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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Dec 05. 2023

쓰다 보니 퇴사의 이유가 선명해졌다

글쓰기는 어떻게 나를 강하게 하는가

글 쓰는 사람이 되고부터, 자꾸 사람들에게 쓰기를 권한다. 내가 설익은 걸 알면서도 쓰자는 말을 미룰 수 없었다. 나의 첫 글쓰기 프로젝트 '나찾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글쓰기 강의라고도, 글쓰기 코칭이라고도 부를 수 없어 '프로젝트'라고 불렀던 아이. 소심하기 그지없는 내가 어떻게든 시작해야만 했던 일이다.


본격적인 글쓰기를 책 쓰기로 시작했다. 첫 책이 전문 육아서였기 때문에, 글쓰기가 지식을 얼마나 더 탄탄하게 만드는지 톡톡히 경험했다. 하지만 내가 책 쓰기의 진짜 힘을 알게 된 건 그 이후였다. 남을 위해 나에 대한 글을 쓴 게 시작이었다. 책을 알리기 위해서 나를 설명하는 글을 쓰기로 했었다. 세상은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까, 저자인 내 이야기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나를 알리기 위해 한 선택이었지만, 결국 내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된 건 연재 글의 주제가 '나'였기 때문이다. 글과 말은 많이 다르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글은 눈에 보인다. 내 생각이 활자가 되어 종이(혹은 화면) 위에 내려앉는 순간, 괜스레 불안해진다. 보이기 때문에 더 명확해야만 할 것 같다. '이게 정말 나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때 나는 정말 그런 생각을 했는가.' 쓰다 보면 어딘가 앞 뒤가 맞지 않는다 느껴질 때도 있다. 읽는 사람도 분명 같은 이상함을 느낄 터, 그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나를 파고 또 판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덕분에 내가 선명하게 알게 된 것들을 떠올려 본다.


사진: Unsplash의Thought Catalog


계속해서 쓴 덕분에, 나는 내가 왜 회사를 그만둔 건지 알게 되었다. 나의 글을 계속해서 읽었던 사람이라면 미묘하게 조금씩 달라진 퇴사의 이유들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의 퇴사에 대해 첫 글을 썼을 때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매번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썼는데 왜 다음 글을 쓸 때는 새로운 이유를 만나게 되는 걸까?


퇴사의 이유는, 최근까지도 풀지 못 한 숙제였다. 퇴사하고 한동안은 외면하고 싶어 돌아보지 않았고, 다시 돌아볼 즈음이 되어서는 '행복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퇴사를 들여다보니 어딘가에 구멍이 난 게 분명했다. 생각만 할 때는 그런 감각조차 없었는데 쓰다 보니 알게 됐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아직 완벽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확신은 없지만, 최근 깨달은 3단계를 정리해 본다.


글쓰기로 얻은 내면 관찰 3단계.


1단계는 표면적인 이유 드러내기다. 나는 다른 사람 눈치를 꽤나 보는 편이다. 게다가 합리적이어야만 의미를 갖는다고 여긴다. 그러니 처음 글을 쓸 때는 제일 단정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이 옳은 것인가는 선택한 순간보다는 이후의 행보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나의 이유가 내 머릿속에서 자동 편집되는 것도 당연하다. 내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편집된 이유만이 생각의 표면에 남는다. 그쯤 되면 나 스스로도 그게 전부라고 믿게 된다.


2단계는 자꾸 늘어나는 이유들이다. 내가 아는 바로 그 이유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도 겸연쩍은 부분이 생긴다. 글을 매끈하게 만들고 싶은데, 자꾸 여기저기 울퉁불퉁 빈틈이 보이는 거다. 그 틈에 뭐가 있었지 묻다 보면, 그 순간 내가 했던 또 다른 생각들이 떠오른다. '아, 이 날 왜 내가 과장님한테 이런 얘기를 했더라?' 싶어 되짚다 보면, 또 다른 이유가 튀어나오는 식이다. 하나로 완성한 글의 빈틈들을 하나씩 파다 보면 땅 속에서 다이아몬드를 찾듯 왕건이가 걸려 나오기도 한다.


3단계는 무수히 늘어난 이유들 속에서 핵심 찾기다. 얼마 전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왜 책 한 권에는 글 한 과는 다른 깊이가 있는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정답은 분량이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고민했느냐에 따라 깊이가 달라진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하나의 꼭지를 쓸 때와, 책 한 권 분량의 40개의 꼭지를 쓸 때는 깊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가 이유를 찾아간 방식도 그랬다. 아마도 글 하나를 쓰고 말았다면 더 깊이 고민하지 못했을 것이다. 의문이 들 때마다, 그러다가 다이아몬드의 귀퉁이가 보이는 듯싶을 때마다, 다시 퇴사에 대해서 썼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보였다. 표면적인 이유와 길게 늘어선 수많은 이유들을 관통하는 진짜 이유가 뭔지.


