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오빠를 중환자실에 들락거리며 어렵게 낳고는 더 이상 내게는 아이가 없을 줄 알았는데, 네가 내 몸에 잉태됨을 확인하던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2개의 줄무늬가 당첨된 복권 같았다.(한 번도 그런 일이 없어서 비유하고 보니 웃기기는 하지만 아마도 복권 당첨이 되면 그런 기분이 아닐까 싶다)
2000년 6월 13일
10달 동안 너와 나를 이어줬던 탯줄을 끊고, 고사리 새순처럼 앙증맞은 손을 꼭 움켜쥐고는 내게로 와주었지.(여지껏 살아봐도 그 무엇과도 비유가 안 되는 기쁨. 얼마나 신기한 일이니. 똥배만 나와있던 내 뱃속에서 생명이 꿈틀거리고, 발길질하던 꼬물이가 품에 안겨, 내 코끝에서 작은 숨을 내쉰다는 걸 어디에 비견하겠니)
쌀알처럼 하얀 젖니가 나오느라 잇몸이 근질거려, 입에 닿는 대로 질겅거리며 물어대고 침을 흘리는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던 그때부터, 새로운 것에 거침없이 다가서는 너로 인해 심장이 콩알만 해지고, 깨지고, 피나도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나아가는 진격의 작은 거인.
그게 바로 너였다.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진다는 내용의 동화를 읽고는, 빠질 때가 되지도 않은 이를 흔들다 탈이 나서 끝내는 치과에 가 마취해서 빼고는 집으로 돌아오던 길.
손에 쥐고 온 이빨을 아파트 입구 지붕 위에 던져주고는, 입에 물린 벌건 피가 스민 솜뭉치(지혈 때문에)가 삐져나오게(아팠을 텐데) 환하게 웃어대던 네 모습이 생각난다.
되돌아보면 아쉬운 것 중의 하나는.
어린데도 알아서 하는 너를 보며 ‘잘한다’ ‘기특하다’ 칭찬만 했다는 것이다.
그 칭찬을 듣기 위해, 바쁜 엄마에게 착한 딸(다 커서 언젠가 네가 해준 얘기)이고 싶어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감내했을 어린 너에게,
울어도 된다.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
표현할 수 있게 해줬어야 했는데.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싫은 걸 싫다고 하며 살아야 자신을 사랑하는 일임을, 타인의 시선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행복이 우선 소중하다는 것을 그때 알려줬어야 했다.
네가 관계 속에서 깊은 상처를 받을 때마다 후회를 한다.
내가 그리 상처받는 삶을 살았으면서, 그런 면은 닮지 않기만을 바랐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지 않았으니 내 탓 같기만 하단다.
소아암을 돕겠다고 길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나타났을 때, 남의 자식 같았으면 훌륭하다 칭찬했겠지만, 엄마는 달라진 네 모습에 적잖이 당황이 되더구나.
상의했으면 못 하게 할 것 같아서 실행에 옮겨 버렸다 하는 말에 서운했다.
그때는 하지 못한 말이지만, 역시 넌 멋진 녀석이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간의 일들을 몇 줄로 요약해서 서술하기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어리고 여린 삶을 뒤흔들었던, 누군가의 시기 질투로 인한 못난 행동이 가져온 파장으로 고통스럽던 시간도 잘 버텨주었지.
그로 인해, 잃은 것이 많지만, 얻은 것도 크다며 스스로 단단해지며 성장하는 너를, 뒤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가슴 시리고 대견하다 할 수밖에.
그렇게 다사다난한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보겠다고 아르바이트를 3개나 하고 늘어나는 통장을 보며, 신나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올해 졸업을 하고, 아직은 여자라는 편견이 있음에도 기술연구원으로 취업도 하면서, 자주독립했으니 고맙구나. 대견하구나.
장황하게 밤새워 얘기한들 끝이 나겠누.
호들갑스럽다 생각하겠지만, 푼수가 되는지도 모르고 하는 게, 자식 얘기더구나.
네가 그렇게 성장하는 사이, 나도 나이를 먹어 중년이 되었네.
잘살아 내는 너를 보면서 자식을 힘들게 하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겠다.
늘 다짐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서운하고, 고집스럽고, 되새김처럼 말을 흘리게 되는데, 실은 엄마도 그런 자신이 싫단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뜻대로 되질 않는구나.
’너도 나이 먹어봐라.‘(내가 나이 들어보니 외할머니를 이해하는 것들이 있거든)
이렇게 뻔한 말로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으마.
다만, 있는 그대로 지금의 엄마를 봐주길 바란다.
네가 아무리 내 자식이어도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냥, 그게 너라서 인정해 주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것이다.
엄마도 그렇게 봐주렴.
나이 먹어 모습도 변하고, 쓸데없이 말을 주책맞게 늘어놓아도, 안 하던 행동들을 하게 되더라도, 이제는 받는 것보다 해줘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어도.
며칠 전부터 네 생일날이 가까워지면서 전과는 다르게 많은 생각들이 든다.(껌딱지처럼 붙어살다가 분가를 해서 따로 살아서 그럴지도)
분가를 하고 처음 맞는 생일.
이제 이 유물^^들을 줄 때가 된 것 같다.
20년을 넘기면서 임신 테스트 키트의 선명했던 2줄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네
각 맞춰서 칸막이 만들고 포장하느라, 무딘 머리 짜내고 무진 애를 쓴 결과물
네가 내게로 왔음을 알게 해 줬던 양성 반응 임신 테스트 키트.
너와 나를 이어주었던 탯줄.(탯줄이 자연적으로 떨어지기까지 대충 2주가 걸리는데, 목욕시킬 때마다 탈이 날까 두려웠단다. 오빠를 키워냈는데도 탯줄은 영 불안하거든. 고것이 똑 떨어지고 보인 배꼽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빠진 이의 개수만큼 재미진 추억.(처음 요란하게 치과에 가서 이를 빼고는 그 후로는 모두 엄마가 뽑아 주었지. 실로 묶어 쏙~. 오빠까지 뽑아줬으니 난 이빨 뽑기 선수^^ 오래되어 말라 깨진 이빨들을 퍼즐 맞추기처럼 맞춰보면 몇 개나 될랑가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