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끝났다. 조금 지나니 마취에서도 완전히 깨었다. 통증을 호소하는 아이의 링거에 진통제를 달았다. 이 진통제의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가 무통천국이라 부르는 무통주사보다는 분명 약할 텐데, 이게 아이의 통증을 완전히 잡아줄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걱정이 솜털처럼 쌓여갈 때, 아이가 말했다.
"엄마, 근데 왜 진통제 달았는데도 아프지? 이게 시간이 필요한 건가? 그럼 좀 기다려야겠다."
자문자답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통제의 효과를 의심하지 않는 아이. 단지 시간이 필요할 거라 믿는 아이. 생전 처음 하는 수술,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아픔이다. 상황의 두려움을 확대하기보다 나아질 거라 믿는 아이가 대견해 보였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통증이 잡혔다.
"꿈이야, 아직 아파?"
"음. 아프긴 한데 참을 정도로 아파. 이제 괜찮아."
참을 정도로 아픈 건 어느 정도일까. 나는 아이와 똑같이 느낄 수 없지만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고 몸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안심이 됐다.
"엄마, 나 1층에 있는 편의점 가고 싶어."
수술을 위한 단식 전에 간식이라도 사주려고 했었는데, 잠드는 바람에 가지 못했던 편의점. 이제 단식이 풀리니 생각이 난 거다. '간호사 선생님이 오늘 하루는 맵고 짠 거나 밀가루 음식은 피하라고 했는데 어쩌지?' 아이가 먹고 싶어 할 건 모두 밀가루로 된 과자들일 텐데 어쩌나.... "꿈아, 근데 오늘은 밀가루는 먹으면 안 된대. 과자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어. 밀가루 말고 소화 잘되는 간식 먹을 게 있는지 가볼까?" "왜? 진짜? (잠시 침묵) 알았어."
난생처음,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바퀴 달린 거치대를 질질 끌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구석의 "환자 배려석"를 발견하더니 얼른 가서 엉덩이를 붙인다. 다리가 아픈 것도 아닌데 왜 앉는 건가 싶어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의 대답. "엄마, 나 환자잖아." 그렇지. 너 환자지. 스스로 환자라는 자각이 뚜렷했나 보다.
수술 약 네 시간 후, 나는 환자다.
역시나 편의점에는 밀가루를 제외하니 아이가 고를만한 게 별로 없다. 겨우 음료수 하나 사서 올라오는데 "엄마, 혹시 과자 먹으면 안 되는지 간호사 선생님한테 한 번 더 물어봐주면 안 돼?" 한다. 역시 아쉽긴 했나 보다.
"저기요, 혹시 꿈이 이제 과자 같은 거 먹어도 될까요?"
"네."
"아, 아까 수술 끝나고 나서 혹시 모르니 오늘은 피하라고 하셨었거든요."
"아까 죽 먹고 괜찮았죠? 그러면 이제 먹어도 돼요."
옆에 선 아이의 표정에 햇살이 내린다.
"오, 꿈이야. 먹어도 된대. 일단 병실에 가면 엄마가 어제 가져온 과자가 많거든. 그것부터 먹자."
과자를 먹을 수 있어 행복한 꿈이.
"꿈이 어머님~~" 병실로 돌아와 간식 가방을 여는데, 커튼 밖에서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커튼을 열어 빼꼼 고개를 내밀었더니, 소곤소곤. "혹시 꿈이 이거 줘도 돼요?" 손에는 초콜릿과 젤리가 있었다. "네네. 그럼요. 얘 이런 거 다 먹어요." 간호사 선생님들이 얼른 들어와 간식을 건네주는데 막상 꿈이는 쑥스러워서 데면데면. 비록 병원이지만, 우리 아이가 사랑받고 있어서 엄마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가져다 준 간식.
