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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경 Sep 23. 2021

그에게서 어린 왕자를 보았다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가 던지는 화두 #넷플릭스

추석이다.

코로나 때문에 안팎으로 어수선하니 명절이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거리 두기다 어쩐다 해서 시끌벅적한 명절은 옛말이 되었다.

큰댁을 찾아가고, 선산으로 성묘를 가고, 성묫길에 들리는 일 년에 두 번 명절 때나 보는 친인척들.

인심이 먹는 데서 나온다고 알고 살았으니 먹여 보내야 맘이 편하다. 몸은 힘들지만, 딱히 불편하지는 않다.

반가운 이들과 오랜만에 만나 잘한다! 이쁘다! 덕담을 해주니 또한 즐겁다.

약주가 지나치면 큰소리치는 집안 어르신. 그분은 매번 큰소리로 끝을 맺었던 거 같다. 그래도 평소에는 좋은 분이니 그 정도는 눈감고 봐줄 만하다.

이제는 지난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단출한 가족.

명절 전, 따로 있는 아들을 불렀다.

명절 음식으로 송편이 아닌 만두를 빚었다.

엄마 곁을 떠나보니 엄마 요리가 제일이란다.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알면서도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흐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중 손꼽는 메뉴가 김치만두란다.

어릴 적부터 손끝이 야무진 딸냄이 크니까. 탁월한 요리 보조로 손색이 없다.

유달리 손이 많이 가는 만두. 재료 다지고, 빚고 일거리가 많다. 대신에 훌륭한 보조의 손놀림 덕분에 수월했다.

손이 큰 게 문제다. 만두만 하려했는데 가짓수가 늘었다. 이러니 몸이 고달플밖에ㅜㅜ

원룸이어도 제집이 좋은지. 디저트까지 먹고는 홀라당 가버린다.

허전해진다.


추석 당일 예전 같으면 차례 준비로 새벽부터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지만, 이게 무슨 늦호강인지.

8시가 넘어가는데도 침대에서 뒹구리다.

딸아이는 기침 전이시다. 요리 보조로 톡톡히 써먹었으니 늦잠 자는 것쯤이야 봐준다. (스무 살을 넘기니  딸이 아니라 엄마 같다. 이치 따지며 엄마를 다잡을 때는 무섭다. 잔소리 대마왕)




뉴스를 검색하다. 넷플릭스를 뒤진다.


(인투 더 와일드) 상영 시간이 148분.

가볍게 보기엔 좀 긴 시간이다.

길다고 생각했던 러닝타임이 재생 버튼과 함께 148분 동안 영화에 묶여 버렸다.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이다.

영화 막바지에 실존했던 그의 사진을 보면서 아~~~ 그런 거였구나.

정지화면으로 잠시 동안 그의 얼굴을 보았다.

영화 속 '슈퍼트램프'
실제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알렉산더 슈퍼트램프)

 사진은 매직버스에서 죽은 지 2주 뒤 그와 함께 인화되지 않은 상태로 그의 카메라에서 발견됐다.


그가 내게 묻는 건지, 내가 그에게 묻는 것인지.

진정 원하는 삶이 뭘까?  


‘배낭에 오빠의 유골을 담아 알래스카에서 동부 연안 지방으로 돌아왔다’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사실이라는 게 사람의 맘을 묘하게 움직인다.

실화임을 알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그의 이야기와,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짠해졌다.


죽음 앞에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떠나지 않고 윤택한 생활 속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사는 동안 원칙과 틀에 갇혀, 번민하며 늘 자유를 갈망하며 살았으리라.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는 건. 소중한 것을 잃음으로 깨닫고,  얻어지는 것인가 보다.

어떤 삶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영화가 끝나고 왠지 모를 아쉬움에 다시 보기를 한다.

정지 버튼으로 잡고, 느끼고, 끄적여 보았다.

스포일러를 떠나서 근사한 영상과 글과 음악을 놓칠 수 없는 영화임에는 확실하다.




