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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an 09. 2024

실패와 성공, 또 실패와 성공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 같아요.

"쏘냐 님은 하는 일마다 다 잘 되는 것 같아요."


잠시 몸 담았던 스타트업의 국가지원사업 선정 소식을 전했을 때 누군가 했던 말이다. 언제나 성공만 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는 꽤나 탐나는 이미지이지만 바로잡아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생각해 보면 나의 모든 결실 앞에는 실패가 있었다. 실패를 받아 들고서도 다시 도전하다 보니, 몇 가지 성공에 이르렀다. (과연 내가 이뤄낸 것들을 성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도 될까 다. 하지만 가장 명쾌한 단어이기도 한지라, 결실을 얻었다면 그걸 성공이라 표현해 보기로 한다.)


대기업 마케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저 성공이라 여겨진 입사 역시 실패 직후 거둔 성공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한 번도 변하지 않은 내 장래희망은 아나운서다. 문학을 좋아하면서도 노어노문학 대신 신문방송학에 정착한 것도 그래서였다. 졸업을 앞두고 방송사 시험을 몇 번 치렀고, 이룰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았다. 포기해야 했다. 동시에 다음 길도 모색해야 했다. 신문방송학이라는 전공을 가지고도 지원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서 '전공무관'인 곳을 찾아 원서를 썼다. 당시 학교 취업게시판을 뒤져 13곳인가에 원서를 썼고, 최종 합격한 곳이 딱 한 군데였다.


회사 입사가 확정된 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같이하던 친구였다. "나 네가 부러워. 어떻게 그렇게 빨리 포기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어?" 그날 친구가 했던 이 말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저 현실적이었을 뿐이다. 내가 꿈꾼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거라고 애초에 믿지 않았다.


아나운서가 되기 어렵겠다 깨달았던 그때, 아빠에게 부탁했다. "아빠, 나 딱 한 학기만 더 아나운서 학원에 등록할게요. 사실은, 나 아나운서가 되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포기하기 전에 한 번만 더 최선을 다해 보고 싶어요. 그래야 미련이 안 남을 것 같아서." 감사하게도, 아빠는 성과가 없을 거라고 미리 예고하는 딸에게 아무 말 없이 학원비를 보내주셨다.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에 빠르게 돌아설 수 있었다. 멋진 꿈을 꾸었던 어린 날의 나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건 아니다. 하나의 실패를 경험하고 바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건, 그게 아니라면 돌아갈 곳이 없어서였다. 멈춰있을 순 없지 않은가. '전공 무관'이라고 공고를 내놓고도, 면접장에 가면 "왜 내가 경영학과 학생이 아닌 신문방송학과 전공생인 자네를 뽑아야 하나?"라고 묻기도 했고, "보아하니 아나운서 준비하는 친구 같은데, 여기에 원서 써두고 어차피 가버릴 것 아니냐."며 이곳이라고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라 말하기도 했다. 면접이라도 본 게 어디냐며 나를 위로하던 날들을 지나 결국 면접 본 곳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오래 준비한 일이 아니라도, 그렇게 오래 준비하고도 실패했다 해도, 주저앉지 않고 달린다면 열리는 다른 문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덕분에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되었다.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처음 쓴 원고가 책이 되었지만, 결실 앞에도 실패가 있다. 달리고 달려 원고를 완성하고 800개가 넘는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냈다. 책쓰기 학원 선생님이 몇 번이나 칭찬했던 원고였다. 곧 연락이 올 거라며 회신이 오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도 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2주가 지나도 계약하자는 회신은 하나도 오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 한 군데에서 출간 제안이 오긴 했지만) 도전으로 충분하니 그만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한 번 더 투고를 해보자 마음먹은 건,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한 번 더 해볼 걸 그랬다는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다시 한번 최선을 다했다. 더 해볼 수 있는 게 출간기획서를 수정하는 것뿐이어서 그거라도 정성을 다해 고쳤다. 두 번째 투고 메일에는 큰 기대가 없었다. 이번에도 만족스러운 답이 오지 않는다면 미련을 떨쳐낼 수 있겠다는 게 기대라면 기대였다. 그런데 메일을 보내고 하루 만에 꼭 출간하고 싶다는 출판사의 전화를 받았다. 결국 <엄마육아공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내 첫 책은, 800개가 넘는 출판사가 외면하고 단 3개의 출판사가 선택한 원고였다.


두 번째 책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이 책은 나의 두 번째 원고가 아니다. 세 번째 원고다. 내 컴퓨터 '두 번째 책' 폴더에는 다른 원고가 얌전히 저장되어 있다. 두 번째 퇴사 후 약간은 회의적이고 무기력했던 내가 마음잡고 쓰기 시작한 글이었다. 꼭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쓰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회할 것만 같아서 기어이 써낸 원고다. 이번 투고에는 출판사를 고르고 골라 60군데 정도에만 보냈다. 역시 대부분이 외면했고, 딱 한 군데에서 미팅을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 원고로는 출간이 어려울 것 같지만 다른 책을 함께 만들어 보고 싶다." 단 하나의 긍정적 회신 역시 내가 쓴 원고를 거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실패. 두 번째 원고의 완벽한 실패다. 하지만 이 원고는 책이 되는 대신 다리가 되었다. 출판사 대표님과 만나 함께 만들 새로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세 번째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니 팬클럽이 생겼습니다>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책이 이 원고다. 어떤 날은, 실패가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100페이지를 채운 두 번째 원고가 아깝지 않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아깝지 않다. 그게 나의 답이다. 부족함은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원고가 책이 되기에 부족했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니 더 나은 원고를 쓸 기회를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지 못했기에,

대기업 마케터라는 흥미로운 길을 갈 수 있었다.

첫 투고에 실패했지만 다시 도전했기에,

내 원고에 애정을 가진 출판사 대표님을 만날 수 있었다.

두 번째 원고를 쓰고 실패했기에,

혼자만의 패기로 쓴 것보다 더 나은 원고를 완성해 출간할 수 있었다.


모든 과정에서 나는 성장했고, 좋은 기회와 사람들을 만났다.


앞으로도 실패와 성공이 짝처럼 붙어 다니며 나를 찾아올 것을 안다. 중요한 건 실패가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실패를 두고 돌아 나와 다시 걷는 걸음이 아닐까? 실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보다, 실패해도 다른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다가올 성공의 모양은 지금 내가 기대하는 것과는 좀 다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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