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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Dec 12. 2023

아들 둘 키우면서 글은 언제 써요?

글쓰기를 위한 시간 관리

첫 책을 쓸 당시, 나에게는 7살, 3살 두 아들이 있었다. 얌전한 첫째와 달리 어지르기 대마왕이었던 둘째 덕분에 집은 늘 너저분했다. 수습해야 할 사고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졌고 말이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들은 엄마를 놀이터 죽순이로 만들었다. 놀이터가 힘든 날은 마트를 전전했다. 첫 책이 나왔을 때 가장 신기해했던 사람들은, 이러한 아들 둘 맘의 현실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아직 어린아이 둘을 키우면서 글은 언제 썼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감사하다. 우리 아이에게는 좋은 선생님이 있었다. 딱히 등원 거부가 없었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등원 거부도 길었지만, 우리는 한 팀이 되어 그 시간을 이겨냈다. 마침내 아이가 웃으며 등원하는 날이 왔다. 나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전업 엄마라면 알겠지만, 단지 아이가 집에 없다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난 그저 전업 '엄마'일 뿐이라고 아무리 우겨봐도, 동시에 전업 주부인 현실은 바꿀 수가 없다. 집안일을 밤 시간에 몰아한다고 해서 큰일 날 것도 없는데, 낮에 집에 있다 보면 이상하게 미루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이 생긴다. 집안일이란 끝이 없어 순식간에 시간을 잡아먹는다. 시간이 없을 때까지 하고 또 해도 표도 안 난다. 그러니 끝내지도 못한다.


내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처음부터 나는 전업주부가 아니라 전업맘이라고 주장해 와서일까.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뒀을 뿐인데, 주부까지 되기를 요구하는 사회에 특별한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나는 금방 집안일에 대한 강박을 버릴 수 있었다. 둘째 낳고 가정보육을 한 24개월은 '사회적 나' 개인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아이와 한 몸이 되어 꼬박 2년을 보내고 어린이집에 들여보낸 날, 내가 느낀 건 해방감이었다. 갑자기 시간이 생겼다. 잉여 인간이 되어버린 기분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집안일로 시간을 채워 잉여인간에서 탈출할 생각은 없었다. 그 시기에 책 쓰기를 시작했다.


내 책 <아이를 키우니 팬클럽이 생겼습니다>에서도 중요하게 다뤘던 나의 하루 루틴을 간략히 적어보자면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등원 준비를 한다. 첫째 셔틀 태워 보내고 둘째 도보 등원을 하고 나서 집으로 들어온다. 다음은 심플하다.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를 켜는 당연한 작업 앞에 굳이 심플하다는 문장을 쓴 건, 엄마들에게는 꽤 큰 고비를 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등원 준비 후 급하게 나가서 애들 보내고 들어오면 보이는 전쟁터같이 처참한 우리 집 모습. 그 처참함을 사뿐히 즈려밟아야만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다. 나는 매일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10시쯤 시작해서 첫째 하원 시간인 2시까지 책상을 떠나지 않았다. 중간에 끼어있는 점심시간은 냉동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1시쯤 재빠르게 일어나 냉동실에서 도시락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 5분 정도 서서 글을 쓰다가 꺼내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 먹으면서 계속 썼다. 2시가 되면 벌떡 일어나 양치하고 세수하고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했냐고 묻는 사람만큼이나,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왜냐고 묻는다면, 빠르게 끝내고 싶어서였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냐면 그 역시 빠르게 끝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첫째 초등 입학 전에 모든 걸 끝내겠다는 목표 때문에 앞뒤 보지 않고 달렸다. 동시에, 어차피 정해진 시간이니 딱 그만큼만 미친 듯이 매달려보자는 결심도 할 수 있었다.


