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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an 30. 2024

프롤로그는 언제 쓰나요?

프롤로그의 무게

"책도착 인증샷만 찍고자 했는데 프롤로그를 읽다 책의 반을 훌쩍 넘겨버렸다."


출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책 도착 인증 피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확인하자마자 책장으로 가 내 책을 폈다. 그리고 프롤로그를 읽었다.


"엄마가 되고 퇴사를 했다. 그리고 내 세상은 뒤집혔다."

 피드에서 특별히 언급한 문장이었다.


정말로 뒤집혔다. 상상도 하지 못한 세상이었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한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이가 되고 싶진 않았다. 뒤집힌 세상은 되돌리 수 없다 해도, 또 다른 대지 위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겠다고 언제나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난 든든히 서 있다. 나를 안고서. 이 책을 쓰는 내내 생각하고 확인하고 정리한 이야기다. 프롤로그가 이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고 말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진심이 느껴져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는 후기는, 그래서 더 기뻤다.


나의 두 번째 책, <아이를 키우니 팬클럽이 생겼습니다>의 시작은 프롤로그였다. "그럼 앞으로 진행은 어떻게 하죠?" "목차 정하고 프롤로그 써서 보내주세요. 그다음에 계약서 보내드릴게요." 출판사와 첫 미팅을 끝내고 내가 받은 숙제가 이거였고, 집에 오자마자 고심해서 프롤로그를 썼다.


하지만, 실제 책에 들어간 프롤로그는 그때 쓴 글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글이다.


"잠시만요. 저 프롤로그 다시 써서 보낼게요."


본문 교정지가 여러 번 오가고 거의 끝나갈 즈음이었다. 어디론가 가족 여행을 가던 길, 차 안에서 갑자기 문장들이 떠올랐다. 5살이었던 둘째의 한 마디에서 시작된 생각은 책을 쓰는 내내 돌아보고 돌아봤던 지난 10년으로 이어졌다. 처음 쓴 프롤로그는 사실 출판사 담당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가까웠기에, 독자들을 위한 프롤로그를 새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손대지 못하고 있는 참이었다. 지금 것보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없다면 그대로 두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반가웠다. 갑자기 주르륵 떠오르는 문장들이.


얼른 핸드폰 메모앱을 열었다. 완성형 글은 컴퓨터에 앉아서 써야 안심이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면 문장들이 휘발되어 날아갈 게 분명하다. 일단 메모앱에 두서없이 써 둔 후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기로 했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잠시 말 걸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톡톡톡 정신없이 써 내려갔다. 15분 정도 썼을까. 하나의 프롤로그가 완성되었다. 나중에 컴퓨터를 켜고 한글 파일에 옮기고 보니, 고칠 것도 별로 없었다. 이번 프롤로그는 정말 쏟아내듯 완성한 글이었다.


책이 나오고 내가 쓴 프롤로그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보통 제작 과정에서 수없이 반복하며 읽기 때문에 책이 나오고 나면 한동안은 읽지 않는 편인데, 이번 글만큼은 자꾸 읽어도 좋았다. 꺼내고 싶었던 마음속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펼쳐놓았기 때문일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이 제대로 닿을 거라는 기대가 자꾸 몽글몽글 피어났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 프롤로그는 무겁다. 책을 펴면 제일 먼저 들어오는 부분이자, 책 전체 내용을 예상하는 판단자가 되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 내 의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잠재 독자가 실제 독자가 되지 못하고 '잠재'에서 끝날 수 있다.


그래서 프롤로그는 마지막에 쓰기를 권한다. 내가 마지막까지 프롤로그를 다시 써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린 것도 그 때문이다. 처음 쓴 프롤로그가 내 책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 기획의도가 달라진 적은 없다. 그러니 첫 프롤로그도 틀리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한 권 분량의 글을 쓰는 사이에 내 생각이 깊어졌다. 같은 에피소드에 대해 더 많이 물었고 새로운 답을 찾기도 했다. 내 안에 있는 같은 답을 더 명징하게 정리하고 독자를 위한 언어로 풀었다. 마지막에 쓰는 프롤로그가 처음 것보다 나을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면 첫 책의 프롤로그도, VACAY 캘리포니아 편의 편집자 레터도, 모두 마지막에 썼다. 책을 쓰는 내내 성장한 내 생각을 담았다. 그래. 그렇게 나는 매일 성장하고 있다.


문득, 우리 인생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애쓰며 살고 있지만, 아직 우리의 프롤로그는 쓰이지 않았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언젠가 쓰게 될 내 인생 프롤로그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길까. 분명한 건 지금 쓰는 것보다 나중에 쓰는 게 더 명확한 내 삶 소개가 될 거라는 사실. 아직 수많은 챕터가 미완성이니 말이다. 그때 쓰는 프롤로그가 이번처럼 내 맘에 쏙 들었으면 좋겠다. 한 챕터 한 챕터 쓸 때마다 나에게 진심을 다했던 것처럼, 매일매일 나에게 진심으로 질문하며 살아야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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