꿈이가 수술한 병원은 크긴 하지만 아이들이 많은 병원은 아니다. 경황이 없기도 했고, 어디서든 빨리 해결하고 싶기도 해서, 그런 것까지 고려해 가며 병원을 선택하진 못했다. 아이들을 주로 수술하는 병원이 있으니 그리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는 지인의 전화를 받고도 그대로 눌러앉은 건, 이미 힘든 검사와 단식까지 한 상황에서 아이를 더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복잡하고 특이한 수술이 아니니, 여기서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한 이유 중엔 이런 것도 있었다. "거기 어른들, 특히 크고 비싼 수술하는 환자들이 많은 데라서 아이 골절 수술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거야." 꼭 그렇진 않더라도, 어린이 환자에 익숙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불편해 할 수는 있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래서 더, 매 순간 모두가 친절했다. 호기심 대마왕. 입원하는 순간부터 아이는 질문을 입에 달고 살았다. "수액은 왜 맞는 거예요?" "왜 지금 주사를 맞아야 해요?" "이 수액엔 뭐가 들어있어요?" "왜 수술 전에는 단식을 해요?" "CT랑 MRI는 뭐가 달라요?" "왜 엑스레이 찍었는데 이것도 해야 돼요?"부터, 두려움에서 시작된 "이거 안 아프죠?" "이거 금방 끝나죠?" "이게 제일 얇은 바늘 맞아요?"까지... 귀찮을 법도 한데, 아이 눈높이에 맞춤 설명을 해줬을 뿐만 아니라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말해주기까지 했다.
아이가 물을 때마다 귀찮다는 표정 대신 귀엽다는 표정을 지어 주었다. 수술을 마치고 이동 침대로 올라와 병실 침대에 옮기면서, 간호사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말을 걸었을 때였다. "괜찮아?" "아픈 덴 없어?" "엄마 보여?" 아직 마취기운이 있어서인지 아기가 된 듯한 목소리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또박또박함을 담아 아이는 대답했고, 도와주던 간호사 선생님들은 "어머,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라며 숨기지 않고 표현해 주었다. 병원에서 목격할 거라 기대하지 못한 환대였다.
그날 오후,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난 아픈 것만 빼면 여기 꼭 호텔 같고 좋아. 여기 침대도 꼭 호텔에 있는 침대 같고 그냥 쉬면 되고."
그냥 치료도 아니고 수술까지 한 아이의 말이라기엔 신기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 의료진들의 사랑만이 아니다. 나 역시 아무런 방해 없이 이 아이만 오롯이 바라보고 챙기고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치지 않았다면 분명 다른 곳에 눈길을 주었을 시간에도 아이만 바라봤는데 조바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게 아이의 상태였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가능했다. 아이만 바라보는 걸 선택했고 집중한 시간이었다.
수술 전, 생각해보면 아이는 대부분의 시간 이렇게 웃었고, 가끔 울었다.
게다가 아이는 대견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씩씩하게 잘 해냈다. 씩씩했다는 건 울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은 매 순간 울었다. 울 정도로 아프다 싶은 순간에는 어김없었다. 새로운 걸 할 때마다 불안해했다. 처음부터 "할 수 있다."라고 말하기보다, "이건 어떤 거냐? 아프지는 않냐?"며 두려움을 표시한 적이 더 많았다.
중요한 건, 두렵고 아팠지만 도망가지 않았다는 거다. 아이는 아플 때 "아프다."라고 말했고, 그걸로 충분치 않을 만큼 아플 때는 큰 소리를 내서 울었다. 하지만 절대 도망가지 않았다. 끝까지 해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때로는 소리를 지르면서도,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순간에는 움직이지 않고 참았다. 아픈 순간이 지나가면 금방 다시 웃었다. "나 이제 안 아파." 했다. 수술을 앞두고는 "수술하는 거 무서워."라고 하지 않고, "수술하고 나면 이제 안 아프겠지."라고 말했다. 그 모든 순간이 나는 기특하고 기특했다. 다치고 수술하고 퇴원하기까지 2박 3일.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해질 만큼 감동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알 수 없다. 아픈 아이와 꼭 붙어서 밤새 뒤척였던 병실에서의 그 밤이 그리워지는 것 보면 말이다.
잠들어있던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시간.
* 이 글은 아래 글들에서 이어지는 시리즈 글입니다. 읽고 오시면 이 글 이해하기가 더 좋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