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내 선택이 맞았던 걸까. 혹시 이 만족감은 내가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나는 현실에 만족하는 것에 능한 사람이라서. 어쩌면 그것이 단순한 만족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라서. 그래서 지금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하던 나에게 이 문장이 훅 들어왔다.
"죽음을 앞두고 더 열심히 일하지 않고 글을 더 많이 쓰지 않은 것을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닉과 게임을 하고 로렌과 늦은 밤에 긴 대화를 나누고 헤럴드와 배꼽 빠지게 웃던 시간이 더 많았으면 싶을 것이다. 인생을 바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 타이탄의 도구들 p324
그래. 나는 죽음을 앞두고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왜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로 살았을까 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와 여유로운 아침을 맞고, 아이의 빛나는 미소를 바라보고,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할 때 늘 함께할 수 있었던 전업맘의 시간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2가 아닌 10으로 늘려 살았던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으리라.
이 책을 만났던 때는 내가 책의 초고를 투고하고 답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기한안에 초고를 완성하겠다고 감옥살이라도 하듯 앉아서 글만 쓰던 집에서 나가 오랜만의 자유를 누리던 시기였다. 오랜만에 계획한 모임이 있어 강남에 갔던 날,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눈물이 났다.
회사생활의 대부분을 수원 본사에서 했지만 마지막 몇 개월을 서초사옥에서 했던 터라 새록새록 떠오르는 출퇴근의 기억. 신분당선을 타고 강남역에 도착하면 지하상가 길을 쭉 걸어서 도착하던 사무실. 8년 전의 나에게 정대리만 믿는다며 프로젝트를 주던 부장님. 선배가 있어서 다행이라던 후배. 업무 스트레스를 수다로 함께 풀던 옆 파트 과장님. 그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 아직도 남의 회사가 아니고 나도 모르게 우리 회사라고 하는 그곳. 그 지하를 지나며 자꾸 눈물이 나서... 그때의 내가 눈물겹도록 그리워서...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싶은 날들이 많을 때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행복한 엄마라는 타이틀이 나의 착각인 걸까. 나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그리고 알았다. 내가 그때의 나를 참 사랑했다는 것을. 그때 나의 업을 참 사랑했었다는 것을. 이러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을 전에도 글에 쓴 적이 있다. 내가 포기한 것은 내가 싫어하는 어떤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다만 그것이 엄마 역할보다 0.2만큼 덜 중요했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그것이 그리운 것도 당연한 일.
그렇게 확신하면서도 가끔씩 같은 의문이 떠오르는 것 역시 어찌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답을 찾았다 기뻐하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의문이 되어 날아오곤 했다. 이 마음이 아직 충분히 단단해지지 못해서겠지. 그리고 그 의문은 이렇게 다시 한번 해소되었다.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위의 문구를 발견하고 죽음을 떠올려본 덕분에. 아마도 앞으로는 선택의 순간이 올 때마다 나에게 이 질문을 하게 될 것 같다. "만약 죽음을 앞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득만 있는 선택은 없다. 득이 있다면 실도 있게 마련이고, 장점이 있다면 단점 역시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취하고 싶은가. 어쩌면 우리의 모든 선택은 최고를 잡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잡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질문이 꽤나 유용하다. 내 선택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나만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마지막을 떠올릴 때 우리의 마음이 가장 솔직해지니까.
너무 흔해서 감동적이지도 않았던 이 질문이, 이렇게나 소중한 질문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도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