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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an 16. 2024

무엇을 위해 책을 쓰는가

무엇을 선택하든 잊지 말아야 할 것

"그런 책은 아무도 읽지 않아요." 그는 단호했다.


책을 써보고 싶다며 찾아간 책 쓰기 학원 1대 1 코칭 첫 질문이 어떤 책을 쓰고 싶은가였다. 엄마로 살면서도 여전히 행복한 나의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고 답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저 답변,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반응이다. 당시의 나는 왜 내가 행복한지 정리도 못한 상태였다. "행복에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말에 제대로 대답도 못 했으니 책이 될 리 만무했다.


사전 질문지에 적어간 내 이야기 중 책이 될 소재가 별로 없다던 선생님은 육아서를 써 보자고 말했다. 육아서? 육아서라니? 내가? "제가 육아서를 쓸 자격이 있을까요?" "왜 없어요? 엄마잖아요. 훨씬 더 현실적인 육아서를 쓸 수 있죠." 그날 집에 돌아와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아니, 그래도 되는 걸까. 그러다가 생각했다. 나라는 엄마의 시각이 명확한 육아서를 쓰는 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다른 건 못 해도 공부는 잘했다. (자랑은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공부를 잘하는 대신 못 하는 것도 꽤 많았고 거기에 대한 슬픔도 많았으니까.) 육아 전문 지식을 공부하고 나의 경험과 시각을 더하면, 괜찮은 책을 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첫 책 집필이 시작되었다. 쓰는 일보다 공부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갔다.


원고가 완성됐다. 책 쓰기 선생님은 원고가 좋으니 바로 출간 제안을 받을 거라 말했다. 출간 제안 한 출판사에서는 모든 엄마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며 꼭 출간하고 싶다고 했다. 추천서를 써 주신 출산육아협회 이사장님의 평이 제일 궁금했는데, 다 읽고 나를 불러 "읽기 전에 생각한 것보다 다 읽고 나니 훨씬 좋았다"며 칭찬했고, '엄마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라는 추천사를 써주셨다.


그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응원과 축하가 넘쳤다. 그런데 나는 기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빠뜨린 게 있지 않을까, 오역한 게 있지 않을까. 여전히 불안했다.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써놓고 자랑하지를 못 해요?" 출판사 대표님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때 나는 웃으며 대답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내 책을 위해 이벤트도 북토크도 부지런히 했다. 그런데 자꾸 의문이 들었다. 이게 정말 내 이야기일까? 책 서평을 접할 때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책을 써냈다는 확신은 커졌지만,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 대신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썼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조금 더 믿을만한 사람이 되면, 그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번에는 세상이 원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써 보자.' 아이만큼이나 엄마를 중요하게 여기자고, 아빠한테도 자꾸 맡겨야 는다고 주장하고, 엄마의 자유를 위해 필요한 아이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정리한 '엄마와 아이가 모두 행복하기 위한 육. 아. 서.'는 큰 카테고리로 보면 그저 '육아서'일 뿐이었다.




책을 쓴다면 그 책이 가지는 가치는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1. 세상이 원하는 이야기인가

2.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 (세상은 원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나올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가)


사진: Unsplash의Immo Wegmann


두 권의 책을 출간하고, 출판업에 뛰어들어 매거진을 창간하고 팔면서 내가 정리한 책의 분류다. 쓰는 입장에서 바라본 분류랄까. 첫 책인 육아서는 1번을 충실히 따랐다. 병아리도 되지 못한 알이었던 나는 출판사의 선택을 받아야만 작가가 될 수 있는 상황. 그래서 세상이 원하는 이야기를 찾았다. 그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는 '엄마지만 행복하게 사는 법'이었지만 말이다. 엄마라고 해서 나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었다. 세상은 엄마에게 관심이 없으니 스스로 관심을 주자는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가치가 있다 생각했다.


늘 나를 납득시키는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내가 2번이 아닌 1번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쉽게 다음 책을 기획하지 못 한 건 그래서였다. 막 책 한 권을 출간한 초보작가가 되고 보니 주변에 아는 작가가 많아졌다. 2를 선택했지만 출간에 성공한 작가들도 꽤 보였고 말이다. 그들이 부러웠다. 수많은 출판사 중 한 곳 정도는 나와 생각의 궤를 같이하는 곳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한 내가 미웠다.


