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태경 Sep 28. 2021

이제 백색소음 없이는 일이 안 되는 어중간한 노땅

지금이야 너무나 익숙해진 백색소음.

어느 순간부터인가 조용한 공간에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두뇌 회전도 현저히 저하되는지, 그리거나, 쓰는 작업이 잘 풀리지 않고 더디게 진행이 된다. 나이 탓도 있으리라.

하물며 책을 읽는 것도 그러하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음악을 틀어 놓고 공부를 하면 호되게 야단을 쳤다.

“음악 소리때문에 시끄러운데 집중이 되겠니?”

“이러면 공부가 더 잘되거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네. 정신 사나운데 머리에 뭐가 들어가겠어.”

친구와 전화를 하면서 숙제도 하드만. ㅜㅜ

그 문제를 가지고 오랜 시간 아이들과 티격태격 큰소리를 냈다.

이해를 할 수 없으니 일방적인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고, 듣는 입장에서는 짜증 유발 지대루였으리라.

이해 불가.

타박을 하면서 하지 못하게 했으니 강압적인 억압으로 일괄했던 그른 교육방식.

이제야 깨우친 멀티 서대 코드.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냥 인정해버리면 편한 거였는데, 편협한 고집만 내세웠으니 드러내 놓고 말은 못 해도 부끄러운 행동이었음을 시인한다.

그러니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도 많겠다 싶다.

흠~~~~ 우짤꼬. 이 무지몽매함을.

나름 또래 세대에 비해 깨어 있다는 소리를 들음에도, 변화하지 못하고 발전 없는 사고에 얽매여 산다.

아이들과 하하 호호하며 대화를 하다가도 심심치 않게 노땅 소리를 들으니, 내심 서운함부터 앞선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 도태됨을 절감하며 아는 척, 이해하는 척을 한다. 나름 통하고 싶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나이 드는 게 서러운데 나약한 자화상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추기에는 심신의 기운도 딸린다.


안 되는데 무리해서 뒤쫓기보다는 늙으막히 자연으로 귀화해서 살고 싶다 꿈을 꾼다.

스며들지 못할 바에는 도망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회피(수긍해버리기에는 어감도 맘에 안 든다.)

요즘 들면서 떠나고 싶은 맘이 간절해진다.


벨벳 밤하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

사계절 옷을 갈아입는 나무.

좋은 냄새 가득한 숲.

가지가지 품은 냄새도 각기 다른 바람.

변화무쌍한 너른 하늘.

황혼 무렵이면 그림 같은 구름.

탐스러운 열매로 청을 닮아 찾아주는 지인들에게 선물도 하고, 시원한 그늘 밑에서 좋아라 하는 음악을 들으며 그림도 그리고, 지천에 널린 자연재료로 지짐이 해서 일몰과 함께 술 한 잔 걸치고 서툰 기타 튕기며 노래 한 자락에 마구마구 센티해지고 싶다.

꿈에 그리는 타샤 튜더의 그림 같은 정원……

아름다운 여인 타샤 튜더

'그리 살고 싶다' 내내 꿈꾸던 것들의 일부다.


그러나 현실은 다름을 안다.

쥐도, 뱀도, 벌레도 무섭다.

인적 없는 밤도 끔찍하게 무섭겠지.

거센 비바람에 우는 듯 흔들리는 대나무 숲도 무서울 테고, 조곤조곤 따져보니 두려운 일 투성이다.

이상이 현실에게 발목을 잡힌다.

풀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려놓을 수도 없는 숙제를 안고 있다.

숙제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현실에 순화되어 간다.




내게 좀 더 편안한 공간, 쥔장의 취향에 따라 흘러나오는 음악, 앉아있기 편한 의자, 안정감을 주는 실내 장식을 찾아다닌다.


웰케, 귀는 밝은지 모르겠다.

썸 타는 여자의 말에 눈에 하트 뿜뿜 날리는 호감의 리액션이 귀엽다.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곁눈질을 하고 있다. 눈 돌아갈 판이다.)

뉘 집 아지매인지 침을 튀기며 열렬히 도마에서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과제로 바쁜 자판소리.

오늘도 몇 시간째 자리 보존하며 카페에 들러붙어 있다.

여름엔 집에서는 전기세 아까워 자제하는 에어컨도 찬바람 쌩쌩 션하고, 겨울이면 훈훈하게 온풍기 따시게 나오고, 널찍한 유리창 너머로 하늘도 보이고, 속이 쓰려도 자다가도 먹는 애정 하는 커피. 천 원 추가로 리필도 된다.

음악까지 쥑이니 금상첨화다.


가끔은 집보다 좋은 걸 우짠데.



작가의 이전글 그에게서 어린 왕자를 보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