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어린 그녀를 만났다

새벽운동 7일 차

by 쏘냐 정

5시 30분, 오늘은 30분 일찍 알람이 운다. 6시 기상에 조금 자신이 붙었는지, 그녀는 호기롭게 5시 30분으로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들었다. 못 일어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5시 30분에 침대에서 몸을 꺼내는 데 성공했다. 모닝페이지를 20분가량 쓰고 나가더라도 아직 어두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상시간을 30분 앞당기는 수밖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터였다. 한 번도 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사실 걷는 건 전부터 좋아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면서 자신의 걷기 여정들을 떠올려 본다.



"너 또 주말에 그렇게 걷고 그러지 마." 입사 1년 차였던 20대 중반, 금요일 회의 중에 부서장님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 무렵의 그녀는 주말마다 미친 듯이 걸었었다. 뛰는 건 자신 없지만 걷는 건 자신 있었다. 원래 걸음이 빠른 편이기도 하지만, 마음먹고 걸을 때는 평소와는 좀 달라야 할 것 같아서 속도를 높여 걷는 편이었다. '그래야 걷는 보람이 있지' 하면서 말이다. 당시 그녀가 살던 곳이 양재였는데, 삼성동 코엑스에 영화를 보러 갈 때면 한 시간 반쯤 일찍 나서 걸어갔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또다시 걸어서 돌아왔다. 못 걸을 거리는 아니지만 보통은 당연히 차를 타고 다니는 거리이니, 다들 신기해했다. 어딘가 가야 곳이 생기면 일단 지도를 폈고, 편도 2시간 이내에 도착이 가능할 것 같으면 일단 걷는 걸 고려해 보는 그녀였다. 부서장이 저렇게 말한 건,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싶어 걷기를 선택한 그녀의 선택이 옳지 않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자꾸 아픈 게 과하게 걸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옷을 입고 신발을 챙겨 신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 밖으로 나섰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포근하다. 시간이 30분 이르니 더 추울 거라 생각하고 따뜻하게 챙겨 입었는데, 아마도 좀 걷다 보면 덥겠다 싶다. 아파트를 빠져나와 작은 길을 건너고, 늘 걷던 그 천변 길 위에 내려섰다.

도시 한가운데, 사실 그리 아름답지 않은 풍경에서 듣는 물소리라고 하기에는 청명하고 고요한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생각이 자꾸 꼬리를 문다. 20대로 거슬렀던 생각은 다시 더 어린 시절 10대의 그녀에게까지 닿았다.


어릴 때도 그녀는 약한 아이였다. 지금보다 훨씬 약한 사람이었다. 종종 지금의 그녀를 돌아보면서 '그래, 이만하면 많이 건강해졌지.' 생각할 정도다. 그녀는 어릴 때 아토피가 있었다. 1년의 반은 진물이 나는 피부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 지금은 아토피라는 말이 흔하지만, 그때는 그리 흔치 않던 시절이다. 종종 친구들은 '왜 너는 피부가 이렇냐'고 묻곤 했다. 두드러기가 없는 날이라고 남들처럼 피부가 깨끗했던 건 아니다. 어떤 친구는 '왜 니 피부는 뱀껍질같냐'고 묻기도 했다. 열 살, 열한 살. 아직 어린 시절이었다. 친구들은 순수했고 그래서 그저 궁금했을 뿐이었고, 어린 여자아이였던 그녀는 상처받았다. 정말 다행인 건 얼굴 피부는 멀쩡했다는 것. 원한다면 옷으로 피부를 가릴 수 있었다. 진물이 심한 날이면 옷을 입기도 어려워서 결국 짧은 옷을 입고 피부를 드러내야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토피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의 약함을 더 분명히 보여야 하는 건 체육 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뛸 수가 없었다. 천식 때문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멀쩡한데 조금만 뛰면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천식이 심해졌다. 아마도 아토피와 천식은 세트가 아니었나 싶다. 뛰어야 하는 수업이 있는 날은 스탠드에 앉아 참관하는 날이 늘었다. 운동회 때는 그래도 달려보겠다고 달리기에 참석하고 숨이 돌아올 때까지 한참을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는 아직 어렸고 그냥 괜찮았다. 그녀는 종종 생각한다. 어쩌면 그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닌가 하고. 다른 친구들처럼 밖에서 뛰노는 걸 즐길 수 없는 아이였다.


뛸 수 없음이 더 슬퍼졌던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사실 어릴 때에 비하면 천식은 훨씬 나아졌었는데, 그 무렵에는 발목에 문제가 생겼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도 결국 낫지 않았다. 당분간, 그러니까 자라는 동안은 무리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체육시간에도 달리는 수업은 참관을 하라고 권했다. 조금만 무리해도 절게 될 정도로 통증이 심해지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1년이 가량 체육시간에는 스탠드를 지켰다. 남들처럼 마음 놓고 달릴 수 없다는 것보다 더 슬펐던 건 친구들의 시선이었다. 나도 쉬고 싶은데 쟤만 왜 쉬냐는 시선. 그러면서도 공부는 또 악착같이 하는 내가, 체육 실기 0점은 피하기 위해 시험일에만 운동장에 내려오는 걸 보며 '시험 볼 때 보니 뛸 줄 알던데 왜 평소에는 엄살 부리며 앉아있냐'는 비아냥거림도 종종 들었다.


어릴 때부터 그녀에게 운동은 '내 것일 수 없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래서였다. 언제나 그녀는 운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요가를 하면서 자유를 느꼈고, 여기저기를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어쩌면 무의식은 운동을 소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고 숨차지 않는 동작들을 찾아다닌 건지도 모른다.


새벽운동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걷다가 체력이 좋아지면 뛸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다. 그래서 1분 러닝을 시도했고, 오늘은 2분을 뛰고 걷다가 다시 1분을 뛰어서 3분 러닝에 성공했다. 뛰고 나서 가만히 보니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어린 날의 그녀가 아니었다. 발목에 생겼던 딱딱한 몽우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니 이제 뛰어도 그때처럼 아프지 않다. 아토피도, 천식도 크면서 많이 약해졌다. 이제는 아주 가끔만 나타나는 존재다. 2분을 내리 뛰면 숨이 차지만, 이건 천식에 의한 이상징후가 아니고 그저 뛰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정상적인 숨참이다. 더 이상 그녀는 어린 날의 '비정상적이었던' 자신에게 갇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체육시간마다 스탠드에만 앉아있게 했던 발목 몽우리가 없어지고 천식이 거의 사라졌다 해서 갑자기 건강한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이제는 어디 큰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매일 골골거리는 일상을 산다. 병원에서는, 이상은 없지만 타고나기를 기능이 약하게 타고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저 받아들이고 조심하는 수 밖에는 없다고. 그래서 지금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뛰는 걸로 시작할 수 없다면 걷는 걸로 시작하기로 했고, 당장 10분을 뛸 수 없다면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10분을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일단 1분이라도 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게 큰 수확이다.


운동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여보겠다는 욕심을 내려놓는다. 2분. 2분이면 족하다. 앞으로 몇 주는 2분으로 그저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오늘 3분을 달렸으니 넘치게 칭찬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새벽을 등지고 집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달리기가, 느리게 그리고 행복하게, 오래 지속되기를 응원한다. 그리하여 이 3인칭 관찰자 운동 일지도 길고 긴 이야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지난 3인칭 관찰자 러닝일지]


https://brunch.co.kr/@jsrsoda/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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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jsrsoda/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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