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반의 연애
10년 전. 대학 생활의 꽃이라 불리던 동아리에서 우리는 그렇게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은 조금 불편한 친구사이였다. 그리고 그런 우리가 어느새 연인이 된 지 5년 반이(나) 되었다. 그때의 네가 이렇게 내 인생의 큰 부분으로 차지하게 될 줄이야.
2013년 12월 20일.
내가 너의 손을 잡아준 날.
밤이 새도록 카톡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확인한 날이었다. 진짜 밤을 새워가면서 나에 대한 마음을 돌려서 말했던 남자친구에게, 나는 '만나서 똑바로 얘기해!'라는 문자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 걸로 기억한다. 소심하게 문자로 얘기하지 말고, 당당하게 내 눈을 보고 고백을 해달라고! 다음 날 그는 '... 이런 나라도 괜찮으면.. 손을 잡아줘..(눈찔끔)'라는 촌스러운 말을 건넸고,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마침내 그 손을 잡아 주었다.
2000일 동안의 변화
남자친구가 나를 만나기 전에는 표정이 많지 않았다. 쓸 줄 아는 얼굴 근육이 한정돼있는 것 같달까? 연애 초반에는 좋다고 말은 하는데 진짜 좋은 건지 말만 좋은 건지 구분이 안 갔다. 남자친구의 사랑과 감정을 말과 글 같은 팩트로 전달받아야 했다.
- "근데, 지금 기분 안 좋아?"
- "아니? 좋은데."
무표정으로 그가 좋다고 말하면 나는 좋구나 생각해야 했다. 좋으면 오두방정 떠는 나는 자주 뻘쭘함을 느꼈다. 반면, 남자친구는 나의 표현력에 항상 신기해하며 재미있어했다. 표현력이 부족한 (상)남자친구에게 내가 더 많이 표현하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100일, 200일, 1년, 2년이 지나면서 남자친구도 자연스럽게 표정이 늘었다! 심지어 2000일이 다 된 지금은 예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그렇게 못생길 수 없는) 표정까지 지을 줄 안다. (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만의 소통하는 방식이 생겼다.
우리의 2000일, 그리고 나와 너의 타이밍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던데 우리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2000일 전부터 우리에게는 수많은 변수가 놓여 있었다. 대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던 나와 아직 졸업이 남아 있던 너. 그리고 졸업 후 예정된 군입대까지. 돌아보니 지금보다 더 불투명한 미래 속에 우리가 있었다. 그때는 졸업만 하면 이제 어른이 되어 모든 것이 술술 풀릴 거라 기대하던 갓 24살의 나와 너는 앞으로 진짜 인생을 살아가며 서로에게 이렇게나 많은 수고와 인내와 사랑을 심어야 할 줄은 몰랐을 거다. 그리고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 언제까지 함께 하고 싶은지와 같은 기간 따위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냥 함께하고 싶은 그 마음 하나로 수많은 변수들이 우리에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라고 쓰고 노력했다고 읽는다.)
특히 헤어지는 것은 결국 사랑이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믿었다. 그렇게 약한(?) 사랑을 취급하고 싶지 않았던 우리는 사랑의 기한(?)을 어떻게든 조금씩 늘려왔던 것 같다. 쉬운 연애는 아니었다. 그 안에 나는 취업을 하고, 퇴사를 하고, 진로를 고민하며 사춘기보다 더 사춘기 같은 20대 후반을 보냈다. 그 안에 그도 졸업을 하고, 군대를 가고, 진로를 고민하며 각자 챙겨야 하는 인생 속에서도 연결된 끈을 놓지 않았다. 어렵고 지치는 순간도 많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서로의 의지가 돋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며 2000일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각자의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그때 조차 '학생과 사회초년생', '군화와 곰신', '취준생과 직장인'의 시간으로, 우리의 시간이 되어 있었다.
우리의 서른, 우리의 인생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2000일 동안 내 사람, 너의 사람으로 정착된 것은 확실하다. 물론 중간에 우린 여기까지인가... 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런 상황의 어려움과 불안함 속에서도 계속 서로의 생사(?)를 확인해 왔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서른이 되었고, 이제는 우리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5년간 부족한 것 많았지만 사랑은 정말 완벽했다. 그동안 함께 성장해 온 내 동지, 내 사랑! 앞으로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