했다. 규격화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일상 따위는 잠시 잊으려 본능적으로 파고 들었다. 책은 내게 무한한 장점들로만 점철된 자기 우물의 표상 같았다.


 내가 파놓은 우물을 매일 들여다보는 일. 큰 노력없이도 쉽게 피신 가능했다. 체크할 일이라곤 읽다 만 페이지가 아직 잘 접혀있는지 책 모서리에 눈길 한번 주는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언제고 다시 펼쳐도 이음새가 서서히 살아났다.

 어디 그뿐인가. 한번 빠지면 스마트폰보다 중독적이라 몰입하는 내내 피로한 현실을 등질 수 있고, 헤어 나오는 데에 버퍼링도 없어 빈번히 경계를 넘나들기 쉽다. e-book이 아닌 이상 충전의 번거로움 또한 없다. (난 종이책 추종자다)


 이런 나지만 오늘은 잊은  있다. 병원 검진을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서느라  권의 여유를 꾸리는 일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 이동하며 대기하며 거듭 잉여시간이 생겼다. 어제 가까스로 빌려둔 책의 표지와 활자가 가뜩이나 갈증나는 머릿속을 자꾸만 맴돈다. 미지의 세계에  담그기 직전 막연한 호기심과 기대는 여행을 준비할 때와도 많이 닮아 있다.


 간만의 외부 일정으로 설렘도 잠시, 습관처럼 다시 책으로 마음이 기운다. 아이 하원까지는 두시간 남짓. 어서 길어온 새 우물을 파러 가야겠다. 늘 책이 해결책이다. 서둘러 귀가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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