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그녀의 친정엄마가 그녀의 집에 왔다. 다음 날 아침에 운동을 나가도 될까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겠다는 그녀를 엄마가 걱정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다가 또 아프면 어쩌냐고 말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아침 알람이 울렸고, 그녀는 일어났다. 아직 주무시는 틈을 타 일단은 나가봐야지 생각했다. 어제보다 따뜻하다고 하니 얇은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망설이는 사이 해가 뜨기 시작했다. 어제는 까만 새벽으로 나섰는데, 오늘은 다시 환한 새벽이다. 저기 멀리 복숭아빛으로 하늘이 물들고 있었다.
오늘은 새로운 생각 대신 어제 하던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어린 날의 그녀가 뛰지 못하던 기억 속에서 상처받았던 그녀를 만났었다. 지금까지도, 다른 건 몰라도 뛰는 것만큼은 할 수 없다고 미뤘던 이유도 알게 됐다. 그리고, 어제 온종일 그 생각을 하다가 그녀가 왜 아플 때마다 구구절절 설명하게 되는지도 알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 발목의 통증 때문에 뛰지 못하던 그때, 그런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친구들이 했던 말이 있다. "멀쩡한데 왜 뛰지 않느냐"는 것. 그랬던 거다. 그녀의 통증은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금이 간 것도 부러진 것도 아니었기에 깁스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그녀가 아플 뿐이다. 남의 눈엔 그저 멀쩡한 발목이었다.
타고나기를 약하게 타고 난 그녀의 아픔은 병원에서야 분명히 드러났다. 엑스레이를 찍거나, 초음파를 하거나, 피검사를 하거나, 소변검사를 하거나. 그런 검사를 해야만 보이는 약함이었다. 가끔이지만 병원에서 '의식소실'이라고 부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정신을 잃는 건데, 정말로 쓰러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녀가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라는 걸 모른다. 통증이 너무 심하고, 눈앞이 하얗고, 숨이 쉬어지지 않고, 말도 나오지 않지만, 그래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러다 쓰러지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말한다. 갑자기 쓰러졌다고.
그래서였다. 누군가에게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자꾸 더 자세히 말하게 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쩡하다는 걸 안다. 그런 사람이 아파서 무언가를 못하겠다고 말할 때 그게 핑계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무슨 일이 나기 전에 미리 이야기하고 쉬면, 결국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 그런데 그럴 때 또 불안해진다. 결국 크게 아프지 않고 지나갔으니 다시 또 핑계로 보일 수 있겠다고. 분명 그때 양해를 구하고 쉬지 않고 강행했다면 다시 한번 몸이 크게 무너졌을 거라는 건 그녀만 안다.
종종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건강한 몸을 타고난 사람들이 부러웠다. "큰 병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라는 말을 들었을 땐, 차라리 누구든 한 번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단한 병명이 있었으면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대단한 병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약한 것뿐이어서 다행이라는 걸. 이렇게 매일 아프면서 오래오래 살까 봐 걱정된다고 말하면서, 그런 걱정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도 안다.
그리고 보니 그렇다. 그녀는 매일 아프면서 오래 사는 대신,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서 지금 걷고 뛰기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골골 백세 대신 튼튼 백세를 꿈꾸고 싶어서, 한 번쯤 조금은 더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 3인칭 관찰자 러닝 일지 어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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