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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Aug 23. 2023

7살 아이가 수술보다 싫다고 한 것

내 아들의 사고를 예감하는 엄마들에게...

수술날 아침이 밝았다. 예상대로 병원에서의 아침은 아주 일찍 시작됐다. 6시 즈음이 되어 간호사 선생님이 빼꼼히 커튼을 젖혔다. "이제 링거 꽂고 채혈할 시간이에요." 수술용 링거, 어젯밤에 경고했던 바로 그 굵은 바늘을 꽂을 때가 됐다. 역시 어제의 나처럼, 아이는 지난 독감 링거의 기억을 꺼냈다. 


"이거 그때 맞은 거랑 같은 거지? 그때처럼 안 아프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엄마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나는 매번 고민한다. 바로 드러날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아서다. "응. 안 아파."라고 한다면 아이가 팔을 내밀게 하는 과정이 쉬워지겠지만, 곧이어 "엄마가 안 아프다고 했잖아."라는 배신감 앞에 서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른 말을 찾았다.


"꿈이야, 이 링거는 그때 맞은 거랑 다른 거야. 그래서 그때랑 느낌이 다를 수 있어. 중요한 건, 이번에도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거야. 좀 아플 수도 있는데, 그때 움직이면 바늘이 주변까지 찔러서 더 아프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 지난번이랑 바늘은 다르지만 들어갈 때만 아프고 그다음에는 바늘이 꽂혀있어도 안 아픈 건 같아. 아프면 소리 질러도 되고 울어도 돼. 그건 괜찮아. 대신 절대 팔을 움직이지는 마."


지난번이랑 같지는 않다는 말에, 아파도 움직이지는 말라는 말에, 아이는 또 예감했을 거다. 자연스레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런데 꿈이야. 이건 꼭 해야 하는 거야. 이 링거바늘을 꽂아야 앞으로 주사 맞을 때마다 다시 바늘을 찌르지 않고 약만 연결해서 쏙 넣어줄 수 있어."


끄덕끄덕. 아이는 엄마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리고, 안 해도 되는 거라면 "싫으면 안 해도 된다."라고 말할 엄마가 "꼭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상, 절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이렇게 설명할 때마다 나는 아이가 나의 마음과 의도를 읽어줄 거라 믿는다.


내가 아이의 팔을 잡았고, 주삿바늘은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는 짧고 굵게 울었다. 울면서 고개는 돌렸지만, 팔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의 팔을 펴 손목을 잡고 고정했던 내 손에는, 팔에 힘을 주는 작은 움직임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우리 집 둘째 7살 꿈이는, 아픔을 잘 참는 수월한 아이는 아니다. 어릴 때부터 둘째가라면 서러울 목청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미장원에서는 (아픈 것도 아닌데) 자르다 포기해야 할 만큼 울어댔고, 소아과에서는 울면서 재빠르게 도망가는 능력도 출중해서 "어머님, 다음에는 아버님이랑 같이 오세요." 하는 말을 듣게 했다. 태어날 때부터 키도 크고 근육도 탄탄했던 아이는 힘까지 좋아서, 내가 아무리 꽉 안아도 날쌔게 빠져나가 문으로 돌진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분명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애를 안고 있었는데) 미꾸라지처럼 밑으로 후룩 내려가더니 바닥에 닿자마자 기어서 나간 적도 있다. 


그런 아이가 엄마 말에 끄덕거리고 팔을 내주고 힘을 빼고 가만히 있는 모습이 내게는 기적 같았다. 처음 팔을 다쳤다고 했을 때, 그렇게까지 심한 건 아닐 거라 생각한 이유도 이거였다. 크게 다쳤다면 그만큼만 징징거릴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한 발짝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계속 팔을 잡아달라며 조금만 움직여도 "아야"를 연발하긴 했지만, 그건 꿈이이기 때문에 조금만 다쳤어도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했다. 엑스레이 상의 완전히 어긋난 뼈를 보고 뒤늦게 미안하고 속상했지만, 동시에 감동했다. 이 정도면 정말로 많이 아팠을 텐데, 그에 비해서는 아이가 차분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엑스레이를 찍으며 팔을 이리저리 비틀 때도 아프다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이것만 하면 돼요? 빨리 해주세요. 너무 아파요." 하는 아이는 의젓하기까지 했다. 울지 않아서가 아니라, 울면서도 끝까지 해내서 그게 참 기특했다.


나도 그렇게 굵은 링거를 맞아본 적이 있다. 생각보다 많이 아프다. 그걸 아이는 3초의 울음으로 이겨냈다. 이 얼마나 커다란 발전이란 말인가. 어쩌다 보니 링거 이야기에 또 많은 시간을 섰다. 하지만 아이가 수술보다 싫다고 했던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머님, 이제 검사받으러 갈 시간이에요."


