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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Nov 28. 2023

책이 나오고 달라진 게 뭔가요?

북토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오늘 제가 입은 옷 어떤가요?"


지난 북토크 때 무대에 서서 인사를 하고 제일 먼저 했던 말이다. 양성평등주간 행사 중 하나로 기획된 의미 있는 북토크에 연사로 섰다. 이틀 동안 하루 하나씩, 첫째 날은 아담한 박물관의 공연장에서, 둘째 날은 150 대강당에서의 행사가 진행됐다.


처음 섭외를 받았을 때 제일 궁금한 건 어떻게 나를 알고 연락을 했을까 하는 거였다. 준비를 하다 보니 왜 나를 선택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물었다. "저를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혹시나 누군가의 추천이 있었던 걸까 생각했는데, 행사를 기획하고 검색을 하던 중에 알게 됐다고 했다. 누군가가 나의 북토크에 다녀와서 쓴 글을 봤고, 내 블로그를 찾아왔더니 어디든 가서 이야기를 할 마음이 있다고 적어놓은 내 글이 보이더라고 했다.


두 번째 책 <아이를 키우니 팬클럽이 생겼습니다>를 쓰고 첫 북토크를 마친 후 적은 글이었다. 여전히 유명하지 않은 작가는 북토크를 한 번 하기도 쉽지 않다. 좋은 공간과 공간지기를 만나 북토크를 진행한다고 해도, 모객이 문제다. 그렇게 마음 졸이며 시작한 북토크였는데, 봄처럼 신선하고 크리스마스처럼 진득한 행복으로 가득찼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시작을 시작할 용기가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눈물 나는 감동이 되었다고 했다. 내 팬이라 자처해 주는 사람들 역시 늘었다. "이제 나도 시작해 봐야겠다."는 후기 앞에서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분명히 가 닿아 시작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더 많이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쓴 글이었다.


그리고 그 글은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여성들을 위한 기관이나 재단에서 북토크를 하고 싶다는 소망이 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것도 무려 양성평등주간 행사였다.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잃지는 말자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시작할 수 있다고, 꼭 대단한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작은 시작으로도 충분하다고, 어딘가에 나처럼 아이를 키우는 게 행복하다고 말하면서도 나로도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그런 나는 이렇게 내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그러니 누구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나에게 딱 맞는 타이틀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가겠다고 했다. 지방이라 괜찮겠냐는 말에 전혀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북토크쇼 타이틀을 받아보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일자리 북토크쇼 마음카페' 으음, 나의 콘텐츠는 전형적인 일자리와는 결이 다른데? 담당자님께 연락해 나에게 맞는 자리가 맞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혀 의심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엄마들에게 더 많은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 기획할 당시에 내 책 말고 다른 책들도 후보에 있었는데, 이사장님이 이 책으로 하고 싶다고 하셔서 최종 선택이 됐다고도 했다.


엄마들은 시작이 어렵다. 처음부터 전형적인 일자리로 돌아가기는 더 어렵다. 그들에게 내가 혼자서 내 길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분명 현실적인 가능성이 될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북토크 기획팀에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운명 같았다. 그래서 답했다 "그런 얘기라면 제가 잘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그리고 북토크 날...


나는 베이지핑크톤 정장을 입고 무대에 섰다. 어떤 옷을 입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였다. 엄마들을 대상으로,  역시나 엄마 중의 한 명인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다. 그러니 적당히 차려입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비즈니스 캐주얼 정도로 옷을 골랐었다.


이렇게나 갖춘 정장 셋업으로 마음을 바꾼 건 참석 VIP 명단을 받고 나서였다. 도의원님, 시의회 의장님, 시의원님 등이 참석하는 데다가, 축사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행사의 격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도 거기에 맞춰야겠다 싶었다. 옷장 한편에 오랫동안 걸려만 있었던 정장을 꺼냈다. 밝은 톤의 핑크 베이지를 살짝 눌러줄 검은 탑을 입고 검은 하이힐도 신었다.


"지금 저 괜찮나요? 사실 저는 너무 어색해요. 이런 정장을 입고 나선 게 너무 오랜만이거든요."

어색함을 풀기 위해 고르고 고른 말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 말은 나의 스토리와도 이어져 있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 저는 마케터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일이 많았어요. 홍보 업무도 했었던지라 기자 행사도 여러 번 진행했고, 그러다 보니 프레젠테이션하는 제 사진이 신문에 나온 적도 있어요. 그때는 이런 정장을 입는 일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보니 입을 일이 없더라고요. 이 옷은요, 첫 책 출간을 앞두고 샀던 옷이에요. 첫 책 출간 기념회 때 딱 한 번 입고 넣어만 두었다가 이번에 두 번째로 꺼냈습니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자주 받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책을 출간하고 나니 뭐가 달라졌다는 질문이에요. 그럴 때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이렇게 이런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달라진 점입니다.' 하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책이 나오고 실질적으로 달라진 게 많지는 않습니다. 유명해지지도 않았고요, 부자가 되지도 않았고요, 제가 갑자기 대단해 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딱 한 가지 분명히 달라진 게 있더라고요. 누군가가 제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일이 생겼다는 거요.


그런데 이번에 이 옷을 꺼내 입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 달라졌구나. 가끔이라도 이런 옷을 꺼내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거. 그게 변화구나.


작년에 결혼 십 주년을 맞아서 가족사진을 찍었어요. 이 사진이 그때 찍은 사진이거든요. 특별한 날 돈 들여 찍는 사진이니까 몇 날며칠 뭘 입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꺼내 입은 옷이 이거였어요. 깔끔한 니트에 청바지. 

신경 써 갖춰 입은 옷이 니트에 청바지인 평범한 엄마가 가끔은 이런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를 수도 있게 된 이야기. 어떻게 무엇을 하며 시간을 건너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 보려고 합니다."



책이 나오고 달라진 게 뭐냐고 현실적인 기준으로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이 그리 많지 않다. 굳이 플러스 마이너스를 해 보자면 마이너스인 부분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저 나를 기준으로 보자면 꽤 많이 달라졌다. 내 이야기를 전하러 나설 기회가 생겼다는 건 커다란 기적이다.


어린 날의 나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결국 대기업 마케터가 되었을 때는 그런 꿈 따위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 일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내가 바빴다는 이야기다. 일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은 있어도, 일을 통해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책을 쓰면서는 달랐다. 거기엔 내 진심을 담았고, 미약하게나마 나의 주관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덕분에 이제 나는 나로 살아간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세상이 이야기하는 훌륭함에는 미치지 못해도 괜찮다. 훌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나이기 위해서 하나씩 하나씩 사부작 사부작 해나가는 모든 것들이 응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응원을 나에게 전하며 나아간다. 그리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과거의 나처럼 움츠린 사람들에게 전한다. 무엇이든 해 보아도 괜찮다고.


덕분에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시작할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는 지금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다. 어린 날의 꿈이 지금 여기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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