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

by 캘리그래피 석산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 (86*115)

인천 남동구 장수동 만의골에는 800년이 넘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은행나무 한그루가 있다.


예로부터 이곳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守護木)으로 여기며 음력 7월과 10월, 두 차례 제를 올리고 풍년과 무사태평을 기원했다고 한다.


마지막 겨울눈이 내리던 그해 2011년 2월, 인천의 한 지인으로부터 막걸리 한 사발을 하자고 연락이 왔었다. 서울에 살면서 가깝지만 특별히 가볼 일이 없었던 지역인지라 오랜만에 발걸음을 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인천 만의골의 허름한 막걸리 집이었다. 사방이 터져 있는 옛날 주막집 같은 곳이었다. 방부목(防腐木) 평상 위에 막걸리와 해물파전이 등장했다. 주거니 받거니를 수차례... 마당 너머로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은행나무가 보였다. 도보로 3분 거리로 지척에 위치하고 있었다.


막걸리와 남은 안주를 싸서 은행나무 밑으로 가보자고 제안을 했고, 지인은 뭐 볼 것 없다고 시큰 둥 입맛을 다졌다. 가까이에서 본 은행나무는 높이 30m, 들레 8.6cm 규모의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균형 잡힌 5개의 큰 가지가 오랜 세월 속에 아름드리 뻗어 있는 모습이 활홀감에 감탄사를 불러 일으켰다.


농익은 가을날, 나무 주변으로 노란 은행 물결을 상상해 봤다. 또, 5개의 큰 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마냥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 한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은행나무야, 앞으로 천년의 시간을 이 자리를 굳건히 지켜 주기를 바라면서...” 그날의 인천 발걸음은 내게 또 하나의 감동으로 지금껏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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