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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Nov 07. 2023

왜 더 욕심을 내냐는 질문

욕심이 아니라 불안입니다.

올해 4월. 나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2020년 첫 책이 나오고 2년이 지나서야 작업을 시작했고, 2년 반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온 결과물. 하루하루 빠르게 변화해 가는 세상에서 2년 반은 긴 시간이었고, 나의 상황 역시 많이 바뀌어 있었다.


첫 책 계약을 한 2020년 초는 코로나가 발발한 시기였다. 새로운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새 싹을 틔우는 중이었고, 그저 엄마로만 살다가 첫 발을 내딛는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기에도 부담 없는 분위기였다. 앞뒤 모르는 아이처럼 나는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때때로 두려운 만큼 흥미로웠다.


첫 책이 나온 후 나의 삶 역시 많이 달라졌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고 기대하지 못했던 기회들도 생겼다. 오래 쓰지 못했던 일머리를 쓰는 것에도 신이 났다. 하나하나 최선을 다했다. 감사한 날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를 깨달았다. 일들이 너무 다양해서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묶이지 않아 외부의 시선, 특히 온라인의 시선에서는 nothing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E인 듯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I성향이 다분한 사람. 다수와 동시다발적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커뮤니티성 관계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대신 깊게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소수의 사람들이 생겼는데, 하는 일이 바빠지면서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내가 두 번째 책을 쓴 건, 창업과 창간으로 지나치게 소진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기 터널'에 스스로 진입했다가 빠져나온 직후였다. 일을 하느라 역설적으로 예전의 세상과 단절된 날들을 살았는데 뒤이어 바로 자발적인 고립까지 선택한 다음이다 보니, 책이 나오고도 홍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 같은 무명작가는, 두 번째라고 해서 첫 번째보다 나을 것이 없다. 여전히 출판 시장은 어렵고, 일부 유명한 책만 잘 팔린다. 내 책이 그 유명한 책이 될 리는 만무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 한 권이라도 더 팔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북토크를 하자는 연락이 오면 하나도 거절하지 않았고,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곳에는 연락해서 북토크 일정을 잡았다. 매번 북토크마다 모객에 애썼다. 혼자 갈 수 없는 곳이면 남편 휴가까지 쓰게 하면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날, 모객이 잘 안 되어 슬퍼하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왜 그렇게 애를 써? 왜 욕심을 내는 거야? 네가 원하던 대로 두 번째 책이 나왔잖아.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친한 친구인 만큼 알고 있었던 거다.  나는 쓰는 일로 돈을 벌겠다거나 유명해지고 싶어 하기보다 쓰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니, 이미 썼고 결과물이 세상에 나왔는데 왜 더 알리고 팔지 못해 안달인지 답답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 이게 마지막 기회일까 봐 그래. 나에게 다음이 없을까 봐. 세상은 결과로 나를 판단하고, 출판업계도 실전 비즈니스니까. 첫 책은 처음이니까 면죄부가 있을 수 있지만 이건 두 번째잖아. 두 번째 책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세 번째 책은 영영 낼 수 없을까 봐 그래. 나는 그게 너무 두려워."


첫 책은 출간 한 달여 만에 2쇄를 찍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깨달았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어서 두 번째 책을 쓸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나는 쓰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높은 산을 다시 넘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2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다시 써야만 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무엇보다 쓰는 일에 진심이라는 걸 돌고 돌아 알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즈음 내 마음에는 세상에 내놓고 싶은 새로운 이야기가 찰랑이고 있었다. 그러니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두 번째 책을 출간할 수 있었던 건, 그것만으로도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저 쓰는 것만으로는 계속 쓰는 사람이 될 수 없다. 그저 이미 출간된 책을 쓴 사람일 뿐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글쓰기의 즐거움을 가르치는 글쓰기 코치가 되고 싶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작가도 되고 싶은데, 내가 그만한 자격을 갖추지 않고서 나를 읽어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현역이 아닌 사람이 하는 말에는 설득력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매거진 VACAY를 만들던 시절, 20대의 젊은 후배가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때 이런 이야기를 건넸었다. "지금 하는 일이 당신의 프로필이 될 거예요. 세상에 보이는 건 결과물들 뿐이니까. 이 결과물들이 쌓여서 당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증명하겠죠. 내 일이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이게 나의 내일을 위해서 필요한 일인지 한번 생각해 봐요. 저는요, 지금 내가 정성과 시간을 쓰는 일은 적어도 둘 중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나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거나, 나의 내일을 위한 충실한 받침이 되어주거나. 실질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내가 두 번째 책에 최선을 다했던 것도 그래서다. 쓰는 사람 쏘냐의 최종 목적지가 여기는 아니니까. 나에게는 세 번째 책도, 네 번째 책도 있어야 하니까. 책출간이 계속 쓰는 삶을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가장 강력한 방법임에는 틀림없으니까. 쓰는 일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나는 정말로 쓰는 일에 진심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쓰는 삶이 그저 취미로 끝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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