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은 수술을 불렀고..
10시 15분, 아이를 태워 갈 휠체어가 도착했다. 아이는 특별한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휠체어에 앉았다. 골절의 통증이 너무 큰 상태다 보니 '수술'에 대한 공포를 가질 수도 없었던 것 같다. 수술만 하고 나면 안 아파진다니까 오히려 덤덤한 느낌이었다. 수술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꿈이, 수술 잘 받고 와." "응." 수술실 문이 열리고, 혼자 들어가면서도 아이는 씩씩했다. 들여보내고 휠체어를 밀어주신 분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불쑥 말을 건네신다.
"아이가 참 씩씩하네요. 여기에서 우는 아이들이 참 많은데. 아마 수술 잘 받고 나올 거예요."
그 말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그래. 많이들 하는 골절 수술이라잖아. 이제 마음 편히 먹고 기다리자.'
내 아이의 팔이 부러지고, 수술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전까지, 나는 골절 수술이 이렇게 흔한지 몰랐다. 그런데 처음 골절 진단을 받은 병원에서 수술 가능한 큰 병원을 찾으라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었다. "이 부분이 원래 잘 부러져요. 아이들이 골절 수술을 제일 많이 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많이들 하는 수술이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런데 많이들 하는 수술이라고 해서, 내 아들의 수술이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타인의 큰 질병보다 나의 작은 상처가 더 신경 쓰이는 게 인간이어늘. 그래도 흔한 수술이라면 의사 선생님의 경험이 많을 수밖에 없고, 경험이 많다면 실수 가능성도 적을 테니, 모든 것이 수월하게 잘 흐를 거라 믿기로 했다.
수술이 가능한 큰 병원이기는 하지만 대학병원만큼 크지는 않아서인지 수술 중 보호자 대기실이 따로 없었다.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끝나고 올라올 때 호출해 준다고 했다. 어젯밤 아이와 둘이 비좁게 누웠던 침대 위에 올라가 앉았다. 아이에게 집중하느라 멀리 두었던 핸드폰을 열고, SNS 창을 열었다. 걱정한다고 수술이 더 잘 되거나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도 아니니까.
전 날 진료 때 선생님은 수술 시간은 30분~40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수술 날 아침, 담당 간호사 선생님은 넉넉잡아 한 시간이면 끝날 거라고 했다. 이후 마취깨는 것도 보고 필요한 엑스레이도 찍고 하다 보면 시간이 더 걸릴 수는 있다면서. 그런데,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1시간 30분. 수술이 끝나고도 남을 시간이 아닌가 싶은데 아무 연락이 없다. 스멀스멀 불안이 올라와 간호사실을 찾았다. "꿈이 수술이 아직 안 끝났나요?" "아, 아마 수술은 끝났을 거예요. 그런데 아직 수술실에서 연락받은 건 없어요. 걱정 마시고 병실에서 기다리시면 돼요." 으음. 간호사실 선생님들이 이렇게나 대수롭지 않은 것 보니 걱정할 일이 아닌가 보다. 다시 병실에 와서 기다려 본다.
만으로 6세, 한국나이 7세. 키는 130cm, 몸무게 24kg. 병원에서는 '애기'라고 불리는 이 아이는, 아직 어리고 작아서 마취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최종적으로 마스크를 통한 수면마취를 하기로 했다. 대장내시경을 할 때마다 수면 중에 깨는 사람인지라, 수면 마취라는 말에 겁이 덜컥 났다. "혹시 마취 중에 아픔을 느끼거나 깨어나거나 그럴 가능성은 없나요? 내시경 할 때 하는 그거랑 같은 건가요?" 물었더니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술 후 무통주사를 사용할 수 있을지 여부도 마취과 선생님과 의논해서 수술 시 결정한다고 했다. 그래도 수술인데 무통 없이 통증 조절이 가능할까. 둘째 출산 때 무통천국을 맛봤던 터라 이 역시 걱정이 됐다.
12시 15분쯤, 아이는 수술 후 처치와 엑스레이 촬영까지 끝내고 병실로 올라왔다. 아이가 너무 어려 무통은 달지 못했다고 한다.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 주사를 추가할 테니 바로 얘기해 주세요." 회복실, 마취에서 깨고서도 엄마를 찾거나 울지 않았다고 했다. 내 아이가 이만큼 큰 걸, 이런 일을 겪고서야 알게 됐다. 비록 마취도 무통도 제약이 있는 '애기'지만, 마음은 형아가 되어 있었다.
