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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an 23. 2024

AI가 글 쓰는 사람을 대체하지 못할 거라 믿는 이유

쓰는 목적을 두 가지로 나누면

쓰는 사람이 되고 글쓰기 프로젝트를 지속하면서 '쓰는 이유'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우리는 왜 쓰는 일에 집착하는가? 세상엔 왜 이렇게 쓰는 사람이 많은가? 모두가 써야만 한다는 주장이 흔해지는 건 왜일까? 써야 할 이유를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계속해서 쓰는 삶을 몇 년째 살아오면서, 내 경험에게도 계속 물었다. 그리고 정의해 봤다. 내가 쓰는 글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1) 타인에게 전하고 싶어서 쓰는 글, 2) 나를 위해서 쓰는 글. 종종 두 개의 목적이 혼재된 작업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더 중요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바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쪽이 강하다. 


1) 타인에게 전하고 싶어서 쓰는 글


더 간단히 말하자면 '타인을 위한 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가진 것으로 타인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쓰는 글이다. 내가 썼던 글 중에는 단행본 두 권과 매거진 VACAY가 대표적인 예다. 내가 쓰는 글이라고 해서 그저 내가 쓰고 싶은 대로만 쓰지 않았다. 각각의 책과 매거진이 타겟에게 전해야 할 이야기를 명확히 풀어내야만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즘 온라인상에서 브랜딩이나 마케팅을 위해 많이들 쓰는 글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닌 타겟을 위한 글을 쓴다.


2) 나를 위해서 쓰는 글


대표적으로 일기장에 쓰는 일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하루나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서 쓴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내 마음을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다. 나의 마음에게 물으면서 쓰는 글, 쓰다가 보면 내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는 글. 나에게만 집중하는 글. 요즘은 온라인상에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브런치에 비밀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가 쓰고 싶은 방식으로 쓴다. 마케팅이나 브랜딩과 상관없는, 그냥 내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렇게 쓰는 글을 '나를 위한 글'이라 칭한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글이 글 쓰는 주체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쓰는 사람으로, 작가로, 에디터로 살다 보니 당연히 1번의 글을 잘 쓰는 기술이 중요하다. 전직이 마케팅이다. 타겟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첫 책을 쓰면서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했던 것 역시 타겟설정과 시장이 원하는 주제 잡기였다. 매거진 VACAY를 만드는 동안 수없이 물었던 건 "이걸 우리 타겟독자들이 원할까?"였다. 내가 더 깊게 파고 싶다고 해도 독자들이 원하지 않을 것 같으면 적당한 깊이로만 파야 했고, 내가 쓰고 싶은 주제라도 독자가 흥미로워하지 않을 것 같으면 다른 주제를 찾아야 했다. 단지 나의 취향에만 부합하는 글을 쓰지 않기 위해 팀으로 일했고 치열하게 회의했다. 나도, 팀도, 독자도, 모두가 납득할 글을 쓰는 건 언제나 어렵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려면 앞으로도 1번 글을 더 많이 연습해야 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건 2번 글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글로 먹고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모두가 직업인이 되어 쓸 필요는 없다. 비즈니스를 위해서 쓰는 글과는 별개로, '나'를 위한 글을 누구나 썼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자꾸 글쓰기 프로젝트를 만드는 이유다. '나찾기', '나를 위한 글쓰기', '시작을 시작하기 위한 글쓰기' 따위의 이름을 달아서 말이다. 


"그런 프로젝트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워요."라고, 비즈니스와 관련해서는 나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이 조언했다. 마케터 출신이면서 현재 작가인 내가 하면 어울릴 만한 '돈 되는 글쓰기 강의'도 여러 번 제안했다. 돈을 벌고 싶으면서도 결국은 그런 프로젝트를 런칭하지 못 한건, 내가 그럴 능력이 없어서였다. 나는 목적 없이 쓰는 나를 위한 글을 더 좋아하는 사람인 걸. 당연히 나의 수강생이 나와 글을 써서 돈을 더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더 많은 이가 목적 없이 쓰며 글의 즐거움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글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면 그건 '나'여야 한다고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Chat GPT가 등장하면서 많은 분야가 충격에 빠졌다. 어느 직업이 AI에게 잡아먹히고, 어느 직업이 살아남을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한다. 처음 AI는 우리보다 지식과 정보가 많은 로봇 정도로 보였는데, 예술 영역까지 들어와서는 감동적인 소설까지 써버렸다. 감정을 다루고 감동을 줘야 하는 영역까지 침투해 들어온 AI를 보면서 사람들은 다시 아연해졌다. 쓰는 일 역시 빠르게 AI가 잠식할 거라 예상한다. 그리고 1번 분야의 글은 더 빠르게 AI의 것이 될 것이다. 실제 인간의 경험이 중요한 글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2번의 글은 다르다. 처음부터 시장을 위한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내가 쓰는 글이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알게 되는 일, 자꾸 나에게 물으면서 답을 찾아가는 일, 순간순간 꿈틀거리는 내 마음을 읽어내는 일, 내 마음인 줄 알고 내어놓은 말이 사실은 남의 마음을 담고 있다는 걸 깨닫는 일 같은 것을 AI가 대신해줄 수는 없다. AI에게 물을 수는 있겠지. AI가 주는 답을 내 마음이라 여겨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마음이 움직이는 모든 과정을 직접 느끼는 것과 같을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을 거다. 


그래서 나는 AI가 결코 쓰는 사람을 대체할 수 없을 거라고 믿는다. 세상에 있는 다양한 장르의 글이 AI의 작품으로 대체될 수는 있다. 하지만 글쓰기가 가지는 또 다른 효능, 나를 알게 하고 위로하고 성장시키는 힘은 대체될 수 없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위해 쓰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AI에게 맡기고), 나를 위한 글을 쓰는 사람들만 남지 않을까. 글과 관련된 비즈니스는 많이 달라지겠지만, 나를 위해 쓰는 이들의 글은 오래 살아남을 거다. 나와 함께 쓰는 사람들이 그런 마음으로 계속 썼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쓰지는 못하더라도, 나와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쓰지 않는 삶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느 날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 글쓰기라는 도구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다시 글 하나 써보면서 마음을 채워갔으면 좋겠다. 그건 AI가 절대로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다. 


사진: Unsplash의Thought Cat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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