크리스토퍼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렉산더 슈퍼트램프’라 짓는다.  

인적 없는 눈 덮인 대지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침없이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설원을 내달리는 노란 기차에 그를 따라 맘이 실리며, 내 맘도 살짝궁~ 설레인다.


- 사회와 소비문화로부터의 자유. 극단주의자, 자연과 아름다움을 감상할 줄 아는 여행자.



- 그의 집은 길이다


- 내면의 허상을 쫓아내고 정신의 혁명을 당당히 완성할 극한의 투쟁을 시작한다.


- 몹쓸 문명에 더 이상 물들지 않기 위해 달아난 그는 홀로 대지 위를 거닐다. 야생에서 길을 잃는다.


- 어리석고 지루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4년을 참았으니 이제 그만.

대학이라는 추상적 개념과 관념의 세계. 과보호, 부모, 물질 과잉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다. 오빠를 오빠답지 못하게 만들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말이다.


- "돈은 필요 없어요. 사람을 걱정시키거든요."

돈이 필요 없다는 그의 말에 길위에서 만난 짚시가 조언을 한다.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책들 다 좋은 얘기긴 한데, 풀만 먹고는 살아갈 수 없어.”

“풀 말고 뭐가 더 필요한지 모르겠네요.”


- "사람들이 왜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지 모르겠어요. 서로를 평가하고 통제하는 그 모든 것들이 있잖아요, 부모들, 위선자들, 정치가들, 부도덕한 자들... "

그렇게 말하는 그의 머리를 가리키며 웨인은

“이게 문제군. 지나치게 사회를 적대시하는 거 말야.”

“그렇게 가슴에 불을 안고 살다가는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야.”


- 크리스털이 깨지기 쉬운 건 약점이 아니라 품격이다. 부모님은 고급 크리스털 유리잔을 소홀히 다루면 쉽게 깨트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두 분의 비밀 행각이 아들에게 고통과 상처가 됐다는 사실은 첫째, 알지 못하거나 둘째, 알았어도 모르는 척 회피했다.


- 부모님의 부도덕한 결혼과 배다른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부인은 오빠로 하여금 세상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빠에겐 세상이 뒤집히는 일이었다. 강물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흐름을 역행하는 듯했다. 정체성에 대한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어린 시절 전체가 허구처럼 느껴졌다.



돌아오지 않는 오빠의 부재에 대해 동생은 이렇게 말한다.

 - 오빠가 지금 발견한 과자 통에 무엇이 들었든 아주 맛있는 게 분명하다.  


- ‘자유와 순전한 아름다움은 놓치기엔 너무나 훌륭하거든요’


- 삶의 기쁨을 인간관계에서만 찾으려는 건 잘못이에요. 신은 곳곳에 삶의 기쁨을 심어 두셨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 존재해요. 우린 그저 관점만 조금 바꾸면 돼요.


- ‘용서는 사랑이란다’




영상에 삽입된 ost

The Wolf - Eddie Vedder

https://youtu.be/CB4xAL1rySw


영상에 입혀진 음악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No ceiling- Eddie Vedder

https://youtu.be/oO4O8Xpvp_Q


마법의 버스에서 홀로 죽음을 앞둔 슈퍼트램프는 외로움을 달래 준 읽던 책에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다.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

행복은 함께 나눌 때만 현실이 된다.




슈퍼트램프역을 맡은 에밀 허쉬ㆍ그의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결국 인간은 고독과 외로움 앞에서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굳이 나의 생각으로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는 영화다.

연거푸 두 번을 봐도 좋았다.

대사 한 줄도, 어느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는 영화다.

더불어 음악까지 참으로 멋진 영화다. (인투 더 와일드)


사람은 상처 받기 쉬운 존재다.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타인의 생각에 맞춰 행동하기보다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고자 했던 슈퍼트램프의 모습에서

어린 왕자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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