2년이 지났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 차서 쓸 수밖에 없는 날이 왔다. 당장 엑셀시트를 열고 목차를 짰고, 3주도 되지 않아 초고를 완성했다. 위의 분류 중 2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 원고는 대차게 실패했다. 출판사 어느 곳도 그 원고를 원하지 않았다. 출간하지도 않을 원고를 두고 고마운 피드백을 줬던 출판사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결론은 하나였다. "이런 주제는 저자가 유명해야 팔려요." 내가 유명하지 않아서 안 되겠다는 말이다.


혹시 주제가 뭐였는지 궁금한가? '평범한 엄마의 6개 시작 이야기'였다. 7년을 엄마로만 살다가 갑자기 작가가 되고, 프로젝트 리더가 되고, 글쓰기 코치가 되고, 프리랜서 마케터가 되고, 파는 사람이 되고, 스타트업 초기 멤버가 된 이야기.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시작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원고. 큰 성공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고 싶지도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반전은, 완성한 원고가 거절을 당했는데도 결론적으로는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거절 끝에 출판사 대표님이 나에게 처음 '엄마지만 행복한 이야기'를 써 볼 수 있겠냐 물었던 것이다. 내가 정말 쓰고 싶지만, 그런 글을 출간해 주는 출판사가 없을 것 같아서 쓰지 못했던 주제. 그걸 원하는 출판사를 만난 것이다. 운명처럼.


두 번째 출간은 첫 번째보다 훨씬 행복했다. 출간하고 활동하는 동안 내가 원하는 그 이야기를, 내가 원하는 타겟에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늘 설렜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일이다.


이 행복을 알았으니, 첫 번째 책에 대한 자괴감이 더 깊어졌을까?

No!

두 번째 책을 출간하고 나서야 첫 번째 책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책 쓰기 학원 선생님의 제안도 더 깊게 이해하게 됐고 말이다.


<아이를 키우니 팬클럽이 생겼습니다>를 출간한 출판사 대표님이, 아무 믿음 없이 덜컥 나와 계약을 했을 리 없다. 원고도 없이 내 브런치 글과 미팅 후 내가 새로 만든 목차와 프롤로그만 보고서 한 계약이니 더더욱. 내가 책 한 권을 이미 써낸 작가라는 사실이 그 믿음 한편에 분명 자리했을 거다. 출판사를 만나기 어려운 2번 분류의 글이 출판사를 만날 수 있었던 건, 1번에 따랐던 첫 책 덕분 아니었을까? 처음부터 원하는 책을 출간하는 사람도 많지만, 확률이 낮은 건 어쩔 수 없는 일. 내가 그때 했던 선택은 다른 목표가 아닌 같은 목표에 조금 돌아가는 방식이었음을 결국은 확인했다. 첫 책을 쓸 때 가졌던, 첫 번째가 있어야 두 번째 기회도 있을 거라는 희미한 믿음이 이제야 현실이 된 것이다.




종종 책 쓰기 강의 요청을 받는다. 이 요청 앞에서도 나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가를 먼저 물었는데, 두 권을 출간하고 출판사 멤버로 출간을 경험하고 나니, 출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강의 첫머리에 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둘 중 어느 게 정답인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그러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1번에 맞는 책을 쓰고 괴로운 날들을 지나왔거든요. 하지만 덕분에 2번의 책도 쓸 수 있었다 생각해요. 1번을 먼저 시도했기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더 빠르게 얻은 것만은 분명할 겁니다. 그래서 그때의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어요.


만약 당신이 저런 상황을 저보다 더 견디기 힘들 것 같다면 그냥 하고 싶은 걸 밀어붙이는 게 맞을 거예요. 가능성이 낮다는 거지 불가능한 건 아니거든요. 서점에 가보시면, 정말 다양한 책이 있잖아요. 그중 나와 결이 맞을 것 같은 출판사를 찾으면 분명 하나는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만약 가능성을 높이고 싶다면 저와 같은 선택을 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이때 명심해야 할 게 있어요. 내 목표를 잊지 않는 것. 내 의지로 목표 변경은 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처음 목표를 기억해야 해요. 그래야 조금 돌아가더라도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요."


지나고 보니 알 것 같다. 시행착오라 여겼던 경험도, 나만 잃지 않는다면 나를 키우는 과정이 된다는 걸 말이다. 어쩌면 그건 시행착오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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