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무식할 정도로 일을 했다. 속된 말로 "죽을 듯 살듯 모르게" 전쟁에 나가는 전사처럼 목숨을 걸 정도로 말이다. 시골의 농사는 끊임없이 손이 가는 일의 연속이었다. 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은 다시 집으로 가져와 몇 날 며칠 동안 어머니의 손을 빌어 마지막 결과물로 나오는 고행의 과정을 거친다.
비가 내릴 것 같으면 비를 피해 덮어줘야 하고, 비가 그치면 다시 덮어 놓은 비닐을 걷어 햇볕이 잘 드는 곳에 곱게 펴 자연 건조를 시키는 일들이 다반사다. 콩, 고추, 녹두, 참깨, 수수.. 모든 농작물들이 그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중에 콩은 어머니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투자하는 농작물 중에 하나다. 집 앞마당에 가득 널어놓고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좋은 콩과 나쁜 콩을 골라내는 작업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고된 일이다.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높은 12시~2시 사이,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도 쉬지 않았던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만류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허리에 차고 있던 복대를 푸는 순간 "아이고, 죽겠다"며 방바닥에 맥없이 쓰러지고 만다. 일하는 동안에는 일에 신경 쓰느라 몸이 아픈 줄도 모르고 일에 집중하다가 잠시 일을 멈추고 긴장을 풀면 이렇듯 삭신이 쑤셔오고 아픔을 호소하는 게 다반사였다.
"어머니, 왜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세요"
"난 괜찮다"
어머니의 일은 겁이 날 정도로 힘들게 했다. 그래서 늘 걱정이 되었다. 요령 피우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날들이 몸에 배어 나온 것이라 어쩔 수는 없다고 하겠지만, 심각한 워크홀릭 상태였다. 잠자리에 들기 무섭게 끙끙 앓으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머니, 불면증에 뜬눈으로 지샌밤을 헤아릴 수 없는 상태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짠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올 해로 어머니의 연세는 여든아홉이 되었다. 기대 여명 나이는 충분히 충족이 되었지만, 자식들 입장에서는 할 수만 있다면 더 오래 건강하게 행복한 생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일을 놓지 않았던 어머니의 일생이 이제는 요양병원에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언어, 수족마비로 말을 할 수도, 움직이지도 못한 상황이지만 힘들고 험한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정리의 시간을 갖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우리네 삶이 이런 거구나"를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