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태경 Jul 10. 2022

나를 사랑하게 하소서

작정하고 땀을 빼려 물병 하나 들고 나섰다.

문밖을 나서니 숨통을 조여 오는 더위가 훅~ 잠시 숨을 멎게 만든다. 그래도 오늘은 땀과의 전쟁을 하리라 맘을 먹었으니 나아가는 맘이 수월하다.

에어컨이 켜져 있는 실내에만 있다 보면 몸이 나른해진다. 그러면서 마음도 무기력해지고 생각도 멈춘다.

자극제가 필요하다.


근교에 있는 현충원 보훈 둘레길.

머리가 복잡하거나, 혼자 생각을 하고 싶을 때면 자주 찾는 곳이다.

무념무상 걷다가 멍하니 바라보는 묘비들. 그곳엔 지천에 묘비다.

소중한 수많은 목숨들.

그들은 뜨거운 가슴을 안고 잠들어 있고, 난 여기 이렇게 더위에, 삶에 지쳐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오듯 흐르는 땀이 가끔은 머리를 맑게 한다.


목숨 앞에서 가벼운 것은 있을 수 없다.

살아있음 자체로 모두 소중하고, 숭고하다.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미루어 짐작만으로 그들을 이해할 수만은 없다. 묘비에 새겨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름 석 자.


‘나’를 본다.

자책은 용기를 엎어버리고, 자학은 자멸이며, 나아갈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족쇄가 된다.

두서없는 화두의 답도 찾을 수 없다. 그저 묘비와 하늘과 바람 앞에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곳을 찾노라면 의례적으로 찾아서 듣게 되는 ‘비목’  


https://youtu.be/6OrL5-PfT94


가슴이 더워진다.

살아 있음에 소중한 걸 일깨워주게 하소서…

내일 아침 눈을 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나를 사랑하게 하소서…




끈적거리는 몸을 차가운 물로 씻고, 얼음 가득 채워진 냉커피를 들이켜고 나니 정신이 좀 든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뜨겁게 흘러내리던 땀방울도, 차가운 얼음 때문에 맺힌 물방울도 내게 약이 되었다.

개운해진 마음으로 뭐라도 써보려고 오래간만에 키보드를 잡고 앉았다.

내일은 어제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을 갖는다.


얼음 하나 건져 입안에서 깨어 문다.

와자작~~~

작가의 이전글 쑥개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