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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Dec 26. 2023

쓰기 싫은 날도 쓰기 위한 방법

쓰기 싫지만 써야 할 때

지난 글에서 말했다. 쓰기 싫으면 쓰지 않는다고. 특별히 마감이 없다면 정말로 쓰지 않는다. 쓰고 싶어지면 그때 쓰면 된다. 다만 모든 글이 그렇지는 않다는 게 문제다. 종종 꼭 지금 써야만 할 때가 있다. 타인과 약속한 마감이 있을 때도 있고, 나와 약속한 마감이 있을 때도 있다. 이미 약속한 일이라면 쉽게 미루지 않는다. (세상에 절대란 없지만 말이다.)


쓰기 싫은 날, 그러나 써야만 하는 날에는 평소 지켜오던 글쓰기 루틴이 도움이 된다. 집중을 위한 나의 글쓰기 루틴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두었다.


나는 향을 좋아한다. 향 자체를 좋아하는 건지, 향을 만드는 과정을 좋아하는 건지, 향을 만드는 오브제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 그 모든 것을 통틀어 내 책상 위에 향이 머무르게 하는 일을 좋아한다. 향초를 켜거나, 아로마 램프를 데우거나, 아로마 스틱에 오일을 떨어뜨리거나,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인다. 글 쓰는 내 책상 컴퓨터 앞에 향이 가득 머물도록 한다. 그러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릴 마음이 생긴다. 이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쓸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루틴이다. '향'이라는 키워드는 꽤 꾸준한데, 어떤 향인지는 매번 달라지는 것도 내 특징이다. 생각보다 한 가지를 오래 하지 못 하는 성격이다. 늘 새로운 게 궁금해진다. 매일 다르게 골라서 쓰는지라 인센스 스틱만 20종은 가지고 있고, 향초를 쓸 때도 두세 개씩은 구비해 둔다.


향 다음은 티 (tea). 향을 만든 다음에 하는 일은 차를 우리는 것. 어떤 날은 잎차를, 어떤 날은 티백을, 가끔은 커피를 준비한다. 커피보다는 티를 선호하는 건, 원래 티를 더 좋아해서기도 하지만 티가 가진 힐링 효과를 믿기 때문이다. 차가 가진 은은한 맛과 향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글쓰기에 좋은 마음을 만들어주는 건 물론이고 말이다. 나는 한국차, 중국차, 일본차를 두루 좋아하는 편인데, 그중 한국 녹차, 중국 청차가 제일 좋다. 한국 녹차는 우전, 세작을 상품으로 치지만 가성비 좋은 대작도 즐기는 편이다. 이와 더불어 디카페인 차들도 구비해 둔다. 카페인을 피해야 하는 때도 많아서다. 허브티 종류가 카페인이 없는데, 흔한 허브티 중에는 캐모마일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좋은 블렌딩티들도 많아졌다. 오늘 마시고 있는 차는 레몬진저티. 겨울에 좋은 레몬 진저에 감초가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단 맛이 일품이다. 어쩌면 딱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걸 찾는 나에게는, 스펙트럼이 넓은 티가 잘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 달 후에 최애 티가 또 무엇으로 달라져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무조건 글쓰기 먼저' 원칙이다. 전에도 글에 쓴 적이 있는데, 나는 "하기 싫은 일은 하는 순간 사라진다."는 말을 마음에 품고 산다. 써야 하는 글이 있는 날은 모든 일은 글쓰기 다음으로 미룬다. 하기 싫어서인 날도 있고, 하기 싫은 건 아니지만 중요한 일이어서인 날도 있다. 글쓰기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건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먼저 해두면 다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쓰기 싫은 날도 쓰기 위한 방법을 말하고 있는 거니까. 이런 날은 특히 더 중요하다.


나는 집중력이 좋은 편이기도 하고 아닌 편이기도 하다. 선택과 집중이 지나치게 잘 되는 편인데, 종종 그게 발목을 잡는다. 선택한 일에는 무섭게 집중하는 반면 선택하지 않은 일은 쉽게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주로 글쓰기는 선택한 일에 들어간다. 그럴 땐 한 번에 몇 시간씩 먹지도 않고 화장실도 가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써내려면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늘 선택하고 싶은 일이 글쓰기가 아닌 그런 날은 말이다. 하지만 글쓰기를 끝내는 데 예외는 없다. 글은 머리로, 손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는 것, 결국은 엉덩이로 쓰는 일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내가 나의 글쓰기 루틴들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운 건, 최대한 이 자리에 오래 앉아있게 하기 위해서다.



가끔은 향과 차를 세팅하고 자리에 앉는 나를 보면서, 파블로프의 개를 떠올린다. '아, 오늘은 쓰기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컴퓨터 앞에 앉아 뚝딱거리며 결국은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좋아하는 향을 맡고, 오늘을 위해 고른 차를 마시면서, 행복을 수혈한다. 그러다 보면 글 하나가 완성된다. 완성된 글과 타버린 인센스 스틱과 비어있는 찻잔이, 꽤나 멋진 장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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