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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지 않는 화장품 덕후

프리챌을 기억하나요?

by 쏘냐 정

프리챌에 있던 '초코토끼'로 시작하는 화장품 덕후들의 성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혹시 있을까? 이름이 '초코토끼의 화장품 이야기'였는지, '초코토끼의 화장품 수집일기'이었는지 조차 가물가물할 만큼 오래된 추억의 커뮤니티. 되짚어 보니 내가 그곳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시기는 무려 24년 전이다. 시간 참 빠르군.


2001년, 01학번 새내기로 상경했다. 서울이 외갓집이라서 자주 오가기는 했지만 살러 오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가족 없이 홀로 새로운 땅에 터를 잡는 일이었다. 언제나 인간관계가 서툴렀던 내가 새로운 사람들로 가득 찬 대학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우산 위에 쌓인 눈처럼 무겁고 생경했다.


입학 전 계절학기 첫날, 서울에는 폭설이 내렸다. 부산에서 막 올라온 내게 눈은 반가운 존재였다. '신촌역에 도착하면 눈을 맞으며 학교까지 가야지.' 설레는 마음으로 가는 길, 1년 먼저 같은 학교에 간 고향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우산 가지고 신촌역으로 갈 테니 몇 번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어." "왜? 눈 그냥 맞고 가면 안 돼?" "야, 서울에선 아무도 눈 안 맞아. 우산 써야 돼." 그날 굳이 우산으로 눈과 나를 분리하며 느꼈던 생경함. 내게 서울은 그렇게 낯선 도시였다.


수업을 듣고, 친구를 사귀고, 연애도 하고, 평범한 날이 흘러갔지만 열아홉에 타지에서 시작한 혼자살이는 서러운 일도 많았다. 집에 가면 어른이 준비해 준 저녁 식탁이 있는 친구도 부럽고, 꼭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이 있는 날 내 맘대로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거실 TV를 가진 친구도 부러웠다. (기숙사 휴게실 TV는 공용이었으니까) 아픈 날엔 직접 흰 죽을 쑤어 방으로 가다가 계단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조리실과 내 방은 다른 층에 있었다.) 엎어진 죽보다 다친 무릎이 더 속상했다.


가족이라면 모를까, 주변의 타인에게 매번 징징거릴 수 없었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게 립스틱이다. 스산한 마음을 채워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에게 색조 화장은 새롭고 아름다운 세계. 물론 화장품 말고도 갖고 싶은 건 많았다. 수많은 환상 중 립스틱을 택한 건 적당한 가격 때문이었다. 어쩌다 한 번, 나에게 위로 혹은 상을 주고 싶은 날 직접 선물하는 게 가능한 가격. 신촌역 백화점 매장에 당당히 들어가 알록달록하고 반짝이는 걸 사고 싶은 마음을 립스틱으로 충족시켰다.


그러다가 프리챌 초코토끼를 알게 됐다. 거기에는 화장품 신세계가 있었다. 오가며 백화점에서 접하는 게 고작이었던 화장품. 대체로 비싸다고 생각했던 화장품 세계의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한국에도 다양한 브랜드가 있었지만, 이 커뮤니티에서 인기 있는 건 주로 한국에 수입되지 않아 구하기 어려운 외국 화장품들이었다. 그중 1등은 단연 일본 화장품. 일본 화장품은 귀엽고 다양한 데다가 가격까지 저렴했다. 우리는 갖가지 방법으로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외국 화장품들을 모았다.


방학을 맞아 부산 집에 내려갔던 날, 부산대 앞에서 했던 정모를 잊지 못한다. 그 커뮤니티의 주축이 부산이었는데, 그건 아마도 깡통시장처럼 일본 제품을 구할 통로가 많은 곳이어서가 아니었나 싶다. 그날 우리는 만나자마자 통통하다 못해 뚱뚱해진 화장품 파우치를 몇 개씩 꺼냈다. 주문한 음료는 여기저기로 치워두고 파우치를 뒤집어 쏟아놓으면 "오, 이거 어디서 샀어요?" "이거 궁금했는데 덕분에 실물을 보네요." 난리가 났다. "이거 써봐도 돼요?" 입술에도 바르고 눈두덩에도 발랐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이제 한국에서도 흔한 가네보 효소 파우더랑 시세이도 뷰러, 나스의 베스트셀러 블러셔 오르가슴. 그리고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린 일본산 튜브형 크림 아이섀도다. 그때 내가 어렵게 구한 컬러는 민트컬러였는데, 눈두덩에 초록을 바르고 다닐 용기도 없으면서 손에 넣고는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안 쓰자니 아까워서, 외출했다 돌아오면 거울 앞에 앉아 슥슥 발라보고 '역시 민트색 화장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면서 지워버리곤 했다. 그런 식으로 거의 반은 써버렸는데, 바르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도 아깝지 않았다. 피부로 느끼는 크림 섀도가 발리는 느낌이 좋아서였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행복했다.


그때도 지금도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늘어서 섀도를 세 종류나 그러데이션 해가면서 바르는데, 그것도 누디 컬러만이다. 아마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섀도를 세 개나 펴 발랐다고 생각하지는 못 할 결과물. 그럴 거면 왜 화장하냐는데, 여전히 나는 그저 펴 바르는 느낌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작년에 갑자기 생긴 입술 알러지. 립스틱을 바를 수 없게 됐다. 색소까지 100% 천연인 제품 하나만 겨우 바를 수 있다.


목적이 확실한 물건이라고 해서, 그 목적을 위해서만 쓰라는 법은 없다. 바르고 나가지도 않을 화장품을 종류별로 컬러별로 모아서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얻었던 기쁨. 밖에 바르고 나갈 자신은 없지만 거울 앞에서만은 얼마든지 화려하게 변신할 수 있었던 비밀스러운 시간. 기댈 곳 없어 나 스스로 이겨나가야 했던 여린 십 대의 마지막과 이십 대의 시작을 지켜준 건 수집품으로서의 화장품이었다.


덧. 프리챌도 사라지고 싸이월드도 닫혀 버려서, 그때 사진을 불러올 수 없는 게 너무 안타깝다. 내 보물들이 실물은 물론 사진에서까지 자취를 감췄네. 결혼하면서 1차로 정리했고, 입술에 알러지가 생기면서 2차 정리해서 현재 화장품은 서랍 한 칸만 겨우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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