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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Mar 11. 2021

엄마, 내가 뭐 선물해줄까?

9살 아들의 생일선물

"안녕하세요. 제가 탄생석 액세서리를 하나 사려고 해요. 제 탄생석은 아쿠아마린이에요. 그런데 이게 제 아들이 선물해주는 거라 약간 가격에 제한이 있어요. 최대 13만 원 안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쿠아마린 액세서리가 있을까요? 목걸이든, 귀걸이든 상관없어요. 9살 아들이 엄마 생일선물로 꼭 사주고 싶다고 해서요. 다른 사람 돈을 더해서 사는 건 안되고 꼭 자신이 다 지불하고 싶다고 해서, 딱 그 금액에 맞춘 제품이 있으면 좋겠어요."


인스타그램으로 이렇게 DM을 보냈다. 그 이야기는 9살 아이가 처음 자신의 통장을 갖게 된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억에 없는 유치원 통장을 제외하면 첫 통장이었다.)




"엄마, 나 돈 많으니까 엄마 가지고 싶은 거 사줄게. 엄마 뭐 갖고 싶어?"


9살 아이가 처음으로 직접 통장에 돈을 입금했다. 통장에 찍힌 몇십만 원의 잔액이 너무나 자랑스러운지 통장을 연신 들여다보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뭐 갖고 싶어?" "괜찮아. 이건 뒀다가 축복이가 꼭 필요할 때 써." 그렇게 몇 번을 말했는데도, 그다음 날이 되면 다시 물었다. "엄마, 가지고 싶은 거 없어? 내가 뭘 사주면 좋을까?" 매일매일 물어대는 집념의 9살. 이 박력에 슬쩍 심쿵하기까지 했다.


"축복아, 그럼 곧 엄마 생일이니까 이걸로 엄마 생일선물 사줄래?" "좋아. 그럼 엄마가 뭐 갖고 싶은지 골라서 얘기해 줘."


사실 생일이라고 딱히 가지고 싶은 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필요한 건 그때그때 사는 스타일이라, 남편에게도 생일선물을 요구하지는 않는 편. 그래도 아들이 꼭 무언가 사주고 싶다고 하니 잘 생각해봐야지.


"엄마, 엄마 탄생석은 아쿠아마린이래." "맞아. 색이 예뻐서 엄마는 엄마 탄생석 좋아해." 아이가 과학책을 보다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했다. 탄생석들이 너무 예쁘다며. 엄마는 어느 달의 탄생석을 가장 좋아하는지 물었다. 그때 문득 생각났다. 내 탄생석으로 된 액세서리가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이.


"축복아, 엄마 탄생석으로 만든 액세서리 하나 사줘. 그거 생일선물 하자." 작은 것 하나 사면 가격도 그리 비싸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제안했다. "좋아. 그럼 얼른 골라서 주문해." 그렇게 시작된 '아쿠아마린' 검색. 흐음, 저렴한 아이들부터 좀 비싼 아이들까지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문제는 저렴한 아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제품 사진을 본 축복이도 고개를 저었다. 드디어 맘에 드는 걸 발견했는데 무려 10만 원. 함께 보던 축복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 이거 맘에 들어? 그럼 이거 사." "진짜? 이거 사줄 수 있어? 근데 엄마가 조금 더 찾아보고 얘기할게."


그런데 이게 웬걸.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가격대는 높아지고, 더 비싸고 좋은 제품을 보다 보니 눈만 자꾸 높아졌다. '그래, 장난감 같은 액세서리는 어차피 사도 하고 다니지도 못할 것 같고 이왕이면 제대로 쓸만한 게 낫겠지?' "축복아, 엄마가 찾아보니 맘에 드는 게 있는데 그게 좀 비싸거든. 우리 이렇게 하자. 축복이랑 아빠랑 돈을 모아서 엄마 맘에 드는걸 하나 사주는 거야." 축복이에게는 돈을 조금만 달라고 하고 남편에게 왕창 보태라고 해서 맘에 드는걸 살 요량으로 제안을 했다. 그런데 축복이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싫어." 그리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엄마, 내가 13만 원짜리까지는 사 줄 수 있어." 13만 원은 그 전날 같이 검색할 때 봤던 제품 중 가장 비쌌던 목걸이의 가격이었다.


