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바람

by 최태경

바람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 설렘이 되는 단어다. 그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담겨있다.


꽃 피는 것을 시샘하는 꽃샘바람, 나뭇잎이나 물결에 이는 남실바람, 이른 봄에 부드럽게 부는 명지바람, 초봄 살을 파고드는 소소리바람, 일정한 방향 없이 이리저리 부는 왜바람(날 닮았군ㅎ), 하늬바람, 흔들바람, 샛바람, 뭍가진바람 등 부는 곳, 부는 모양새에 따라 50여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기분에 따라서도 느낌이 달라지고, 어디에서 부는 바람이냐에 따라 냄새도 달라진다. 바람은 많은 것을 품는다.

갓 베어 낸 풀냄새를 머금기도 하고, 달큰한 과일냄새를 품기도 한다. 칼바람 부는 바닷가에서 비릿한 냄새를 실거나, 때론 실바람 이는 안개 자욱한 강가에서 묵직하게 습기 먹은 물 냄새도 담는다. 늦가을 낙엽 태우는 연기를 흔들어 놓는 바람은 그 옛날 읊었던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구르몽의 시 한 구절을 자동 리플레이시킨다.

땡볕에서 일하는 농부의 이마에 부는 고운 바람도 있고, 토네이도처럼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모진 바람도 있다.


나름의 이유를 가진 많은 바람. 그중에 내 안에 이는 바람이 제일 위험하다.


조절이 되지 않는다. 흔들림 없이 고요하다가도 어느 순간 강풍이 되어 강렬하게 휘몰아친다.

누구에 의해서도 아닌, 몸 어딘가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종잡을 수도 없다. 언제 세차게 심장을, 머리를 때릴지 예고도 없으니 대비도 대책도 없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숨이 차오른다.

요동치는 바람을 느낀다.

바람이 통하도록 창 하나를 내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모든 게 부서져 버린다. 폐허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그마와 같다.

예전 같으면 애써 부인하고, 외면하며 흔들리지 않는 척을 하며 살겠지. 이제는 안다. 살아 숨 쉬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람은 내 안에 살 것이다.

혹여, 타인에게 읽히지 않는 바람으로 살지 언정 내게 충실한 바람이 되어, 비가 되어, 눈이 되어 자연스러움으로 동화되어 살기를 바란다.


오늘 내 안에 부는 바람은 고즈넉한 산사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을 울리는 바람과도 같다.

땡그랑~~ 땡그으으랑~~~


난 바람이 조으다. 정말 조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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