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절박한 뒷면

간직하고 싶은 그 종이

by 제이에스

벌써 서울로 온 지 5년째이다. 변했으면 좋겠는 데,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아니,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내가 변한 게 없다.


변하고 싶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이안이 아니라 대기업에서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일에 치어 힘들어하면서 퇴근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야근은 고통이겠지만, 나에게 그 고단함은 닿을 수 없는 사치였다. 그들이 지긋지긋해하는 그 일상이 누군가에겐 간절한 꿈이라는 걸 그들은 알까.


"사장님, 여기 우동 하나 주세요."


집에 가는 길에 있는 포장마차에 왔다. 나의 저녁을 책임져주는 고마운 곳. 유명 일식집에서 먹는 우동보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사실 그럴 돈이 없다.


우동이 나오기 전 자리에 앉아 구인 공고를 본다. 이제 지원할 곳도 없는 데 하루에 몇 번을 보는지 모르겠다. 아마 카톡보다도 많이 보는 것 같다. 연락 올 곳은 할머니와 지원한 회사들 뿐인 데, 한 달에 한두 번 할머니에게 연락 오는 게 전부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서울에 기댈 곳 없는 내가 기댈 곳이라곤 옆에 의자가 전부였다. 오늘은 고맙게도 4인 테이블에 앉아서 옆에 기대려 의자를 짚었다.


"응? 이거 뭐지?"


의자에 웬 종이가 있었다. 서류 같아 보이는 데? 누가 두고 간 건가?


"ㅇㅇ그룹... 와.... 멋지다...."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대기업. 지금의 나로선 지원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그곳.


예전에 편의점 알바를 했던 곳 앞에 있던 빌딩 꼭대기에 이 회사 로고가 있는 것을 보았다. 편의점에 온 손님들 중 이 로고가 그려진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아마 이 서류의 주인은 그들 중 하나였나 보다. 내가 부러워했던 사람들 중 한 명.


너무 부럽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언젠간.... 무너지지 말자. 힘내자. 평소처럼 그냥 부러울 땐 맘 껏 부러워하자. 그리고 털어내자. 그들이 이루었다면 내가 그들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안된다고 생각할수록 더 안된다. 힘내자.


우동을 기다리며 가방에서 볼펜을 꺼냈다. 그리고 나의 일기장에 쓰는 것처럼 서류 뒷면에 나의 다짐을 꾹꾹 눌러썼다. '사랑해. 힘을 내. 계속해. 널 믿어. 너니깐.' 비록 주인 없는 서류 뒷면이었지만, 마치 그 회사에서 일하는 것 같아 설레었다.


전문 용어 가득한 서류를 넘기며 나도 언젠간 그 회사에서 이런 서류를 작성하고 있을 상상을 하니 오늘따라 우동이 맛있었다. 이 서류 집에 가져가야겠다. 가져가서 힘들 때마다 보면서 용기를 얻어야지.


그 회사의 로고가 있는 서류를 보니 내일 바로 출근해야 할 것 같았다.




배가 든든해서인가, 서류 덕분인가 행복했다. 밤공기가 상쾌했다. 회사에서 야근하고 퇴근하는 길 같았다. 혼자 상상을 했다.


'집에 가서 이 서류 검토 한 번 하고, 내일 다시 보고 올려야지~ ㅋㅋㅋㅋ'


좋아서인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망상인 걸 알지만 행복하다.


"저기요!! 잠깐만요!"


뒤에 어떤 남자가 소리치는 게 들렸다. 아마 나를 말하는 거 같은데, 누...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헉, 헉.... 그.... 그 서류...."


"네... 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훔치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래도 덕분에 찾았네요. 고마워요."


"........."


"진짜, 고마워요. 나중에 포장마차에서 보면 우동이라 살게요."


"아.. 아니에요. 안녕히 가세요."


별 것도 아닌 일에 밥이라니, 얼른 돌아왔다.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는 데 조심해야지. 날 성공 시켜줄 것 같았던 부적이 없어져서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대기업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아! 낙서!"


종이 뒤에 끄적거린 낙서가 생각났다. 그 종이 중요해 보이던데.... 낙서 발견하면 기분 나쁘려나? 뭐 욕을 쓴 건 아니니깐 크게 뭐라고 하진 않겠지.... 신경은 쓰이지만 괜찮겠지. 중요한 부분마다 빨간색으로 꼼꼼하게 표시가 되어 있던데, 아마 엄청나게 중요한 기획서인가 보다. (사실은 부장에게 깨진 흔적이지만)


그 회사에 다니는 상상을 하며 침대에 누웠다. 좋은 생각을 해야 좋은 꿈을 꾸니깐.... 오늘은 그 회사 다니는 꿈이었으면 좋겠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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