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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Nov 14. 2023

무용한 이가 시작한 유용한 일

글쓰기의 시작

작가가 되고 나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원래부터 글을 썼었나요?" 사회적으로 엄마로만 살다가 다시 시작한 일이 글쓰기였고, 그렇게 쓴 첫 원고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내 스토리를 듣고 나면 자연스레 궁금해지는 모양이었다.


답하자면, 나는 원래부터 글을 쓰던 사람은 아니다. 정확히는 글을 쓰는 직업을 이전에는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글을 전혀 쓰지 않는 날도 없지 않았나 싶다.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어린 시절, 학교에는 매년 열리는 백일장이 있었고, 대학에 가서는 시도 때도 없이 리포트를 썼다. 나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노어노문학도 함께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쓸 일이 많았다. 마케터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줄글보다는 프레젠테이션을 더 많이 만들었지만 PT 전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계속됐다. 그렇지만, 글 쓰는 것은 모두 다른 작업을 해내기 위한 부수적 활동에 불과했다.


내가 진짜로 글을 쓰고 있다고 느낀 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였다. 그리 거창한 글은 아니었다. 나의 일상을 온통 장악해 버린 아이와의 시간을 기록한, 소박한 육아일기였다. 무엇이 될 거라는 목표가 없던 때에 그저 쓰고 싶어서 썼던 그 시간들이 결국 내 쓰기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고, 저 질문을 받으면 대답했었다. 유용함 따위 재보지도 않은, 무용한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최근, 인터뷰를 하다가 사실 내 시작은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간다는 걸 깨달았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초등에서 중등으로 올라가면서 받을 수 있는 상장 개수가 부쩍 줄어들어 상장 한 장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던 시절, 백일장 시 부문 상을 받았다. 모두가 하나씩 써야만 하니까 뭐라도 쓰려고 고민하다가, 당시 내게 가장 소중했던 우정에 대해 쓴 시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시를 쓰는 아이가 되었다. 주로 고민이 많아질 때 그걸 풀어내는 시를 썼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총 98편의 시를 쓰고, 더는 써지지 않는다며 그만뒀다. 시 쓰는 어른의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막을 내린 셈이었다.


그때는 시 쓰기에 꽤나 진심이어서, 써 놓은 시를 들고 등단한 시인을 찾아가 보여보기도 하고, 반응이 좋은 시들을 모아 신춘문예에 보내보기도 했었다. 언젠가 작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번도 작가라는 직업을 내 장래희망 첫자리에 올려보지는 못했다.


나는 공부를 곧잘 하는 아이였다. 성적이 꽤 좋았다는 뜻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자라던 시기에는 더더욱 성적이 좋은 아이에게 기대되는 전형적인 미래가 있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 거기에서 말하는 좋은 직업이란 훌륭한 일을 하면서 돈도 잘 버는 무언가였다. 틀에 박힌 모범생이었던 나는 누가 강요하기도 전에 스스로 세상의 기준을 체화했다. 작가는 그런 아이의 장래희망 리스트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취미, 언젠가 장래희망을 이뤄서 안정적인 직업인이 된다면 해볼 수 있는 세컨드 잡 정도가 내가 그려볼 수 있는 글 쓰는 미래의 최선이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을 거다. 넉넉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K-장녀였기 때문일까,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대학 시절 어학연수를 마다한 것도, 대학원을 후보에 넣지 못한 것도 다 같은 이유였다. 부모님은 언제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지만, 내 안엔 이미 내 기준이 있었다. 돈 벌기 힘들다는 글 쓰는 일을 미래로 그려보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최고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으나, 그럴 자신은 없었다. 적당히 잘 쓰는 정도였지 타고난 재능을 가진 글쓰기 천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공부가 글쓰기보다 더 자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좋은 대학에 갔고, 잠시의 공백도 없이 졸업 전 취업도 했다. 대기업의 마케터가 되었고, 글 쓰는 나는 완전히 잊었다. 매일 해야 하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없었고, 그저 그 모습의 나로도 충분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퇴사를 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퇴사였지만, 더 놀라운 건 엄마로 사는 게 꽤나 잘 맞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현실적인 아쉬움은 있었다. 꽤나 넉넉했던 내 월급이 사라졌다. 자연스레 나는 벌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멋진 울타리도 없고, 돈 한 푼 벌지도 못 하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단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날도 있었지만 그 또한 지나갔다. 그렇게 살다 보니 돈 벌지 않는 내가 기본값이 됐다. 나 스스로도 나에게 돈 버는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 날이 왔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언제나 보이는 성과를 내는 사람이었던 내가, 가만히 보낸 지 7년. 이제는 나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시선이 없었다. 사실 나도 나에게 욕심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아무 기대를 하지 않는 시간이 되어서야 어린 날 내가 정말로 좋아하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걸 꿈으로 만질 수 있었다. 내가 마땅히 움켜쥐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 기준의 '좋은 것'을 내려놓고 나니, 진짜 내가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유용함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무용함에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어차피 돈 벌지 않는 것이 기본값이 된 사람. 딱히 기대할 것도 없는 사람. 돈이 안 된다고 해도, 아니 그런 걸 따질 수도 없게 실패해 버린다고 해도 잃을 게 없는 사람. 어차피 무에서 무가 되는 일이라면 어린 날 내가 그토록 원했던 쓰는 일을, 책 한 권 써 보는 일을 시도해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대받는 삶은 언제나 자랑스러웠고 충만했고 행복했다. 그리고, 기대받지 않는 삶은 자유롭고, 그래서 행복하다.


덧. 혹여나 해서 덧붙인다면, 글 쓰는 직업을 비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이건 전형적이고 꽉 막힌 시각을 가졌던 어린 날의 내가 바라봤던 글 쓰는 세상에 대한 회고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모르는 세상이 많다는 걸 지금 나는 안다.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의 무용함이 실제로는 어마어마하게 유용한 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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