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보다는 실행, 새벽운동 대신 백화점

새벽은 아니지만 운동 9일 차

by 쏘냐 정

새벽의 비소식이라니. 그녀는 당황했다. 큰맘 먹고 시작한 새벽운동에 위기가 닥쳤다. 이번주는 월, 화, 수, 목, 금 쭉 이어서 5일의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목요일에 구멍을 만들어야 하다니. 하루쯤 운동을 쉬어도 큰일 나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초조해졌다. 목요일을 쉬면 금요일에 또 나가기 싫어질 것 같아서였다. 새벽에 못 하면 비가 그친 밤에 해도 되겠지만, 그건 금요일 새벽 운동에 더 악영향을 미칠 것 아닌가. '그냥 우산을 들고나가서 걷기만 할까? 우산을 쓰고 뛰는 건 무리라도 걷는 건 괜찮지 않겠어?' 했는데, 이번엔 황사 소식까지 들려왔다. 최악의 황사가 올 예정이란다.


꼭 그 시간에, 꼭 그 새벽에, 운동하고 싶었다. 그 시간이 아니라면 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적당히 어슴푸레한 시간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그리 많지도 않은 그곳에서라야 뛸 마음이 들었다. 뛰는 걸 포기하면 수많은 시간대가 후보로 나타나지만, 그녀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낮에는 운동보다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다. 그녀가 아는 그녀는 그것들을 내려놓고 운동하러 결코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비가 오는 데다가 황사까지 있는 날 새벽 운동은 무리다 싶었다.


결국 새벽 6시에 기상했지만, 밖을 한번 살피고는 책상에 앉았다. 나가서 걷고 뛰는 대신 모닝페이지를 폈고 다른 날보다 정성 들여 천천히 모닝페이지를 썼다. 그러고 나서는 책을 폈다. 쓰기를 위한 책을 읽었다.


그럼 9일 차 그녀의 운동은 어떻게 됐을까? 기적적으로 그녀는, 하루의 틈에서 운동할 시간을 찾았다. 장소는 더 의외였다. 그녀가 한 번도 운동 장소로 생각해보지 못한 곳. 판교 현대 백화점.


오늘은 12시에 판교에서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집에 다니러 왔던 친정엄마가 10시 20분쯤 집을 나섰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것 아닌가. 수서역에서의 약속을 위해 나가야 할 시간이 딱 그 시간이었다. 엄마와 함께 나서면 판교에 11시쯤 도착할 테고 1시간이 빈다. 으음, 비와 황사를 피할 수 있고 마음껏 걷는 것도 가능한 곳.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백화점은 이런 날 걷기 운동을 하기에 딱 좋은 곳 아닌가. 비록 뛸 수도 없고, 파워 워킹을 한다고 해도 속도는 적당히 줄여야겠지만, 어차피 비는 시간이니 30분 정도 걷는 게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의 운동은 시간낭비로 여기고, 시간낭비를 제일 싫어하는 그녀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새벽 운동이라 부른다고 해서, 모든 대안이 새벽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매일 30분씩 걷되 그중 몇 분은 뛰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해서, 걷기만 가능한 환경을 버릴 이유도 없다. 그 당연한 걸 그녀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은 것. 세워둔 목표의 틀 안에 꼭 맞게 들어가고 싶었다. 문제는 그러려고 했더니 '목요일 운동은 패스'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틀을 조금 비틀어도 된다고 생각했더니, '백화점에서 30분 파워 워킹'이라는 옵션이 도출됐다.


오늘 그녀는 30분 걷기 미션을 달성했다. 백화점에 도착해서 러닝 앱을 켜고 1층부터 8층까지 구석구석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가끔 눈길이 끄는 제품이 나타나면 저절로 속도가 줄기는 했지만, 30분 후에 이 매장에 가봐야지 생각하며 다시 속도를 붙였다. 덕분에 백화점 구석구석 어떤 매장이 있는지도 알게 됐다. 궁금해하던 '해피어 마켓'도 찾았고,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던 명품 트렌드도 후루룩 볼 수 있었다.


그렇게 9일 차 운동 완료. 머릿속에 있는 완벽한 운동 장면을 지워본다. 가끔은 틀을 지키지 않아야 조금 더 이룰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경우가 있다.


백화점에서의 운동 인증


- 3인칭 관찰자 러닝 일지 지난 글

https://brunch.co.kr/@jsrsoda/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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