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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Mar 01. 2021

5살 아들, 너는 십 년 후에도 책을 사랑할까?

어른 책을 탐내는 너를 보면서...

언제나 책방은 그냥 지나치기 힘든 곳. 지나다 들른 책방에서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발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소설집의 친필 사인본을 발견했다. 미니멀리즘 흉내라도 내보자며 책장을 줄이는 중. 하지만 이 책은 꼭 사야 한다면 챙겨 들었다.


엄마가 "일의 기쁨과 슬픔" 친필 사인본을 찾고 기뻐할 때,
5살 둘째는 "쓸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라는 책을 꺼내더니 읽고 싶다고 했다. "엄마, 난 이거 볼래. 여기 앉아서 보는 데 있잖아. 어디 앉지?" "여기 앉으면 돼" 했더니 거기는 싫단다. 두리번거리더니 "아니. 난 저 사람들처럼 책상도 있는데 앉을래." 한다.


진지하게 책을 읽을 자리를 고르는데 아무 데나 앉으라고 할 수는 없다. 책방 안을 돌아 테이블이 있는 자리를 찾았다. 사실은 책을 보기 위한 테이블이 아니라, 책을 두기 위한 테이블이 딸린 자리. 아이는 앉자마자 깨달았다. 그 테이블의 용도를. 찾아 헤매던 그 테이블 대신 무릎 위에 책을 두고 보다가 아예 옆에 내려두고는 엎드리듯 앉아 보기 시작했다.

다섯 살 둘째에게 책은 아직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 사실 이 아이는 아직 글씨를 읽을 줄 모른다. 기억하는 몇 개의 글씨로 짜 맞추고 해석할 뿐. 그마저도 익숙한 나라 이름들을 볼 때나 가능한 것. "음, 이건 '라' '오'...  엄마 이건 '라오스'야." 가끔은 보자마자 나라 이름을 말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이 아이가 읽은 것은 글자가 아니라 국기다. 글자보다는 국기를 더 많이 외우고 있으니까.

그런데 엄마조차 관심 없는 책을 하나 골라 신중히 자리를 찾아 진지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게 처음은 아니다. 매번 엄마가 읽는 책을 뺏어보는 아이. 글자를 암호 해독하듯 참 진지하게 열심히도 보는 아이. 보고 싶은 책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른 책 두 권은 구비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 "엄마, 이 책 나도 읽고 싶어." "이건 엄마가 지금 읽고 있으니까 꿈이는 이거 먼저 볼까? 이것 봐. 표지도 이렇게 예뻐."


오늘은 이런 아이를 바라보다가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과연 십 년 후, 이 아이는 책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게 될까? 나는 이 아이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다섯 살 글자를 모를 때도 그렇게 어른 책을 읽고 싶어 하더니 역시 넌 책을 좋아하는구나.' 혹은, '다섯 살 글자를 모를 때는 어른 책을 읽고 싶어 해서 신기했는데 정작 지금은 책을 싫어하는구나.'

둘 중 무엇이 될지 아주 궁금해지는 아침.


많은 엄마들이 말했다. 어린 시절 아이는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조금만 지나도 속을 썩이기 시작할 테고, 살가운 모습은 사라질 거라고. 특히 내게는 아들만 둘이기에 이 말이 무심히 지나쳐지지 않는다.


같은 의미에서 아이가 책을 대하는 태도 역시 완전히 달라질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엄마 없으면 살 수 없을 것처럼 매일 엄마를 찾던 아이가, 엄마가 없어야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이가 된다는 믿을 수 없는 미래처럼. 글자를 못 읽으면서도 사랑하던 이 책을, 멀수록 더 좋은 것으로 여기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십 년 후쯤 나는 어떤 결론을 가지고 이 글의 후속 편을 쓰게 될 것인가. 시간만이 알려줄 그 답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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