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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고동빛의 낭만

by 최태경

<낭만순정>이란다.


카페 안에서는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때는 낭만과 순정으로 몽글몽글하던 어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다만, 지금의 낭만과 순정은 단단한 고동빛을 띨 뿐이다.
가오가 떨어지는 날이 와도, 내 안의 낭만과 순정은 빛을 바랠망정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바람도, 길가에 뒹구는 낙엽도, 서늘해진 날씨도
가을임을 실감케 한다.
천변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깊어지는 가을 속으로 스며든다.

뜨겁던 여름날, 동네 어르신이 가져다 놓고
부채로 더운 바람을 이겨냈던 벤치는
이제 찾아주는 이 없이 덩그러니 서 있다.

많은 시인들이 가을을 읊었다.
떨어지는 나뭇잎에, 옷깃을 세우는 찬바람에
시구를 써 내려갔다.
가을은 시를 쓰게 한다.

수많은 가을날을 지나며 깎이고 달궈져,
이제야 내가 보인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사랑받고 싶은 존재인가를.
이제야 알겠다.
내가 나를 봐주고, 사랑해 주는 일—
반세기 만에 알아봐 준 나.

이 가을이 참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내 안의 내가 단단히 익어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찻잔의 커피는 식어가도
마음은 따시다.


카페 안에는 시끄러운 대화 위로 잔나비의 <She>가 떠다니고 있다.

https://youtu.be/-RqRdRoEzJo?si=66DLwz3It4i7v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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