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할매 라이더

by 최태경

좀이 쑤신다.

몸을 맘처럼 움직일 수 없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는 뜻이다.

디스크 수술에 몇 해 전부터 아프기 시작한 테니스 엘보,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까지 산 너머 산,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를 바가 없다.

요즘 같은 시국에 우울증이 급증하고 있다는데 이러다가는 뭐든 해보지도 못하고 늙다구리 할망구가 될 판이다.

집 밖에 나가 있을 땐 주야장천 마스크를 쓰고 있으려니 숨이 막힌다. 이렇게 숨이 막힐 땐, 예전 같으면 오토바이 시동 걸어 도로를 질주하고 있겠지만 수술 후유증에 오래 앉아있기도, 서 있기도 힘들어 라이딩은 내년으로 미뤄놨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곧 좋아지겠지.

지나고 나면 이도 추억이 될 거야.

백신이 나오고 나면 다 원상 복귀될 테니까ㅏㅏㅏㅏㅏㅏ(간절함에 목이 메인다)

내년 봄에는 바이크 타고 강바람을 맞을 수 있겠지.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바람 빠진 풍선마냥 기운이 빠져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걸 이론적으로는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분명 밥맛없는 녀석이다.

오늘따라 멀리서 지나가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에 맘이 싱숭생숭해진다.

핸드폰 사진첩에 있는 ‘오도뱅’폴더를 뒤적거리는 걸로 맘을 달래 본다.

~~~ 으릉~으릉~ 으르릉~~~ 환청이 들리는 거 같다.(엔진 소리는 심장을 뛰게 한다)




내겐 특별한 세포가 있다. (지인들의 얘기다)

멀리서 온갖 소음과 섞여 들려도 바이크 엔진 소리는 기가 막히게 듣는다.


흔히들 겨울엔 추워서, 한여름엔 덥다고 라이딩을 꺼려한다.

보통 찬 기운이 ‘아! 춥다’이 정도면 바이크를 타고 달리면 발열내의까지 겹겹이 껴입어 무장한 옷이 무색하게, 바람은 옷감을 파고들어 살을 얼리고, 뼈를 때린다. 블랙 아이스(도로 결빙 현상)를 숨기고 있는 외진 길은 솜털까지 곧추세우게 만들지만, 머큐리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며 고독한 나그네 감성팔이 하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겨울만이 주는 풍멍(풍경을 보며 멍 때리기)이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바이크에 올라 바람 속을 내달리는 맛을 안 봤으니 이해할 리가 없을 것이다.


절절한 고독만이 주는 쾌락이 있다.

레너드 코헨, 이브 몽땅, 브라이언 아담스의 쓴맛 제대로 나는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속에서 절절한 그 무언가가 올라오면서 카타르시스를 씹으며 감성의 바다에 빠진다.


그러기엔 바이크 라이딩이 제격이지 않나 싶다.


봄바람이 콧구멍을 간질이는 시기가 오면 커스텀 한 째깐한 바이크를 타고 산을 누빈다.

불을 끄기 위한 목적으로 산에 만들었다는 임도는 ㅎ멋진 놀이터다.


어쩌다 국민 바지 몸빼를 입고 탔는데 한여름엔 더할 나위 없이 딱 좋다. 두 바퀴가 있다면 복장이 어떤들 어떠하리.


요 째깐이는 100cc 오토바이를 커스텀한 아주 귀욤귀욤 한 녀석이다.

좁은 길이며, 거친 산길을 타기에는 깔짬하게 커스텀한 이 녀석이 제격이다.


일반 도로와 달리 비포장으로 녹록지 않은 길을 타다 보면, 흙먼지 뒤집어쓰니 신발은 튼실한 장화가 짱이다.

흙 범벅이 되거나, 돌부리에 까이고, 가시덩굴에 스크래치 그림을 그려도 질기기가 끝판왕이다. 혹시나 산길을 타시겠다면 싸고, 질기고, 진창에도 실용적이고 적합한 장화를 강추한다.


라이딩을 할 때는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니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핸들 꺾어지는 대로 타는 스타일이다.

뻥 뚫린 도로는 스파클링 같은 시원함이 있긴 하지만, 물길을 따라 달리는 댐 둘레 투어나 굽이굽이 고갯길, 시골길이 주는 정겨움, 달큰한 사탕을 이리저리 입안에서 굴리며 천천히 맛보는 듯한 목가적인 감성 라이딩을 즐기는 편이다.


임도는 인적이 드물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한적해서 좋다.

그런 산길이다 보니 가파른 길을 흙먼지 뒤집어쓰며 오르다 보면 유실되거나 더 이상 길을 내어주지 않는 곳도 많다.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곳도 많다.

오도 가도 못하고 쩔쩔매는 상황도 있긴 하지만, 그 또한 무기력한 일상탈출로 흔하지 않은 극한체험이라 생각하면 나름 재미있다.




일반도로에 인접해 있는 곳에 핀 진달래는 매연 때문에 몸에 해롭기도 하고 보는 이들 때문에 따먹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가끔 가는 산길 라이딩 중 핑크빛 탐스런 진달래 군락지를 만나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같은 진달래과에 속하기는 하지만 왼쪽은 독이 있어 먹을 수 없어서 개꽃이라고도 하는 철쭉, 오른쪽은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참꽃이라고 한다는 진달래. 진달래만 식용이 가능하다

한 움큼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며 묻는다.


맛있냐? 어떤 맛이냐?

진달래 맛이야!

정답이다.


아는 맛인데 딱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매년 진달래 맛을 보는 걸로 봄을 시작한다. 아주 어릴 적 뒷산에서 따먹기 시작해서 먹지 않고 지나친 해가 없는 것 같다.

어디 진달래만 따 먹었겠는가 오독오독 어린 옻 순이며, 감칠맛 나는 두릅, 아는 선에서 독이 없는 것들은 입에 넣어본다.

자연의 맛이다. 설령 쓰고 떫다 해도 말이다.


산길 라이딩이 주는 봄은 사랑스럽다.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철에는 분명 위험하다.

일 차선 시골길 건너 차선에서 오는 차들이 웅덩이 고인 물을 튀기면, 놀이공원 후름 나이트 놀이기구를 타는 듯 물을 뒤집어쓰는 스릴도 있다.

돌아다니다 지인이 하는 카페에 차 마시러 들렸다 옷을 탈수시켜 줘서 입었는데, 다시 맞을 비였는데 왜 그랬나 싶다.(비 맞은 새앙쥐 꼴이 딱했을 수도ㅎ)

태생이 워낙 비를 좋아해서 빗속의 라이딩을 져버릴 수가 없다.



누런 들녘을 배경 삼아 한들거리는 가을 코스모스길.


영화 주인공이 나였음을~~~~



산, 바다, 들판 근사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며, 사계절 사랑스럽지 않은 날들이 있겠는가.


주위에서는 다들 걱정을 한다.

여자이고(실은 성별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위험한데 왜 그걸 타느냐고 한다. 이번 디스크 수술 후에는 더 심하게 반대를 한다.

죽을 목숨이라면 집 안에 있다가도 죽는 법, 자동차 운전 시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사고는 나는 법이다.


좀 더 신중하고 안전하게만 탄다면 나머진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으리라.


숨 쉬고, 움직일 여력이 있는 한 바람을 가르는 라이더로 살고 싶다.


훗날~

헬멧을 비집고 하얀 머리카락 휘날리며 달리는 그녀를 보게 된다면

그건 바로 나일세.


할매 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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