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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Aug 02. 2022

가족적인 말로 날 가두지마

고유성은 못잃어

  

 아이는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다. 누군가의 자식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개별성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옳다. 과연 나는 아이에게 얼마만큼의 독립성을 부여하고 있을까.


 벨기에의 그림책 <엄마 아빠랑 난 달라요>에서 저자는 아이 고유의 개별성에 주목하여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한다.

 아이 눈에 아빠는 엉뚱한 옷차림을 즐기고, 엄마는 멋쟁이다. 하지만 나는 아빠처럼 엉뚱하지도 않고 엄마처럼 멋쟁이도 아니다. 아빠처럼 엉뚱하게 입을 권리도, 엄마처럼 멋을 낼 의무도 없다. 나는 그냥 나일뿐이다.

<엄마 아빠랑 난 달라요> 안 에르보 지음

  아빠는 너그럽고 엄마는 엄격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시간과 속도가 있다. 가족에게 큰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내가 정한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싶다.

 숙제를 마치고 레고를 만들면 좋겠지만, 숙제를 하다가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잠깐 쉬어갈 시간도 필요하다. 블록을 쌓다 보면 도무지 생각나지 않던 문제의 해답이 불쑥 떠오를지도 모른다. 정해진 시간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내 할 일의 순서는 내가 정하고 싶다.

 아이의 시간이 있고, 순서가 있다. 순서를 지키지 않는다고 무조건 나무라기 전에 아이의 순서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준다면 의외로 모든 게 쉽게 해결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종일 육아가 길어지는 날은 주체 없이 널뛰는 감정을 어떻게 다잡아야 할지 수시로 아득해진다. 육아 멘토들이 주목하는 좋은 부모에 대해서는 대부분 뜻을 같이 하지만, 정작 행동은 반대로 나가는 날들이 많았다. 언행불일치는 정치인들만의 주특기가 아니었나 보다. 불쑥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양가 부모님 댁에 가면 으레 등장하는 말들이 있다.


"뒤통수가 네 아빠 어릴 때랑 어쩜 이렇게 판박이야”

"ㅇㅇ야, 네 엄마는 너만 한 나이에도 동생을 잘 보살폈어”

"잠버릇까지 너 어릴 때랑 똑같네”


 같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면 필연적으로 생활 습관이나 행동이 닮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어느 특정한 부분이 비슷하다고 해서 전체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마치 그때의 나 같아서, 요즘의 내 생각과 비슷해서, 취향이 겹쳐서 나도 모르게 일방적으로 감정 이입해버린다.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이는 가족 간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통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가족 간의 문제인 경우는 좀 더 위험하다. 양육자로서의 입장이 더해지면 아이를 마치 자신의 전유물처럼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도 아이만의 주관이 있다. 아이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아빠의 꼼꼼한 성격이 유독 눈엣가시인 날이면, 아이는 좀 덜렁대더라도 느슨하고 유연한 아이였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것도 사실은 엄마의 욕심일 뿐이다. 아이의 매뉴얼은 결국 아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가족은 모두 다르다. 가족 개개인의 고유성을 인정할 때야말로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다.


 취향과 습관을 종용하지 않는 가족, 최소의 프라이버시는 지킬 줄 아는 가족, 가까울수록 거리두기를 존중하는 가족이야말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가 내키지 않는 요구를 받았을 때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기를 바란다. 건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어른으로 커가기를 바란다. 양육의 최종 목적은 아이를 잘 독립시키는 것에 있다는 오은영 박사의 말처럼 종착역에 무사히 내릴 수 있도록 아이 곁에서 묵묵히 지지하는 부모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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