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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by 캘리그래피 석산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 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출처: 노사연_ ‘바램’ 노랫말 중에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21*11)

익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생의 정점을 지나 기뻤던 날과 아픔의 장막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아가는 것, 사랑과 노여움의 이야기를 따뜻한 봄날의 눈빛으로 전하는 것, 지나왔던 나날의 고통을 다가올 날들의 사랑으로 삼는 것, 자신의 인생길을 남 이야기하듯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치열하게 살아온 젊은 날의 아픔을 치유하는 시기, 평생을 앞만 보고 바쁘게 살아온 날들의 초상들, 내가 힘들고 괴로움에 떨고 있을 때 내 손 꼭 잡아주며 “당신의 인생은 참 훌륭했다”는 말 한마디로 위로해 주는 사람들...,


나이가 들어가고 늙어간다는 것을 ‘익어간다’는 은유적 표현은 정말 아름답다. 어쩌면 하얀 백 지위에 새로운 감동을 그려놓은 풍경처럼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움을 통해 성찰의 시간들로 채워가는 것일 수도 있다.


지나친 욕심도, 내 안의 번뇌도 버리는 과정을 겪으면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 주는 것이다.

삶의 깊이도, 소소함도, 모자람도 배우면서 겸손과 겸허함을 몸소 실천하며 깨달아가는 경지에 도달하는 진짜 어른의 참모습이 되는 시기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마에 굴곡진 주름이 늘어나고, 머리카락은 가을날 새벽녘에 내리는 서릿발 같은 백발로 변해가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 속에서 사람은 결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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