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되면 어김없이 식사 시간은 돌아온다.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 안에 밥시간이 끼어있으면 불편해질 때가 있다. 굳이 먹고 싶지 않거나, 속이 거북해서 밥 생각이 없는데도 그런 내 뱃속과는 상관없이 혹여, 상대방이 출출해하지는 않을까 끼니 걱정을 하며 뭐든 먹으러 가게 된다.
하지만 혼자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체로 배가 고프지 않기도 하고 귀찮다. 나이 드니 입맛도 떨어지는가 보다. 다이어트 중인 딸아이는 밥 같은 탄수화물이 기본인 일반식의 식단을 중단했다. 동참하기를 원하기에 이참에 살을 빼 볼까 시도를 해봤다.
웩~ 맛도 없는 다이어트식.
냄새도 부담스럽고, 맛도 없으니 목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다이어트하기는 그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식사 시간이 곤혹스럽다.
요리는 좋아라 한다. 다만, 누군가 먹어줄 대상이 있어야 요리가 신이 난다. 혼자 먹자고 식사 준비로 다듬고, 씻고, 칼질하고 불 앞에서 열꽃을 피우는 일은 귀찮은 과정이 되어버렸다. 딱히 먹는 게 즐겁지도 않으니 더더욱 요리와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집 밖에 있으면 때가 지나던지, 말던지 먹어야 되는 부담감에서 자유롭다. 집에 있으면 괜히 뭘 먹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건 뭔지 모르겠다.
뻔한 속사정을 알면서도 한참을 냉장고 문을 열고, 잠시 일시정지. 멍~때림. 결론은 찌시래기 잔반 처분. 밥도 필요 없다. 야채며 생두부, 계란. 쓰러지지는 않을 정도의 영양소. 쓰러지긴 무슨, 안 먹어도 석 달 열흘은 거뜬할 것 같은 체구다. ㅜㅜ그래도 때가 되면 입맛과는 상관없이 배가 고프다. 눈치도 없는 배꼽시계는 때 되면 어김없이 알람을 울린다.
꾸르륵~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게 없다. 혼자서는 뭘 먹을지 생각하는 것마저도 귀찮다. (참고로 한식, 일식, 중식, 퓨전 안 되는 요리가 없다)
요즘 들어 부쩍 귀차니즘에 젖어 들어 무기력해진다. 대충 접시 하나에 모아서, 어거지로 밀어 넣듯 저녁을 때우고, 선물 받은 영양제(도무지 알 수 없는 생소한 외계어로 조합된 성분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본시 아파서 치료 목적의 약 복용도 기간 동안 끝까지 먹질 않고 살았더랬다. 선물 받기도 하고 좋다니 먹긴 하는데 며칠에 한 번 눈이 침침해지거나, 멀쩡하던 살결이 떨리고, 사지의 찌뿌둥함이 심해지면 치료 약 찾듯 먹게 된다. 효과는 모르겠다.) 한 움큼 물 한 모금과 입안 가득 털어 넣고는,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해가 길어져 있다. 땅거미 내리는 거리를 걸을 때면 아련한 기분이 든다.
황혼의 길목.
단어만으로도 원숙한 쓸쓸함이 배어 나온다.
터덜터덜 걷다가 오늘의 산책지는 서점이다. 서점에 오니 센티해진 헛헛한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신간 사이를 흐르는 물을 타듯 휘돌아 책 구경 파도타기를 한다. 구경이란 단어. 설레고 새로움을 찾는 신선함, 여유로움과 한가로움의 냄새가 난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책 표지가 원래 이랬었던가.
<상실의 시대>로 번역 출판되었다 다시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판되었다. 내가 읽은 건 <상실의 시대> 제목판. 그 후 한동안 그의 책을 찾아 탐닉했던 때가 있었다. 슬프게도 오래전에 읽은 책들은 제목만으로는 내용이 명확하게 생각나지는 않는다. 하루키를 만나러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빠져, 그의 주옥같은 책을 뒤적이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에서 오래도록 빠져나오지 못하고 혼돈 속 자존감마저 흔들리고, 힘들고 아픈 시기였다. 돌이켜 생각하니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빛나는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리 아프기만 했는지 모르겠다.
옛 시간을 회상하며 그때가 좋았지 하는 나를 보며, 더 치열하게 삶을 살아냈을 선배님들은 그러시겠지.
‘이 사람아 내가 자네만 했음 원이 없겠네그려’
지금 이 순간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다 해도, 숨 쉬고 살아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빛나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데.
하루키에 빠져있을 그즈음의 추억을 되새기며, 책장을 넘긴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는지 몸이 저려온다.
일어나야겠다.
집에 가면 이 책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럽게 이사하느라 가구며 집기들과 함께, 거실 벽장을 가득 채운 책들을 급처분하느라 분류도 못하고 눈에 띄는 몇 권의 책만 이삿짐에 실어 아쉬울 겨를도 없던 책들의 상실을, 시간이 지나서야 두고두고 가슴 아파했다. 그 속에 떠나보내 졌을지, 어딘가에 딸려 왔을지 찾아봐야지. 그러면서 챙기지 못한 수많은 제목들을 떠올리며 곤혹스러운 시간이 되겠군.
<상실의 시대>를 찾게 되면 지금의 나는 와타나베의 삶을 어떻게 읽어 낼지 궁금해진다.
짱박아놓은 와인이라도 한 병 있으면 좋으련만.
-책 속에
인생이란 비스킷 깡통이라 생각하면 돼. ~ 비스킷 깡통에서 여러 종류 비스킷이 있는데 좋아하는 것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먹어 치우면 나중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는 거야. 나는 괴로운 일이 있으면 늘 그런 생각을 해. 지금 이걸 해두면 나중에는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깡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