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몰랐으나 나이 들며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 장애들이 있다.
내 일임에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뭐가 답인지도 모르겠으며, 하물며 뭘 먹어야 할지 판단하고 결정하지 못하는 심각한 결정장애.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감의 파렛트를 들고 강렬하며 열정적인 두드러지는 색을 드러내며 살았다.
20대 중반에 결혼을 하고 남편과 시댁과 아이들 뒤에서 어느샌가 바래지고 닳아지고 단색으로 살다 보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도 잊으며 나름 현모양처로 헌신의 굴레 속에서 살다 보니 본연의 색들을 잃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판단능력의 현격한 저하로 심각한 결정장애에 이르렀다.
요즘엔 책을 읽다가도 문득 펼쳐진 페이지에 묶여 읽은 내용들이 뭐였는지 씁쓸한 한약을 먹은 것처럼 뒷맛이 쓰기만 하다. 다시큼 앞장으로 넘어가면서 어디까지 이해를 하고 읽었는지 찾지를 못하고 책장에 화풀이를 한다. 자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자괴감이 든다. 일상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판단과 결정에 문제가 생기게 됐다.
그런 모습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도 해본다.
읽고, 그리고, 작업하고, 듣고...
다행히 남들에겐 아닌 척 멋진 척 쿨한 척 성공이지 않나 싶다.
그럼 뭐하나.
내 안에 생긴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깊어만 가는데 아무리 외적으로 아닌 척한다고 해서 덮어질 문제가 아니다.
나를 떼어놓고 멀찍이서 바라보니 한없이 가엽다. 안쓰럽다.
참~ 오래도 버텼다.
그러다 보니 상처를 안고 드러나는 흉터들.
나이가 들면 현명해진다는데...
답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마저 사리분별을 흩트려놓는다.
그래서 걷는다.
이른 시간이든 늦은 시간이든 가리지 않고 걷는다.
걷다 보면 생각을 씻어 내기도 하고, 다른 생각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잃어버린 색을 찾아본다.
이제는 이 나이에 필요한 색을 찾고 싶다.
가지고 있던 본연의 색이 아닐지라도 스스로 만족하며 표현할 수 있는 색을 찾고 싶다.
그러다 보면 결정장애도 좀 호전되지 않을까 한다.
더없이 마음이 허한 저녁이다.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나이 들어 하얀 머리 성성한 그가 부르는 노래가
갈 곳을 잃어 헝클어진 내 맘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