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쏘냐 정 Feb 06. 2024

휴먼북이 되어 만난 사람들과의 Q&A

첨삭과 지속에 대해서

"도서관에 휴먼북이라는 게 있어요." 작년 봄, 휴먼북에 대해 알게 되었다. 도서관에 따라 사람책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종이로 된 책 대신 사람의 경험을 책처럼 열람하는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나눌 스토리가 있다면 열람당하는 '사람책'이 될 수 있다. 그날 우리 동네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시작을 시작하는 삶, 엄마의 책쓰기'라는 제목으로 휴먼북 등록을 하고 승인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다.


"휴먼북 담당자입니다. 휴먼북 열람 신청이 와서 전화드렸어요."

출처: 용인시 도서관 홈페이지

만나기로 한 날, 시작이 궁금한 건지, 글쓰기가 궁금한 건지, 아니면 책 쓰기가 궁금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세 가지 이야기를 모두 준비하고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신청자는 1년 넘게 글쓰기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는 팀이었다. 연령대가 다양한 다섯 명의 멤버가 참석했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났고, 수업 이후에도 꾸준히 쓰고 싶어서 모임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 시간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개의 질문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Q1. 첨삭 없이 계속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저희끼리 하는 합평은 필요할까요?


선생님 없이 계속 쓰다 보니 '이게 맞는가'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고 했다. 그 마음 이해가 된다. 게다가 선생님이라는 구심점 없이 동등한 멤버들끼리 합평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갈등도 생기게 마련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상처받는 순간들도 있을 테고 말이다.


"첨삭 필요 여부는 글 쓰는 이유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처음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수강생들의 모든 글에 첨삭을 한 시기가 있었다. 글에 대해 꼼꼼히 피드백을 할수록 수강생들이 더 많은 걸 얻어갈 수 있으니 좋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첨삭을 하고 또 했다. 아무리 내 발로 찾아와 받는 첨삭이라고 해도, 타인의 지적은 아플 수 있으니 일단 칭찬부터 하려 노력했다. 글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를 말한 후에, 이런 이런 부분은 이렇게 수정하면 좋겠다고 지적하며,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예시도 몇 개씩 들었더랬다. 그런데 곧 그런 과정에 회의가 생겼다.


글쓰기는 여러모로 유용하다. 하지만 잘 쓴 글만 유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쓰는 과정이 더 의미 있을 때가 많다. 그런데 매번 글에 첨삭을 받다 보면 내용이 깊어지기보다 스킬에 집착하는 경향이 생긴다. 나의 수강생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시간 제약이 있을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해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상처받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거다. 각자가 '나를 위한 글'을 썼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한 일인데, "나는 안 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생기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첨삭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데 '잘 써야 한다'는 마음이 방해가 된다면, 첨삭은 독이 될 수 있다. 자칫, 글쓰기를 그만두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꼭 잘 써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첨삭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써내기를 권한다. 그날도 이렇게 말했다. "그냥 쓰고 싶은 거라면 꼭 잘 써야 한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쓰시면 좋겠어요. 어느 정도의 양을 채워보는 거죠. 그러다가, 그냥 글 말고 책을 쓰고 싶다거나 마케팅 용도로 목적을 가지고 잘 써야 하는 순간이 오면, 목적에 맞는 첨삭을 받는 걸 추천드려요. 다만, 내가 글을 쓸 때 '글의 구조를 전혀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전혀 나아갈 수가 없다.' 싶다면 글의 구조에 대한 첨삭은 미리 받아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합평은 유용한 점이 꽤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지 못하는 걸 다른 사람은 볼 수 있을 때가 많으니까. 다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글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평가를 듣는 건 중요하다. 그걸 받아들이고 내 글을 개선하는 원료로 쓰는 자세도 필요하다. 하지만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는 걸 항상 기억해야 한다. 평가를 하는 사람도, 평가를 받는 사람도, 양쪽 모두. 


Q2. 매주 하나의 주제를 잡고 그에 대한 글을 써요. 근데 그냥 이렇게 계속 쓰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은 계속해서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매주 그 주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하나의 글을 완성할 테니까요. 그리고 글은 쓰면 쓸수록 늘거든요. 글쓰기를 지속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계속해왔기 때문에 얻은 것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런데 계속 이런저런 주제를 가지고 매번 다른 글을 전개하다 보면 무언가가 흩어지는 느낌도 들죠. 충분히 많이 썼기 때문에 더 그런 기분이 들 거예요. 그럴 때 저는 '연재'를 추천합니다. 하나의 주제를 잡고, 네 개, 여덟 개, 열 개, 스무 개, 이렇게 시리즈로 글을 쓰는 거예요. 주제를 잡고, 글 개수를 정하고, 그에 맞는 목차를 잡으세요.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나의 주제에 대한 글을 쓰는 거죠. 그렇게 쓰면 글들이 중심을 잡고 모여드는 느낌이 들어요. 게다가 하나의 주제로 하나의 글을 쓸 때와 열 개의 글을 쓸 때, 깊이가 완전히 달라지죠. 훨씬 더 많이 묻고 고민하게 됩니다. 깊이의 차이가 양질의 글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요."


이번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었다. 내가 계속해서 나만의 주제를 잡고 목차를 만들어 시리즈 글을 쓰는 프로젝트로 글쓰기 코칭을 하는 이유다. 요즘은 어디에든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연속성 없는 글도 자주 쓰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구조적인 글쓰기에는 언제나 하나의 주제와 단편적이지 않은 긴 글이 있다. 책 한 권은 하나의 주제를 담고, 브런치스토리의 브런치북도 하나의 주제 아래 적어도 열 개의 목차를 잡도록 정해져 있다. 거기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느끼는 무게가 다른 것이다.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각종 글쓰기 강의에서 받았던 질문과 그날 휴먼북 타임에 받은 질문이 비슷해서 한 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한 마음으로, 더 자주 썼으면 좋겠다. 글쓰기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받지만,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은 늘 똑같다. 그냥 쓰시면 돼요. 쓰고 싶은 말을 그저 톡톡톡. 혹은 사각사각.


이전 12화 프롤로그는 언제 쓰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