여유가 있다면 작업의 퀄리티가 높아질 수 있지만, 그만큼 포기 가능성도 커진다. 내가 첫 책 작업 때 한 것처럼 기간을 정해두면 앞뒤 가릴 틈이 없다. 포기를 고민할 시간도 없다. 어찌 됐든 끝까지 한 다음에야 돌아보며 생각할 여유도 생긴다. 첫 책이 기어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다 하고 보니 제대로 한 것인가 의문도 들었지만, 이미 멀리 와버린 길 돌아설 수도 없었다.


나는 책을 쓰기 위해 집안일을 포기했다. 이 대목에서 언제나 감사한다. 그런 아내와 엄마를 인정해 준 남편과 아이들이 있기에 부대낌 없이 지나올 수 있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저분한 집이 아무렇지도 않은 아이들이 종종 걱정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싶다. "너에겐 그런 걸 지지해 주는 가족이 있잖아."라고 말하면 부정할 수 없어 작아지기도 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무언가 새로이 하고 싶은 게 생겼다면 지금 내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포기 앞에서 당당해지자. 나에게는 나의 시간을 내가 원하는 일을 위해서 쓸 권리가 있다.


첫 책을 쓴 날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 첫째는 11살이고 둘째는 7살이다. 아이들에게 4년은 아주 긴 시간이다. 엄마 손이 덜 가고, 당연히 나의 여유도 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쓰는 양은 늘지 않았다. 첫 도전의 절실함은 우주만큼 컸기에, 아무리 해 봐도 그때처럼 마음을 부풀릴 수 없다. 그래도 놓지 않고 꾸준히 쓰기 위해서 필요한 건 역시 시간관리, 선택과 집중이다. 첫 책 때처럼 나의 모든 시간을 글쓰기에만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지나치기 쉽다. 그럴 때마다 예전 회사 다니던 시절부터 중요하게 생각했던 원칙을 떠올린다.


"하기 싫은 일은 하고 나면 없어진다."


글쓰기가 어렵지 않은 날은 구태여 마음먹을 필요도 없다. 그런 날들은 자연스레 흘러간다.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날은 대체로 글이 쓰기 싫을 때다. 글쓰기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리가 안 돼서 미루고 싶은 날. 내가 아무리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글쓰기보다 먼저 하고 싶은 것도 있게 마련이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뒤늦게 보기 시작한 TV 예능 "골든걸스"가 너무 재밌어서, 애들을 보내고 나니 당장 5화를 재생시키고 싶었다.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골든걸스를 먼저 볼까 글을 먼저 쓸까 고민하다가.. 다시 저 말을 떠올렸다. TV부터 보면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게 뻔하다. 글을 먼저 쓰면 발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 마음이 가벼워질 테고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꼭 해야 할 일, 집중이 끊어지면 안 되는 일을 먼저 하라."


지금 상황도 그렇다. 글쓰기는 화요 연재 주기를 맞추기 위해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집중력이 요구되는 일이면서, 중간에 끊기면 타격이 큰 일이기도 하다. 적어도 초고는 한 번에 써 내려가야 빠르게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의 흐름도 흩어지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TV는  다르다. 보다가 중간에 첫째가 온다고 해도 큰 지장이 없다. 그저 내 마음이 안달할 뿐,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일이다. 그래서 이 글을 먼저 쓰기로 했다.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면 집 앞 카페에 가 카페라테 한 잔 테이크아웃해서 행복하게 TV를 보려고 텀블러도 미리 꺼내두었다.



결국 위의 두 문장, "하고 싶은 일은 하고 나면 없어진다." "꼭 해야 할 일, 집중이 끊어지면 안 되는 일을 먼저 하라."를 요약해 보자면, "일단 글부터 써라."가 된다. 누구에게나 글쓰기는 어렵다. 글 쓰는 게 쉽다는 사람을 아직 나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글쓰기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머리만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 힘도 써야 한다 그러니, 일단 먼저 써야만 완성할 수 있다. 글이란 그렇다.


얼른 달려 나가 커피를 사고 싶은 마음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 지금, 써야 하는 데 쓰지 못한 글이 있다면 일단 그것부터 쓰자. 반갑게 당신을 맞아줄 당신의 라테를 잠시만 미뤄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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