아이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나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이건 흡사 남자 친구에게 달라고 할 생일선물을 고를 때 같은 진지함. 나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이가 이제 9살인 아들인 것조차 까먹을 지경이었다.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과연 사진과 실물이 같을 것인가 점점 확신이 없어진다.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는데 좀 더 안전하게 선택해야겠다. 그전에 내 맘에 쏙 드는 제품을 구매한 적이 있는 샵의 인스타그램을 찾아 제품을 살펴보다가 직접 DM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제가 탄생석 액세서리를 하나 사려고 해요. 그런데 이게 제 아들이 선물해주는 거라 약간 가격에 제한이 있어요. 최대 13만 원 안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쿠아마린 액세서리가 있을까요? 목걸이든, 귀걸이든 상관없어요. 9살 아들이 엄마 생일선물로 꼭 사주고 싶다고 해서요. 다른 사람 돈을 보태서 사는 건 안되고 꼭 자신이 다 지불하고 싶다고 해서, 딱 그 금액에 맞춘 제품이 있으면 좋겠어요."


이 이야기를 듣더니 아이가 너무 기특하다며 몇 개의 사진을 보내주셨다. 사이트에 다른 보석으로 세팅되어 있던 제품을 아쿠아 마린으로 제작이 가능하다시며 보여주신 제품 가격이 딱 13만 원. 이야, 딱이다. 주문 완료.


"축복아, 엄마 맘에 드는 아쿠아마린 귀걸이가 있어서 주문했어. 봐, 이 디자인이야." "응. 근데 엄마 돈은 어떻게 내지?" "응. 일단 엄마가 먼저 결제를 했거든. 다음에 축복이 통장에서 엄마 통장으로 그만큼 보내주면 돼." "알았어. 그럼 엄마가 돈 보낼 수 있는 거지? 내 통장에서 엄마가 꺼내가." "응."


9살 아들에게 받은 귀한 선물, 아쿠아마린 귀걸이


두근두근. 열흘 가량을 기다려 그 귀걸이가 도착했다. 드디어 귀걸이가 왔다며 보여주니 그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 아이 성격답게 너무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표정이 더 귀여웠다. "오늘 엄마 저녁 약속이 있는데 친구들 만날 때 이 귀걸이하고 나갈게.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야. 우리 축복이가 선물 준거라고." 아쿠아마린 디자인 상 겨울 옷엔 영 어울리지 않지만, 최대한 어울릴만한 옷으로 골라 입고 귀걸이까지 착용 완료.


선물을 받아 들고 느끼는 설렘이 얼마만인지. 겨우 내 팔뚝만 한 아이를 받아 안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 선물을 챙기는 9살이 되었는지. 고맙고 고마운 나의 첫째 아들. 이 아이로 인해 나의 세상은 완전히 흔들렸지만, 덕분에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고. 언젠가 아이가 더 크면 진지하게 이야기해줘야지. 지금 전하는 사랑과는 조금 다른 무게로 말이다.




사실 아이에게는 통장이 두 개 있다. 하나는 5살 때 다니던 유치원에서 단체로 넣던 예금 통장. 그게 뭔지도 모르다가 이번에 자신의 새 통장을 만들면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새로 만든 통장에는 몇십만 원이 있지만, 예전 유치원 통장에 들어있는 돈은 딱 13만 7천 원. 어제 귀걸이를 받고 나니 엄마가 아직 돈을 이체하지 않았다고 한 말이 생각났는지 그 통장을 가지고 왔다. "엄마, 내가 보니까 이 통장에 있는 돈 이거 찾아서 귀걸이 값 하면 될 것 같아."


사실 아이 통장에서 귀걸이 값을 꺼낼 생각은 없었다. 혹시라도 아이가 나중에 통장 내역을 보고 왜 13만 원 인출내역이 없냐고 물어본다면 그때 꺼내야지. 만약 아이가 생각을 못한다면 그대로 묻어야지 생각했는데, 또 굳이 통장을 내미니... '음, 엄마 진짜로 이거 꺼내서 귀걸이 값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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