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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사랑받는 사람보다

by 캘리그래피 석산

부채(負債)가 많은 사람은 늘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고 사는 것이 편치가 않다. 흔히 부채는 금전적인 것만을 뜻하지만 사실 남에게 받는 모든 것은 다 부채이다.

자손이 귀한 집에서 아들을 낳자 도인이 나타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단 한 가지이기에 어머니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했다. 아이는 자라면서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독차지했다. 십 수년이 지난 어느 날 그 도인이 다시 나타나 만족하느냐고 묻자 어머니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왜냐하면 아이가 사랑만 받으니까 사랑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이기적, 자기중심적이 되어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자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소원을 바꾸어 “이제 사란 받기보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사랑받는 사람보다 사람을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jpg 캘리 사진 ‘사랑받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_ 석산 作

흔히 돈을 빌리는 것만 부채라고 생각하지만 사랑도 받기만 하면 그 역시 부채인 것이다. 금전적 부채가 커지다 보면 부도가 나듯 사랑도 받기만 하다 보면 개인의 품성이 망가지게 된다.


박재형이 지은 ‘해동 속 소화’에는 가난한 형편임에도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홍서봉 어머니의 부덕(婦德)에 대한 미담이 있다. 조선 인조 때 정승이었던 홍서봉은 어릴 적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거친 밥과 나물국도 제대로 먹기 어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여종을 시켜 생선을 사 오게 했는데 생선은 도저히 먹지 못할 정도로 상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여종에게 “이런 생선이 얼마나 더 있더냐?”라고 물은 후 꽂고 있던 비녀를 뽑아 여종에게 주면서 남아 있는 생선을 모두 시오라고 했다. 그리고 여종이 사 온 생선을 모두 땅에 파묻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사 먹으면 병이 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드러나지 않은 베풆, 살아있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에 훗날 홍서봉이 영의정까지 올라갈 수 있었고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의 험난한 세월 속에서도 천수를 다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미국 기부문화의 꽃을 피운 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는 인간의 일생은 두 시기로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반부는 부를 획득하는 시기이고 후반부는 부를 나누는 시기이어야 한다.”


석유 왕 록펠러는 죽기 전 “세계 최대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던 인생 전반의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나눔의 삶을 살던 후반 43년은 진정 행복하게 살았노라.”라고 베푸는 기쁨을 회고했다.


주는 자는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흔히들 먹고살기 바빠서 줄 것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보면 그들은 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줄 마음이 없는 것이다. 나눔은 금전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마음, 따뜻한 마음만 있다면 돈이 없더라도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많다.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산행할 때 던져주는 덕담, 유머 하나, 짤막한 안부 문자나 댓글, 환한 미소까지 작은 마음이라도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을 주면 되는 것이다. 움켜쥔 손보다는 나누는 손이 되어야 한다. 남에게 무엇을 받을 것인가를 바라고 기대하다 보면 실망도 커지게 된다. 남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면 주는 것보다는 더 내 삶이 먼저 행복하고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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