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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Nov 21. 2023

첫 도전이 너무 과했던 것 아닌가요?

어느 날, 책을 쓰겠다고 말했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였다. 내 머릿속에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은, 불현듯 찾아왔다. '네가?' 하는 생각과 실소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책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지 않은가.


당시의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맘이었다. 7살, 3살 아들 둘을 데리고 놀이터와 마트를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는, 면티에 청바지가 트레이트마크인 동네 아줌마. 매일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먹이고 씻기고 나면 아이가 얼른 자기만을 기다리던 평범한 엄마. 퇴사 초기에는 나중에 뭐라도 해야지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엄마로 사는 게 잘 맞는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그저 이대로도 괜찮지 않나 생각했던, 내 안의 욕망은 모르고 매일을 살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책을 쓰고 싶다니. 이 얼마나 황당한 생각인가. 물론, 지난날은 언제나 도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승산 없는 싸움을 시작해 본 적은 없었다. 모든 도전에 성공한 건 아니지만, 마지막까지 성공을 기대할 수는 있는 도전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도전에는 승산이 없어 보였다. 아니, 당장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단은 '해보고 생각할' 일이 되는 데는 몇 개월이 걸렸다. 지나고 보니, 그저 몇 달이 아니라 처음 퇴사를 한 그 때로부터 거의 7년, 혹은,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던 중학교 때부터 거의 20년을 준비해 온 일이 아닌가 싶지만 말이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평범한 이의 서사가 서점에 드문드문 보이던 시기였다. 똑같이 평범한 데 누군가의 서사는 책이 되었고, 누군가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실행 아닐까. 실행은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로 이어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공'이 나의 가능성이 되려면 무조건 실행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확률이 0.001%에 지나지 않더라도, 0보다는 높지 않은가.


그즈음 책에서 '실패하지 않는 삶'에 대한 글을 읽었다. 실패하지 않는 삶은 평온하다. 그런데 그건 진짜 평온일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무엇에도 실패할 수 없다. 순간 섬뜩해졌다. 평화로이 흘러간 지난 몇 년의 시간 속에 도전이 없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떠올리면 가슴 뛰는 도전들은 모두 엄마가 되기 전의 기억이었다. 나는, 무언가에 도전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기억해 냈다. 그때와 다른 건, 지금은 성공 가능성을 예측해 가며 도전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 차라리 '실패 가능성'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시작하자 마음먹었다. 실패를 예측하는 게 시작의 동력이 될 거라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이번에는 실패를 인정하니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


어쩌면 그때 내가 살짝 미쳤었는지도 모른다고, 아니 분명 그랬던 것 같다고, 자주 생각한다.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폐기하지 않았던 나는 이미 평소의 내가 아니었다.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내 앞에 나타난 책 쓰기 학원 원데이 공지를 보고 덜컥 신청을 한 나도 그랬다. 결국 그 학원의 정규 과정에 신청했을 때는 나의 미침이 극에 달해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결정을 잘도 덜컥 덜컥해버렸다. 내가 정상이었다면 고가의 학원비를 결제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어떻게 그렇게 미쳐버릴 수 있었냐고 나에게 오래 물었다. 그리고 최근에 이런 답을 얻었다. 그때 내가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던 게 아닐까. 엄마로만 사는 게 꽤나 행복했는데, 내 안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너무나 많아서 사실은 다시 세상에 뛰어들고 싶은 나도 있었던 거다. 그 '나'는 힘들었던 거다. 현재의 행복에 자리를 내어주고 숨죽이고 있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그즈음에 튀어올라 버렸던 것. 오래 참는 동안 서서히 브레이크는 고장 났을 테고,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던 거다. 엄마 말고 다른 '타이틀'을 갖고 싶었고, 도전하면서 얻는 설렘이 그리웠다. 가정 내의 내 유용함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세상 속에서 다른 종류의 유용성도 인정받고 싶었다.


다만, 그것이 엄마인 내 아이덴티티를 부정하는 종류가 아니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로 사는 삶이 행복한 내가 그 자체로 나에게는 놀라운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내 행복과 세상의 시각(엄마란 딱히 특별한 것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사이의 괴리가 당시 나의 최대 불만 포인트였기에, 엄마의 시간을 경력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오기도 생겼다. 세상이 인정하든 아니든, 나는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 책의 주제를 '육아'로 삼았다.



그렇게 시작했다. 시작했으니 의심하지 말아야 했다. 성공이든, 실패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내가 아는 건 단지 지금 내가 쓸 수 있다는 사실뿐이었고, 결과는 다 쓰고 난 후에야 알게 될 터였다. 이 시도가 과하든 적당하든, 그건 알 바가 아니었다. 시간을 들일수록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커지고, 진짜로 성공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생기기도 했지만, 애써 실패를 생각했다. 실패하더라도 의미 있는 이유를 더 탄탄히 쌓아가며 매일 썼다. 그래야만 끝까지 쓸 수 있었다. 세상엔 무용해도 된다. 이게 나에게 유용하기만 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마침내, 내 책이 세상에 나왔다. 첫 도전치고 너무 과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래서 그때의 나에게 더욱 고맙다. 잠시 미쳐줘서 고맙다고, 세상을 살면서 한 번쯤은 미쳐봐도 괜찮은 것 같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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