너무나 열심히 살아왔던 내게, 퇴사는 그 자체로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이유를 자세히 생각하지도 않았다. 뭐, 특별히 이유가 있겠나 싶었다. 누가 물으면 아이를 내가 봐야 할 상황이어서 그랬다고 간단히 답했다. 처음 퇴사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을 때는 이렇게 정리했다. 여러 가지 상황 상 내가 아이를 봐야 했고, 그때 나는 회사와 아이 중 누구에게 내가 더 중요한지를 따져 결정했다고. 그냥 그만둔 게 아니라, 가치를 따져 한 결정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쓰고 보니 이상했다. 가치를 따진 과정을 설명할 수가 없는 거다. 과정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덮어두고 싶었던 사건도 떠올랐다. 그 사건을 펴다 보니 '회사에서 일하던 나'의 기쁨과 슬픔들이 따라왔다.


결국 알게 됐다. 당시의 나는 단순히 엄마로 살기를 결심한 게 아니다. 포인트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데 있다. 지금껏 수많은 글을 쓰면서, 왜 나는 좋아했던 일을 그만두고서도 괜찮았는지를 단지 그만둔 후의 내 행동에서 찾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중요한 게 빠져있었던 거다. 사실 내가 일을 그만둘 시점에 나는 내가 일하고 있던 조직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 '멋진 회사에서 멋진 일을 해내고 있는 나'를 좋아했던 거지, 그곳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좋았던 게 아니다. 복직과 퇴사를 고민할 때 일종의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었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게 더 큰 불행이 될 수는 없었던 거다.


내 퇴사의 이유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 일을 그만하고 싶은 타이밍이었고,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에게 육아는 도망칠 구석이 되어주었던 거다. 그러니, 회사 반대편의 가정은 더없이 포근했다. 엄마로만 사는 게 행복하다면서 다시 새로운 일을 궁리하고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을 거다. 단지 육아가 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충전을 하고 나서는,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 내 가치관대로 해나갈 수 있는 일을 찾는 마음도 그 사이 키워졌고 말이다. 그곳을 좋아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마지못해 그만둔 거라면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을 텐데, 나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퇴사 직전, 약속받은 고과를 도둑맞고 회사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다는 글을 쓰기에 이르렀을 때는 제대로 된 이유를 찾았다고 생각한 시기였다. 그런데 그 글을 쓰고 받은 피드백 앞에서 아직은 아님을 깨달았다. "왜 그게 쏘냐 님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회사의 문제였던 거예요."라는 피드백. 회사의 손을 놓아버리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었고, 그건 내가 출산을 하면서 드러난 문제였기 때문에, 나는 지금껏 문제의 키를 내 임신에 놓았었다. 포인트는 내 출산이 아니라 회사의 구조였다는 걸, 내 어리숙함이 아니라 담당 임원의 비열함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결정적인 사건 역시 사실 나의 엄마 됨이 아니라 회사 자체의 문제 때문에 생겼던 거다. 그제야 실타래가 하나씩 풀렸다. 문제를 내가 아닌 회사에서 찾으면서, 사실은 내가 그런 회사에 지쳐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던 거다. 글을 쓰는 과정만큼이나 글을 내어놓았을 때 받는 피드백도 큰 도움이 된다.


여러 번 썼지만, 내가 책을 써야 했던 이유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깨달았다. 쓰고 쓰면서 결국은 알게 됐다. 다른 타이틀이 가지고 싶었다는 얘기에서 시작해, 어린 날의 상장과 꿈에 이르기까지. 그저 나는 쓰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여정에도 '쓰기'가 있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강하다.

그러니 글쓰기는 나를 강하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다.


또 하나, 글쓰기가 나를 강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기억은 휘발되지만 기록은 남는다. 우리는 무엇이든 쓸 수 있고, 무엇이든 남길 수 있다. 아무리 인상적인 경험도 시간이 지나면 잊게 마련. 하지만 써 놓은 것은 어디 가지 않는다. 종이와 펜은 내 머리보다 강하다. 내 지난 시간이 텅 빈 것 같을 때, 기록들을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어느 순간도 비어있었던 적은 없다는 걸 말이다.


종종 과거의 선택이 후회될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 과거 선택 시점의 나에게로 돌아가려고 애쓴다. 지금 생각하면 잘못된 선택으로 보일지라도, 그때의 나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은 더더욱 상세히 기록해야 한다. 미래의 내가 다시 돌아와서 읽었을 때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나를 미워하는 대신 과거의 선택에서 배우고 끌어안고 나아갈 수 있도록. 나의 날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글로 단단히 붙들어 매어야 한다.


나를 이해하는 날들이 모여, 내가 조금씩 더 단단해져 가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지금도 머릿속이 희미할 때는 글을 쓴다. 나조차도 무엇인지 모를 내 생각을 명확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글로 고정하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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