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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Mar 13. 2024

좋아서 쓰는 건 아니에요.

쓰는 게 좋아서 결국은 쓰게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정말 그렇다고 믿었다. 꼭 그래야지 마음먹은 것도 아닌데, 갖가지 이유로 다시 쓰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했다. 내가 나를 발견한다는 표현이 이상하긴 하지만 더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 내 의지로 쓴다기보다 나도 모르게 쓰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쓰기 시작하면 그제야 내가 깨닫는 거다. 나 또 쓰고 있구나. 다시 쓰는 자리로 돌아왔구나. 그렇게.


사진: Unsplash의Kenny Eliason


얼마 전 작가 세 사람이 만났다. 그날 한 사람이 말했다. "전 사실 좋아서 쓰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덧붙였다. "그냥 자꾸 제가 써야만 할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써요." 그 솔직한 고백에 당황했다. 내가 의심 없이 하던 말 "좋아서 써요."의 진위 여부를 다시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써야만 할 것 같다는 표현이, 어쩌면 나의 상태와 더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꾸 써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당연히 내가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쓰는 일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다. 글 쓰는 데 재능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은 글을 쓰곤 했다. 그냥 쓰고 싶어서 썼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들을 글로 쓰면 마음이 편해졌다. 그저 쏟아내는 일기가 아니었다. 시를 썼다. 표현 하나, 단어 하나, 다듬고 다듬어, 줄이고 줄여서, 은유적이고도 함축적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 정리되는 마음이 좋았다. 그렇게 100개 정도의 시를 썼다. 


크고 나서는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더 많이 썼다. SNS의 글도, 책의 글도, 기사의 글도, 보고서도, 스크립트도. 다 그랬다. 왜 그런 글들을 썼느냐고 묻는다면, 내 글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는 게 좋아서였다. 내 글이 담은 정보나 인사이트가 어느 한 명에게라도 도움이 됐다면 기뻤다. 아무것도 아닌 내 일상이 작은 미소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을 때면 다수에게 의미 없을 일상글도 쓸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물론 일상글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내 날들을 정리하고 싶은 나였지만 단지 나만을 위한 글은 아니라는 사실이 늘 위로가 되었다. 


정리하다 보니 그렇다. 나 역시 쓰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쓰는 건 아니다.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건, 쓰는 작업이 주는 결과가 좋아서다. 쓰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내 안에 엉켜있는 것들이, 쓰고 나면 깨끗하게 빨아 곱게 접은 수건처럼 정리가 되니까. 쓸모 있는 것이 되니까. 


이제 나도 이렇게 얘기해야겠다. 

"사실 저는 쓰는 좋은 아니에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야지. "쓰는 건 어렵거든요. 하지만 쓰고 나서 얻는 것들이 좋아서 써요. 내가 얻거나 타인에게 얻을 것을 주거나. 그렇게 도움 되는 일을 하는 내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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