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글쓰기의 상관관계

새벽운동 10일 차

by 쏘냐 정

3분 31초. 스톱워치를 맞추고 천천히 달리다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싶을 때쯤 속도를 늦추고 확인해 보니 3분 31초였다. 한 번에 뛰는 시간이 2분을 넘어본 적 없으니 3분 31초는 놀라운 기록. 다시 페이스를 조절해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 그녀는 생각한다. '아직 내 안엔 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구나.' 3분 31초를 달렸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더 달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멈춘 건, 더 달리면 무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지, 도저히 더 달릴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뛰는 법엔 전력질주도 있지만 천천히 뛰는 법도 있다. 지금 그녀는 천천히 뛰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녀의 빠르게 걷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속도로. 같은 속도라 해도 뛰는 것과 걷는 것은 차이가 있다. 비록 차이는 있지만 조금 더 해볼 만 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가끔은 늦추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내 안의 에너지를 아껴둘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3분 31초의 기록을 보고 그녀는 또 생각한다. 매일 이렇게 걷고 뛰러 나오게 하는 동력이 뭘까. 건강해지고 싶은 열망. 나도 뛸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주는 뿌듯함. 시작했으니 포기할 수 없는 마음. 성실에 대한 압박. 함께하는 커뮤니티의 응원.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매일 쓰는 운동일지가 아닐까.


최근에 그녀는 '창고살롱'이란 커뮤니티의 뉴스레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한 달간 매주 목요일 한 편씩 글을 적어 보냈다. 그 글은 계속해서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그녀가, 자신의 글쓰기 여정을 다져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삶은 글에게, 글은 삶에게 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녀가 운동일지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런 자각이 뚜렷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글을 쓰는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그녀에게 모든 것은 글의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소재는 풍부해졌고, 가만히 있을 때라도 머릿속은 분주했다. 원래 각종 단상으로 가득 차는 머리를 가진 덕에 그녀는 계속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다채로워지고 싶다 느낄 때는 새로운 것으로 삶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사는 건 결코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도전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망설일 때, 실패를 조금 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되어준 건 분명 글쓰기였다. 실패에도 과정은 있고 그건 글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모든 길을 의미 있게 했다. 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 버리는 경험도 버려진 시간도 사라진 느낌이었다. 쓰다 보면 모든 것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쓰지 않았으면 잊어버렸을 것들을 기록으로 묶어둠으로써 흘러간 시간이 물성을 가졌다. 손으로 직접 만질 순 없어도, 마음이 만질 수 있었다. 그 시간의 나를, 그때의 내 노력을, 그 순간의 공기와 생각을.


새벽 운동을 하고 들어와서 운동일지를 쓰다 보면, 더 오래오래 남기고 싶어 진다. 지금의 2분, 3분이, 100일 후에는 몇 분이 되어있을지 궁금하다. 이 이야기가 기록상으로도 발전 있는 러닝일지가 될지, 그저 2~3분에 머무르는 게 마땅하다는 결론을 남기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래도 100일 뒤의 깨달음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미약한 시작의 기록은 지루한 글이 될지 모르지만, 기승전결의 '결'이 존재하려면 일단 '기'가 있어야 하는 법. 지금 '기'를 쓰고 있다는 마음으로 그녀는 새벽에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역시 그렇다. 이번에도 글은 뛰는 삶의 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 3인칭 관찰자 러닝 일지 지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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