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봄날의 흔적

by 최태경

아직은 찬 기운이 여민 옷 틈 사이로 파고드는 봄밤.

살아가는 날들 중 따지고 보면 좋지 않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눈 오면 눈 밟아 좋고, 풀냄새 짙어지는 한여름 밤의 산책도 좋고, 울긋불긋 단풍 드는 가을날 낙엽 밟은 것도 근사하다.

어느 한 가지로 손꼽을 수 없는 박빙이겠지만, 짧은 봄날 밤마실에 가로등 불빛 아래 만나는 벚꽃이야말로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이맘때쯤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감성의 사진작가가 된다. 어떻게 찍어도 이쁘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근처 산책길에도 흐드러진 벚꽃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살아내기 버거운 시간 속에서 잠시 숨 고르기 하며 쉬어 갈 수 있는 휴식이 되어준다.

생각해보면 주위에 감사한 것들이 많다. 하물며 관람료도 없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이래서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많이 가진 사람, 가진 게 없는 사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그들 모두가 떨어지는 꽃잎에 잠시 행복해진다.

꽃구경 나온 사람들로 혼잡한 시간을 피해 이른 시간이나, 늦은 밤에 산책을 나간다.

ㅎ다 내꺼야~

호젓이 즐기는 꽃구경 아주 근사한 즐거움이고 호사다.


속살처럼 여린 빛깔의 잎과 함께 피는 산벚꽃. 흔들리는 물결에 꽃잎 떨구어 먼여행을 떠나려나 보다.


투둑 투둑 터지는 하얀 팝콘같이 벚꽃이 흐드러지는가 싶으면, 으레 시샘을 부리며 만개한 봄을 무대 아래도 끌어 내리는 게 있었으니 봄비.

달리 생각하면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엔 고마운 비겠지만, 속수무책으로 떨어지는 꽃잎을 보노라면 인생무상 아련함으로 가슴이 쩌리해진다.

몇 잎 주워다 책갈피에 끼워놔야겠다.

화려함도 잠시, 향연을 펼치던 꽃잎들을 일제히 떨구어 낸다.

미련도 없는 듯 깔끔하게 이별을 한다.

쿨내가 나는 게 맘에 든다. 이별에 있어서 본인은 좀 질척이는 경향이 없지 않다. 쿨한 척하지만 뒤돌아서 아주 군내를 낸다.

나이 들면 떨어지는 꽃잎에도 자신을 투영시킨다.

떨어져 힘없이 뒹구는 꽃잎이 날 닮은 듯하여 쓸쓸해진다. 오늘 진다 해도 그대는 다음 봄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은가.

내게도 화려한 봄날이 다시 오려나......


김윤아 -봄날은 간다

https://youtu.be/6-Y41nKYf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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