침대에 옮기는 동안에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질문에도 쫑알쫑알 대답도 잘하더니, 곧 다시 잠이 들었다. 수술 후 한 시간 정도 후에는 식사를 해도 된다고 해서 점심을 받아 보관해 뒀는데 깨지를 않는다. 결국 2시 15분이 되어서야 깨어난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일단 물을 먹이고 죽을 갖다 줬다.
"이야, 고생하고 나서 먹는 밥이라 그런지 진짜 맛있구먼."
수술을 마친 아이답지 않은 익살스러운 표정과 말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맛있을 것 없는 죽이 맛있다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결국 반쯤 먹더니, 이제 맛이 없어졌단다. 배가 불러졌나 보다. 그래. 좀 있다 다른 거 더 먹으면 되지, 모. 밥상을 치웠다.
"엄마, 나 아파."
"아. 그래? 아프면 바로 진통제 달아준댔어. 엄마가 얼른 얘기하고 올게."
사실 수술 들어가기 전, 아이가 나에게 신신당부한 게 있다. "엄마. 나 마취 깨기 전에 꼭 진통제 달아달라고 해." 수술이 필요한 건 알지만 통증은 무서웠던 것. 진통제만 달면 아프지 않을 거라는 내 말을 굳게 믿은 아이는, 마취가 깨기 전 진통제를 달면 아프지 않을 거라 믿었고, 그래서 수술실에 들어가는 걸음이 가벼웠는지도 모른다.
아직 진통제가 안 달려있다니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싶어 설명해 주기로 했다. "꿈이가 아직 어려서 무통주사를 달 수가 없었대. 그래서 수술실에서 바로 진통제를 못 달았어. 그래도 지금 진통제 달았으니까 곧 괜찮아질 거야." 끄덕끄덕. 이 아이를 키우면서 이렇게 순순히 끄덕끄덕하는 모습을 자주 본 적이 있던가. 새로운 상황에, 설명이 필요한 상황에,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상황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면서 우리 사이의 신뢰도 쌓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와중에 또 그게 감사하다.
사실 수술하는 날보다 더 크게 엄마의 마음이 일렁인 건 그로부터 3일이 지나서였다.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올라와 침대에 옮기고 이런저런 확인을 하는 동안, 의사 선생님이 보호자를 불렀었다. 이번에도 컴퓨터 화면 앞이다. "오늘 수술은 잘 됐어요. 아주 예쁘게 잘 맞춰졌어요. 이쁘죠? 이렇게 핀이 세 개 꽂혀있고요." 곧아진 뼈를 선생님은 예쁘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내 시선을 잡아 끈 건 곧은 뼈가 아니라 (수술 후엔 당연히 뼈가 곧게 맞춰져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기다란 핀이었다. 각각 길이는 10센티, 두께는 2mm는 될 것 같은 핀 세 개가 아이의 가는 팔 안에 거침없이 박혀있었다. 수술 후 붕대를 칭칭 감고 올라왔기 때문에 실물은 확인도 못한 핀.
"그럼 이 핀의 끝부분은 밖으로 나와있는 건가요?"
"네."
"뽑는 게 힘들진 않나요?"
"그럼요. 간단해요. 처치실에서 10초면 끝나요."
저렇게 긴 핀을 빼내는 과정이 아이에게 간단하고 쉬운 것일 리 없지만 이 역시 지나가야 할 일이니, 간단할 거라 믿기로 했다.
수술 3일 후, 드레싱을 위해 다시 찾은 병원. 반깁스와 붕대를 풀고, 수술부위 확인을 하고 통깁스를 했다. 정기적으로 핀 꽂은 부위 드레싱을 해야 하니 핀 꽂은 부위에는 구멍을 냈다. 내 아들의 팔에 꽂힌 세 개의 핀을 처음으로 대면하는 날. 하아, 마음이 기묘하게 무거워진다. 나도 모르게 자꾸 기다란 핀이 헤집고 들어갔을 아이의 팔 내부를 그리게 된다. '아니야. 내 생각보다 수월한 걸 거야. 내 생각처럼 끔찍하진 않을 거야.' 내 눈빛에서 불안이 읽히지 않기를 바라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이거 별거 아니야. 진짜 별거 아니야.' 아이에게 텔레파시를 보낸다.
* 이 글은 아래 글들에서 이어지는 시리즈 글입니다. 읽고 오시면 이 글 이해하기가 더 좋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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