수술 전 CT와 MRI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직 맞춰주지 못한 팔을 다시 이리저리 움직이며 검사할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도 해야 할 일. 아이 손을 잡고 내려갔다. 그런데 내가 영상의학과 접수를 하는 사이, CT실에서 아이를 쏙 데리고 들어간 것 아닌가. 아주 활발해 보이지만 사실은 겁이 많은 아이다. 엄마의 설명 없이 선생님들과 검사실 폐쇄룸으로 들어갔으니 얼마나 무섭겠는가. 게다가 또 그 팔을 움직여야 한다니. "아파요. 아파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검사실 선생님한테는 일상일 그 울음이 엄마에겐 다르다. 얼른 검사실로 들어갔더니 무미건조한 답이 돌아왔다. "보호자는 나가 있으세요." 아니, 애한테 상황설명도 못했는데 나가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꿈아, 엄마 이 앞에 있을 거야. 아프지만 꼭 해야 하는 거니까 잘하고 나와." 외치고는 밖으로 나왔다. CT를 마치고 나니 MRI. 이번에는 검사실 선생님이 보호자도 들어와도 된다고 한다.


"엄마, 나 팔 이렇게 띄우고 드는 거 너무 아픈데, 그거 또 해야 돼?"

"응. 한번 더 해야 돼. 아프지만 이 검사도 꼭 해야 하는 거거든. 자세 잡을 때 또 아프면 울어도 괜찮아. 근데 그래도 꼭 해야 하는 거라서 안 할 수는 없어. 한 번만 더 참자."


그랬더니 또 끄덕끄덕하는 아들. 눈물을 흘리면서 결국은 몸에서 팔을 멀리하는 자세를 잡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바로 이 MRI가, 아이가 퇴원 후에 밝힌 수술보다 더 싫은 그것이었다. 엑스레이도, CT도 모두 팔을 이리저리 움직인 건 마찬가진데 왜 MRI만 유독 싫다고 했을까? 아마도 MRI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쉽게 답을 떠올렸을 것이다. 굉음. MRI 기계가 내뿜는 굉음 때문이다.


꿈이는 유별나게 소리에 예민한 아이다.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만 들어도 기겁한다. 공중 화장실에 가면 아이를 내보내고 물을 내려야 할 정도다. 얼마 전 버스를 타서 뒷문 근처에 앉았는데, 문이 여닫힐 때마다 끼익 거리는 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나는 전혀 거슬리지 않아서 처음엔 애가 왜 그러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정도의 소리였다. 그런 아이가 MRI 통 속에 들어가서, 귀마개에 헤드셋까지 끼고도 막을 수 없는 굉음 속에 20~30분을 버텨야 한다. 


"꿈이야,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 엄청 큰 소리가 날거거든. 근데 전혀 위험한 건 아니야. 이번에도 중요한 건 움직이지 않는 거야. 움직이지 않아야 검사를 제대로 할 수 있거든. 만약에 중간에 꿈이가 움직이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수도 있어. 그러면 검사 시간이 더 길어지겠지? 엄마가 꿈이 발목 딱 잡고 여기 있을 거야. 아무리 큰 소리가 나도 움직이지 말고 끝이라고 할 때까지 누워있어야 해."

"응."


이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굉음의 정도를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 검사가 시작되고 처음 굉음이 시작됐을 때 아이는 몸이 튀어오를만큼 깜짝 놀란 걸 보면 말이다. 자신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놀람과 파동이었다. 그때부터 20여분의 시간. 아이는 종종 흑흑 흐느꼈고, "엄마 다 끝나가?"라고 물었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도 끝까지 움직이지는 않았다. 너무 숨을 크게 쉬는 통에 팔이 흔들리지 않았을까 걱정이 돼서, "꿈이야, 숨을 조금만 살살 쉬어볼까."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한 번만에 무사히 검사를 마쳤다. 통에서 나오자마자, 너무 잘했다고, 진짜 멋지다고, 마음을 담아 안아줬다.


이제 곧 수술. 수술 전 의사 선생님이 병실 복도 컴퓨터 앞으로 보호자를 불렀다. 가보니 CT, MRI 자료를 열어서 보고 있다. "다행히 딱 뼈만 부러졌고, 주변 신경이나 근육은 괜찮습니다. 여기 신경이 안쪽에 있으면 수술하면서 뼈 맞출 때 신경이 끼어들어갈 수 있어서 더 조심해야 하는데, 이렇게 신경은 바깥쪽으로 깔끔하게 있어서 제가 수술하기도 수월할 것 같아요." 다행이다. 신경도, 근육도 괜찮으니까. 성장판도 괜찮을 거라 하니까. 


그리고 바로, 수술실에 내려갈 시간이라는 콜을 받았다. 


사진: Unsplash의Martha Dominguez de Gouveia


* 이제 드디어 다음 이야기에서는 수술실에 갑니다. 아이가 수술보다 MRI가 무섭다고 한 것처럼, 저는 수술 자체보다 전체 과정이 더 기억에 남았어요. 특히 아이가 기특하다 여겼던 순간들이요. 그래서 이번 글도 짧게 줄이지 못했습니다.


** 이 글은 아래의 글들에서 이어집니다. 아직 읽지 못하셨다면, 먼저 읽고 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1. 아들이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https://brunch.co.kr/@jsrsoda/169

2. 팔이 부러지면 깁스를 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요?

https://brunch.co.kr/@jsrsoda/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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