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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Mar 19. 2024

글쓰기가 가져다준 의외의 보상

나는 당첨운이 없는 사람이다. 첫째 임신 기간에 휴직하고 열심히 다닌 출산교실에서 그 흔한 경품 한번 당첨된 적이 없다. 함께 간 엄마들이 조그만 플라스틱 변기라도 하나 받아 나올 때 유일하게 아무것도 못 들고 나온 사람이 나다. 회사 어린이집 추첨 당시 확률은 1/2. 그리 높지도 않은 경쟁률이었는데 역시나 똑 떨어졌다. 심지어 대기번호마저 끝 번호였다. 그래서 나는 이런 류의 요행을 기대하지 않는다. 바라지 않는 건 아니지만, 바란다고 되는 게 아니니 말이다.


나의 호적메이트, 내 동생은 나와 반대다. 그녀는 일주일에도 몇 건의 이벤트 당첨 연락을 받는다. 종종 나에게 이렇게 물을 만큼. "언니, 나 화장품이 또 생겼는데 혹시 필요해?" "언니, 애들 이 과자 먹어? 이벤트 당첨됐는데 보내줄까?" "언니, 사실 나 이거 안 좋아하는데 이벤트 응모했더니 당첨돼서... 언니가 먹을래?" 신이 우리 자매를 만들 때 당첨운을 몽땅 동생에게만 부어버렸나 보다.


사진: Unsplash의Nellie Adamyan


그렇다고 내가 이벤트에 당첨된 적이 한 번도 없는 건 아니다. 동생에게만 당첨운이 몰빵 된 불공평한 세상이, 나에게도 한껏 부어준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글쓰기력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심을 담는 글쓰기 능력. 세상에는 수많은 글이 있고 장르도 다양하다. 그중 하나에 내 글을 넣는다면 '진심이 느껴지는 글' 장르가 적합하지 않을까. 글쓰기 능력은 자신하기 어렵지만, 진심을 담아 쓰기는 자신 있다. 


진심 어린 글쓰기가 브랜딩 글쓰기나 마케팅 글쓰기처럼 돈을 벌어다주진 않는다. 하지만 종종 작지만 소소한 보상을 가져다주곤 한다. 


동생의 결혼식을 앞둔 어느 날, 동생이 나에게 링크를 하나 보냈다. "언니, 언니가 이거 응모 좀 해주면 안 돼?" 이게 뭔가 하고 들어가 보니 뮤지컬 가수의 축가 이벤트 공지였다. 대중음악보다 클래식이나 뮤지컬을 더 좋아하는 엄마와 내가 흥미롭게 봤던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던 가수다. 뮤지컬 공연을 좋아하는 엄마나, 로맨틱한 결혼식을 꿈꾸는 동생 모두에게 좋은 선물이 분명했다. "언니, 나는 정말 로맨틱한 결혼을 하고 싶거든. 이 축가라면 내 꿈이 이루어질 것 같아." 이렇게까지 축가 이벤트에 진심인 동생이 직접 응모하지 않고 내게 보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단순 추첨이 아닌 사연응모 이벤트였기 때문.


 오, 이런 거라면 내가 유리하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가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자매가 따로 살게 된 이야기부터 꺼냈다. 언니가 고작 서울의 대학에 가는 것 정도로 동생은 "언니, 우리 생이별하는 거잖아."라고 편지에 썼었다. 그걸 시작으로, 대학을 졸업한 동생이 서울로 와 함께 살았던 이야기. 그러다 내가 결혼하면서 동생이 원룸에 혼자 남겨진 이야기까지, 언니가 동생에게 이 축가를 선물하고 싶은 이유를 아낌없이 적어내려 갔다. 진심은 듬뿍 담고 필요한 에피소드는 빠뜨리지 않되, 당첨자 선정 담당자가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분량과 순서를 고려하면서. 


"축가 이벤트 당첨을 축하합니다." 그날의 축가는 동생이 두고두고 행복해하는 추억이 되었다. 


글쓰기가 내게 준 첫 보상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면 중학교 때로 거슬러 간다. 첫 백일장 상을 받던 날, 나는 시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몇 등 상이었는지는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국어 시간에 배운 여러 가지 기교보다는 시에 담은 진심이 통한 거라고 그때 나는 믿었다. 공부보다 친구관계가 어려웠던 나지만, 사실 우정을 가장 소중히 한다는 내용을 담은 시였다. 대학 수시모집 원서를 쓸 때도 어떻게 하면 진심을 보여줄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좋아하는 만화책의 "미완이기에 아름다운 우리의 젊은 날들"이라는 문구를 언급하며, 미완인 내가 채워가고 싶은 미래를 설명했다. 


생각해 보니 전 남자 친구와의 뮤지컬 관람 에피소드를 사연으로 보내, 새로운 뮤지컬 표를 받은 적도 있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 스팀 청소기를 받기도 했고, 할아버지와 손자의 목욕탕 첫 방문기를 댓글로 달아 책을 받기도 했다. 대체로 무용한 글쓰기만 이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글쓰기가 내게 준 보상이 꽤 쏠쏠하다. 재작년에는 내 글 덕분에 제주도 왕복 크루즈 가족실 티켓도 얻었고 말이다.


요즘 글 쓰는 나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자꾸 고민한다. 이유가 없이 쓰는 일은 정말 무용하기만 하냐는 질문도 한다. 이런 걸 글테기라고 해야 할까. 이유 없이 쓰는 글 역시 소중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런 고민이 짙어지는 날은 글쓰기의 유용성을 굳이 끄집어내 본다. '그래. 이런 보상들도 있었지.' 하면서. 내가 글쓰기에 쏟는 시간을 정당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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